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를 워드프레스 기반으로 옮겼습니다. 더불어 yeinz.net 으로 사이트 주소를 바꾸었는데요, 또다시 사이트 주소를 바꿈으로써 일어날 수 있는 여러가지 문제에도 불구하고 역시 .kr 도메인의 의미가 너무 없다고 생각이 되서요. 일단 최소한 일 년 이상은 기존 도메인 주소를 그대로 유지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일에 대해서는… 이후에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한국에서의 접속은 현재 모두 정상으로 보이는데요, 외국에서의 접속은 1~2일 정도 정상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http://yeinz.net/blog/ http://feeds.feedburner.com/yeinz 블로그 주소 및 RSS 주소도 그대로 유지합니다. [...계속 읽기]
눈치채지 못하고 있던 새 새벽길 방문자 수가 3,000,000 명을 넘었습니다. 이게 다 제 인기의 척도라고 생각합니다. 아, 그런데 어디선가 이상한 음악이…… 방문자수 3,000,000 돌파 기념으로 홍대입구역 근처 클럽에서 공연을 엽니다. 9월 5일 저녁 7시 30분 홍대입구 5번출구 앞 라이브홀 주(카페베네 옆)에서 밴드 공연을 할 계획입니다. 입장료는 만 원이고 2병의 맥주가 무료 제공됩니다. 많은 분들이 제 3,000,000 돌파를 축하해주시기 위해 함께 공연을 할 예정이고, 저는 거기에서 세 곡의 노래를 부릅니다…… …… [...계속 읽기]
경로당에 자주 출장을 나간다. 진짜 ‘청춘불패’ 찍는 그런 시골 경로당 말이다. 일의 9할이 이런 시골 경로당 출장이다보니 그동안 어떤 이미지로만 존재했던 시골의 정경이 좀더 현실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1. 시골 된장 맛없다. 요즘 세대가 자극적이고 강렬한 맛에 길들여져서 그런 거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너무 짜기만 해서 맛이 없다. 기성세대의 추억의 맛일수는 있겠지만 슈퍼에 쌓여있는 된장들보다 특별히 더 맛있는 된장은 아니다. 2. 시골 인심같은 거 없다. 시골이라고 밥값이 싼 것도 아니고 특히 [...계속 읽기]
최근 이 블로그의 ‘손님게시판’을 통해 “모 케이블 방송의 토론프로그램에 시민패널로 출연해달라”는 제의를 받아 다녀왔는데, 사실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촬영이 끝나자마자 나가보라고 부추긴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나를 부추긴 모든 사람을 저주하겠다, 일단 너부터” 라고 농을 던졌을 정도니 더 말할 필요가 없을 듯. 입 딱 닫고 묵언수행하다 왔다. 그래도 여하튼 느낀 점이 없지 않아 나름 정리해본다. 은막 뒤의 현장은 의외로 초라하고 보잘것없었다. 그 외양이 아니라 내면이 그렇다는 얘기다. 기획은 쉴새없이 [...계속 읽기]
블로그 툴을 업데이트하면서 카테고리별 구독이 가능해졌습니다. 우측의 카테고리 부분을 보면 각 카테고리마다 ‘ATOM’이란 글자가 이 달려 있는데요. 이 ‘ATOM’을 클릭하면 카테고리별 ‘ATOM’ 피드를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ATOM은 RSS의 대체 포맷입니다. RSS나 ATOM에 익숙하지 않은 분은, 일단 ‘ATOM’ 버튼을 클릭하시면 주소가 뜹니다. 예를 들어 ‘무거운 이야기’ 옆의 ‘ATOM’을 클릭하니 이런 주소가 뜨네요. feed://yeinz.net/blog/atom/category/5 이 주소를 좋아하는 RSS 리더에 등록하시면 새벽길 중 ‘무거운 이야기’만 따로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RSS 리더로는 한RSS(http://hanrss.com)가 [...계속 읽기]
[#M_아사다 우영|더블악셀에서 넘어지고 맙니다 _ 닫기| [Flash] http://yeinz.net/untitled/vlrudndud.swf _M#] 운동삼아 따라해보고 있는 2pm의 ‘Heartbeat’. 겨울에는 역시 좁아터진 방구석에서 귤이나 까먹으며 운동하는 것이 제맛이다. 동작이 어렵지 않으면서도 움직임이 크고, 전형적으로 남성적이면서도 다른 아이돌 가수의 춤동작과 차별화되는 부분이 많아서 은가이 재미를 느낄 수가 있다. JYP에서 ‘좀비 컨셉트’라고 이름을 붙였다는데, 과연 훌륭한 마케팅이다. 더불어 요즘엔 노래연습삼아 자우림의 ‘Carnival Amour’를 불러보고 있는데, 김윤아의 음역대는 어딘가 묘한 데가 있다. 남자가 따라부르자니 너무 높고 여자가 따라부르자니 [...계속 읽기]
의약분업 이전, 정부가 처음 의약분업을 도입하려 했을 때 의사들은 ‘파업’이라는 극단적인 초강수를 동원해가면서까지 이를 막고 싶어했다. 사람들은 배부른 의사들이 사람 목숨을 두고 흥정을 벌이려 한다며 의사들을 몹시 비난했다. 결국 의약분업은 이루어졌다. 의약분업 이후, 사람들은 병원에 한 번 가고 약국에 또 한 번 가면서 수고가 두 배가 된 건 물론 내는 돈도 늘었다며 의사들을 비난했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돈을 더 많이 받아 챙기기 위해 의사들이 의약분업을 한 것”이라며 치를 떨기도 했다. [...계속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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