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 142008
 

5am

우리가 진심을 이야기하는 시간

# 28
신창일

신창일의 가족관계는 그닥 복잡하지 않다. 
아버지는 대구에서 작은 사업체를 하다가 음대 학생이었던 어머니를 만났다. 연애결혼인 셈이다. 경상도 남자는 다들 말이 없고 무뚝뚝하다고 하지만 아버지는 언변이 좋고 낭만적인 사람이었다. 콧대 높은 여대생이었던 어머니와 연애를 했다니 굳이 의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금은 사업이 꽤 커졌으며, 서울과 대구에서 함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할머니는 멋을 아는 ‘여자’다. 할머니에 여자라는 수식어를 붙인다는 게 쉽게 매치가 안 되긴 하지만, 어쨌든 그랬다. 30만 원 짜리 펌을 하고 중후한 정장을 즐겨 입었다. 클래식과 재즈, R&B를 들었다. 얼마 전에는 신창일을 데리고 영화 “레이”를 보러 가기도 했다. 매일 저녁 8시면 순종 강아지 ‘해피’를 데리고 공원을 산책한다.
창일이는 가족과 그리 가깝지 않았다. 여느 사춘기 소년이 그렇듯이 가족보다는 친구들, 도덕책 식으로 딱딱하게 말하자면 ‘또래 집단’이 더 친근감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창일이는 그 정도가 조금 심한 편이었는데, 가끔씩 부모나 할머니에 대해 경멸의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물론 나는 그의 그런 태도에 동조할 수 없었다. 누군가 거기에 맞장구라도 치면 그는 금새 시무룩해져 머리를 긁적여댔었기 때문이다.
창일이가 가족에 대해 적대감을 드러내는 경우가 몇 가지 있다. 나도 창일이의 가족을 만났다가 몇 번 경험한 적이 있었다. 어느 날인가 할머니와 아버지가 “전라도 출신은 상종하면 안 된다”고 말했었는데, 그 순간 표정이 굳어지며 문을 박차고 집을 나가 버렸었다. 짐작할까 모르겠지만, 우리 부모님이 전라도 출신이다.
그렇다고 신창일이 싸가지없는 어린애라고 생각해선 곤란하다. 당신도 알고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부모는 위대한 존재이지만, 가끔씩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또한 모든 행동이 다 선(善)할 수는 없다는 것을. 신창일이 죽었을 때 그의 장례식장을 지켰던 사람이 누구인지 상기해 보라. 그 친구 전민선과 동생 신창현이 전부였다. 물론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아니다. 신창일의 드럭 복용 혐의와, 환각 중에 폭발사고를 일으킨 것이라는 소문이 이미 파다히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그 소문은 만신창이가 된 신창일과 정신이 나가버린 전민선이 구조되고, 신원이 파악되고, 집에 연락이 닿기까지의 짧은 시간보다도 더 짧은 시간동안 방방곡곡에 퍼졌다. 그러나 어떤 핑계를 대더라도, 장례식 내내 부모가 장례식장을 찾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창일이에게 많은 것을 배운 동생 창현이(그가 드럭을 배우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스런 일이다. 사실 정확히 말해 신창현과 신창일은 전혀 친하지 않았다)를 제외하자면, 그 가족은 적당히 사행심과 허영심으로 채워진 사람들이었다. 그 허영심이 창일이의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가족의 발걸음을 막았을지도 모르겠다. 그 집이 워낙 부유했고 사업도 안정적이었으니 그리 문제가 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창일이는 그 사실을 항상 부끄러워했다. 죽어버린 창일이가 또 시무룩해져 머리를 긁적일지 모르지만, 그 어머니는 폐품을 수집하러 후줄근한 모습으로 리어카를 몰고 동네를 돌아다니는 노점상 할머니를 바라보며 혀를 쯧쯧 차곤 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불쌍한 건 알겠지만 저런 식으로 돌아다니면 동네 이미지가 안 좋아지는데. 행인들한테 이상한 물건도 팔고. 특히 저 이상한 거 파는 건 뒤에 꼭 뭔가가 있다니까. 사 주면 안 돼.”
창일이에게 한 번 거쳐 전해 들은 얘기인 만큼, 앞 뒤가 많이 잘려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혀 없는 얘기를 신창일이 지어낸 것도 아닐 것이다. 창일이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괴로움을 느꼈다고 했다. 괴로움. 고통스러움. 혐오할 수 없는 존재가, 혐오할 수밖에 없는 말을 했으니 그의 마음은 대체 어찌 해야 한단 말인가.
신창일은 추석마다 전라도로 내려가는 류신준이라는 사람과, 행인들에게 이상한 물건을 비싼 값에 파는 노점상 할매를 구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어렸다. 힘이 없었고, 방향성이 없었다.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으면서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누구도 신창일을 도와주지 않았다. 열 아홉 살에 사회주의자들의 꿈을 꾼 이 아이는, 그 어디에서도 그 꿈을 북돋아줄 사람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죽었다.
  님이 08:23 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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