# 16 라라라저 애는 왜 저렇게 생각이 없나. 왜 저렇게 자기 생각밖에 할 줄 모를까. 어린 시절, 어린 마음에 나 자신조차 이해시키지 못하는 – 그런 소위 억하심정을 품었던 날들이 있습니다. 생각이 없거나, 개념이 없거나, 상식이 없거나, 예의가 없거나, 무언가 하나 쯤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어 서로를 “까대기” 바빴던 그 서른 세 사람의 친구들. 그저 머릿수를 채우고 있는 기계 인형처럼 보였던 그 멍청한 녀석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 한 [... 계속 읽기]
# 15 Satisfied Music (2) 낮은 담 아래 흙길 걸어, 희나리 쌓인 흙집 지나, 마루 비치는 달 보이면 귀밝이술 한 잔 뜨러 가리. 그 한 잔을 전할 임이 없어, 홀로 꿈꾸듯 걸으며, 멀리 기스락 바라보니 가락도 홀로 흐르리. 나릿나릿 내 맘이 흘러, 임께 겨우 닿았어도 때가 늦어, 내가 겨우 안녕을 물을 때 임은 이미 안녕을 고했으리. 이것은 한 편의 다독임이며, 나의 넋두리를 받아주기 위한 한 판의 굿이다. 그저 홀로 술 [... 계속 읽기]
# 14 Satisfied Music (1) 또 한 사람의 합주의 주(主)인 임낑깡과 함께 그 여자가 들어왔을 때, 합주실은 순간적으로 아, 하는 탄성에 휩싸였다. 임낑깡이 삼십 분이나 늦게 나타났다는 사실은 이제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임낑깡의 등장과 함께, 양승욱이 보낸 편지에서 끝까지 숨겨져있던 또 한 사람의 보컬리스트가 누구인지 밝혀지는 순간, 합주실은 일부 기대에 부풀었고 또한 일부 탄식에 휩싸였다. 그녀로 인해 이 33인의 합주가 보다 강력한 가치를 갖게 될 것임을 기대한 이들이 있었고, [... 계속 읽기]
# 13 최초의 악수 솔직히 말해 술은 처음이었다. 칵테일이라지만 도수를 다소 높여 제조한 블랙 러시안,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켜보겠답시고 일부러 바텐더의 추천을 얻어 마신 이 술이 오히려 더욱 심장을 떨리게 한다. 바텐더의 재미없는 농담에 손바닥이 얼얼할 정도로 박수를 치며 즐거워하는 그녀가 왠지 다른 세계의 사람처럼 낯설게 보였다. 칵테일을 한 잔 더 마셨다. 차라리 온 세상이 낯설게 보이면, 그 끝에 마침내 내 감각조차 낯설어지면 이 떨림이 조금 진정될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그렇지 [... 계속 읽기]
# 12 달 서른 세 사람의 합주실이 수많은 악기의 조율 소리로 완전히 소음 덩어리로 변해버렸건만, 합주의 장(長)인 임낑깡과 양승욱은 아직도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현진은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 옥상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그것이 시작이었다. 달은 수채화처럼 쪽빛 하늘에 걸려 있었고, 그 아래에서 바로 그가 바이올린을 연습하고 있었다. 방 안에서 한창 소음에 시달리다 나온 현진에게 그 소리는 마치 아폴론의 하프 만큼이나 매혹적으로 들렸으며, 만종(晩鐘)을 연상시키는 그 풍경이 시의 활자처럼 [... 계속 읽기]
# 11 누구도 사랑할 수 없음 차라리 상처받기를 원합니다. 누군가에게 버림받고, 그리고 수많은 시간을 눈물로 지새우기를 원합니다. 사랑 그 자체를 모르기 때문에 행복의 절반을 송두리채 잃어버린 나는, 그 한없는 에로스의 축복으로부터 괴리되어 온전히 육체의 쾌락만을 추구하다 또한 죽어버릴 것임이 두렵습니다. 차라리 학 천 마리를 접는 구식 노동을, 걸려오지 않는 전화에 가슴 졸이며 주저할 침묵의 시간을 신이 나에게 허하기를 바랍니다. 터미널 앞에서 당신을 다시 만나고, 마치 아무도 만나지 못한 양 당신을 [... 계속 읽기]
# 10 Change the game (2) 단(?) 서른 세 사람의 합주를 위해, 백 명도 넘게 들어갈 수 있을 듯한 이 넓은 공간이 필요했던 이유는 온전히 댄스 팀 “Change the game” 때문이었다. 팀의 장이자, 양승욱으로부터 이 합주를 제의받았던 장본인인 진승필은 정작 아직 합주실에 도착하지 않았지만, 대신 그와 함께 팀을 이끌어나가고 있는 또 한 사람의 장인 구하나가 일찌감치 합주실에 들어서 그 예술적인 몸의 향연을 이끌고 있다. 직선과 곡선의 잔영이 절묘하게 그려내는 무지개빛의 [... 계속 읽기]
# 9 금과 혼 승욱의 당부대로 정경연이라는 여자를 모시고 나니, 차 안이 수다로 범벅이 되어 버렸다. 여기에 짤막히 그 대화를 소개한다. 정경연 : 상아 씨죠? 승욱이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꼭 만나고 싶었는데, 정말 반가워요. 저는 정경연이고, 이번 합주에서는 가야금 팀을 이끌거에요. 이상아 : (마지못한 목소리로) 아, 네. 정경연 : 정말 대단해요. 보통 사람도 악기 하나 배우려면 뼈가 깎여 나가는 것 같은데…… 이상아 : (여전히 마지못한 목소리로) 뭘요. 이나마도 할 수 [... 계속 읽기]
# 8.5 길 승욱은 한창 사소한 후회에 자신을 자책하고 있었다. “서울의 교통 체증을 너무 가볍게 봤다.” 상아의 집에 가서 앞 못 보는 그녀를 조심스럽게 차에 태우고, 그러고 나서 다시 합주실로 출발하려니 어느덧 그 근원도 끝도 알 수 없는 자동차의 대열에 갇혀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지각의 아바타라 불리는 임형(낑깡)이 제 때 와 있을 확률은 단연코 말하건데 ‘없다’. 그런데 사랑방 주인 노릇을 해야 할 또 한 사람이 이렇게 도심의 주차장 [... 계속 읽기]
# 8 기계 도시 양승욱의 편지를 받은지 일주일, 편지에 쓰여있던 바로 그 시각. 합주실에 처음 들어섰을 때, 그곳은 텅 비어 있었다. 서른 세 사람은 물론이고 백 명도 더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이 커다란 합주실에서, 어울리지 않게도 단 한 사람의 바이올린 연주자만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바이올린을 이래저래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내가 들어섬으로써 그 정적이 깨어진 것이 그리도 반가웠던지, 바로 달려와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의 이름은 고안민이고, 33인의 [...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