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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치 퍼커션
“Threshold Percussion”
퍼커션을 두드리는 건 그녀에게 가장 소중한 일과다. 하나의 감각이 없다는 것은 대신 다른 감각들을 한층 예민하게 만드는 법인데, 그녀는 그 중에서도 특히 청각이 발달한 것 같다. 주위의 수많은 사물들이 모두 그녀에겐 악기가 된다. 무한히 다양한 금속, 혹 가죽의 재질이 그녀의 리듬감과 스냅과 절묘하게 쌍을 이루어 춤을 불러일으키는 신나는 음악을 창조해낸다.
그 중에서도 그녀에게 가장 소중한 악기는 이, 하드코어에서나 쓰일 법한 큰 북이다. 그녀는 하루의 일상이 끝날 때마다 온 힘을 다 해 이 퍼커션을 두드린다. 퍼커션의 살갗이 찢어진 게 한 두 번이 아니라는데, 하기사, 여자가 치고 있다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박력있는 소리가 나는 걸 보면 왠지 그럴 법도 하겠거니 하는 생각이 든다. – 그녀는 거기에 ‘쓰레쓰홀드 퍼커션’이란 이름을 붙였다. 수 년 째 불려지고 있는 이 퍼커션만의 이름이다.
“상아씬 드럼을 배워 봐요. 처음에는 좀 힘들겠지만, 금방 익숙해질거에요.”
누구로부터 그런 제안을 받았는지는 잊어버렸다. 공부를 하고, 야망을 키워나가고, 돈을 벌 생각을 하기에도 너무 바빴기에 그런 무의미한 제안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었던 탓이다. 그러나 ‘보다’란 단어가 그녀와 무관한 것으로 그 성질을 바꾸어버린 후로, 그녀는 기억에서조차 지워버렸던 그 제의를 다시 끄집어내 승낙의 제스쳐를 보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야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상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그래서 세상으로부터 ‘비정상’이라는 딱지를 받게 되었을 때, 그제서야 그 소박한 취미생활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절박함을 느꼈던 것이다.
절박함이 커질 때마다, 살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마다 ‘쓰레쓰홀드 퍼커션’은 더욱 큰 소리로 자신을 주장한다. 지금 그녀의 퍼커션 소리 또한 폭풍처럼 거세다. 그래, 하루가 멀다하고 한강 둔치에서 목을 건 농성을 해야 하는 때니까. 생각을 해 보라. 유능한 대학생이었던 그녀가 시력을 잃었을 때, 세상은 더이상 그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그대에게 어떤 재능이 있든 눈이 보이지 않는 비정상인을 필요로 하진 않으리라 장담했다. 그렇게 절망에 빠진 그녀에게 아는 언니가 안마를 해 보라고 조언해주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머릿 속에 담겨 있던 모든 지식들, 아미노산과 단백질, 중합체와 E-Z 규칙에 대한 모든 것들을 불태우고 안마사가 되었다. 그렇게 꿈을 빼앗긴 것이 바로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다. 그런데 이제는 목숨까지 내 놓으란다.
그녀는 퍼커션을 때리며 대리만족을 느낀다. 이 퍼커션은 정말 벼락이 치는 것 같은 시원한 소리를 내 준다. 기실 그녀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똑같이 새하얀 살갗이 찢어지도록, 검고 말라빠진 상흔을 남기며 표피를 후려치건만, 퍼커션의 소리는 온 세상을 뒤덮을 듯이 울리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아무데도 들리지 않는 것이다. 물론 알고 있다. 자신의 목소리는 역치를 넘지 못하였으며, 이 세상은 가혹한 과학의 법리 – ‘실무율(All-or-Nothing principle)’이라 배웠던 바로 그 법칙이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살갗이 찢어져도, 말라빠진 상처가 온 몸에 남아도, 세상은 역치를 넘지 못한 그녀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퍼커션의 이름이 ‘쓰레스홀드 퍼커션’이다. 역치를 넘지 못한 그녀가, 양껏 역치를 넘긴 온 세포들의 집합인 이 퍼커션을 두드리며 스스로 헤어나오지 못할 파라노이드의 파라독스를 연주하고 있기에. 하지만 그 파라독스가 없으면, 그녀는 가슴이 터져 죽을 것만 같은 지경에 놓여 있는 것이다.
한 곡의 연주가 끝나고, 그녀는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우리는 어떻게 살라고” 그러냐며 목을 놓아 울던 바로 그 언니의 현실, 한강 다리에서 목숨을 걸고 뛰어내렸지만 아무도 관심갖지 않았던 아홉 사람의 현실. 그 현실이 사무치게 괴로워 다시 한 번 드럼 스틱을 높이 드는 순간, 그녀의 귓가에 익숙치 않은 박수 소리와 목소리가 들린다. 수 년간 반복된 ‘괴로운 현실’ 속에는 없었던, 그래서 분명한 현실이지만 현실같이 느껴지지 않는 그런 목소리. 수 천 번 수 만 번의 연주를 해도 단 한 번도 들을 수 없었던 관객의 반응이다.
“아휴, 고막 터지는 줄 알았어요. 아주…… 힘이 넘치는데요?”
아, 그 때서야 그녀는 연습실에 함께 와 있던 한 사람의 존재를 기억해냈다. 양승욱. 그는 자신을 “33인의 합주” 계획의 공동 프로듀서라 소개하며 그녀에게 명함을 건네주려다가, 이내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며 바로 이 자리, ‘쓰레쓰홀드 퍼커션’의 바로 옆에 계속 서 있었다. 그가 왜 이 자리에 왔는지 그녀는 잘 모른다. 작곡가 임낑깡의 이름이라면 몇 번 들어본 적이 있지만, 사실 “33인의 합주”의 프로듀서라는 두 사람 – 임낑깡과 양승욱 – 을 직접 만난 기억은 없다. 말하자면 그녀에게 있어 승욱은 철저히 초면인 것이다. 그녀가 딱히 유명한 연주자인 것도 아니므로, 그가 그녀의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든가 했을 리도 없다.
한참 힘껏 박수를 치던 그는, 곧 지루한 얘기를 시작한다. 33인의 합주 계획, 임낑깡을 중심으로 무명의 연주자들을 섭외하여 벌이는 장대한 프로젝트로, 지금 한창 연주자들에게 합류를 제의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녀는 의아한 기분을 느낀다. 구하면 구하는 거지, 왜 여기까지 와서 그 얘기를 하고 있을까. 기실 가장 설득력있는 설명은 양승욱이란 사람이 이상아 자신을 퍼커션 연주자로 섭외하려 한다는 것이겠지만, 그녀는 커다란 장벽을 치고 그 가정은 말도 안 된다고 자신을 계속 세뇌시켰다. 설마, 그럴 리가 없어. 그런 건 말이 안 되지, 암.
그러나 그녀의 그 세뇌는 틀렸다. 승욱은 밝은 얼굴로 그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퍼커션을 구하고 있어요. 상아 씨 실력이 꼭 필요해요.”
순간 그녀는 무언가가 머리를 큰 망치로 후려친 것 같은 충격에 빠진다.
승욱의 입으로부터 그 얘기가 나온 순간, 흔히 하는 말로 “설마가 현실이 된” 그 순간 – 그녀의 눈에 커다란 눈물이 걸렸다. 그 불행한 사고 이후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말, 그저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지덕지해야 했던 이 가엾은 ‘비정상인’이 그토록 긴 시간동안 기다려왔던 말. 그녀의 갑작스런 눈물에 승욱은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고, 그 정적 속에 시계바늘 소리만 째깍거리며 그녀의 눈물샘을 더욱 자극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 눈물들의 흐름을 거슬러, 아직 자신이 세상으로부터 ‘정상인’으로 남아 있었을 때의, 한국이라는 폐쇄적 이너서클로부터 내쫓기기 전의 수많은 기억들을 되살려낸다. 그리고 머리가 흔들리는 것만 같은 강한 충격과 함께,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그 ‘초면이라고 기억하고 있던’ 사람에게 자신도 모르게 기대어 펑펑 울기 시작했다. 그래, 기억났어…… 그 때 내게 드럼을 배워 보라고 제안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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