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광복(2005)
웅진
작년 11월,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철학사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며 누구나 알아야 하는 것이다. 철학사를 안다는 것은 사상의 흐름을 안다는 것이고, 세상의 흐름을 꿰뚫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생각이 어떻게 변해왔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역사를 바라본다는 것이고 그로부터 미래의 지향점을 찾는다는 의미이다.” 나는 이러한 ‘철학’에 입각하여 철학사의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플라톤으로부터 시작된 나의 “철학 공부 여행”은 아직도 플라톤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상태다. <국가(Politeia)>에서 만난 낯선 희랍식 이름들, 소크라테스와 트라시마코스, 아데이만토스, 글라우콘…… 은 저마다 벅찬 대화를 펼쳤고, <소크라테스의 변명>과 <향연>, <소피스테스>와 <법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고전들이 저마다의 향취를 뽐냈지만, 나에게 그들은 현학적인 활자 놀음 이상의 가치를 주지 못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어떤 철학자로부터 “서양 철학이란 플라톤에 다는 주석일 뿐”이라고까지 칭해진 플라톤이지만, 그 자체가 창세의 말씀(Logos)인 것은 아니다. 헤겔을 어줍잖게 빌려 말하자면 플라톤은 곧 시대의 일부이며, 당시의 아테네와 그리스, 펠로폰네소스를 빼고는 설명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역사를 무시하고, 순수한 “플라톤 그 자체”만을 철학의 출발점으로 삼아 여행을 떠나려 했으니, 과연 헤매이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은가.
<철학, 역사를 만나다>는 그런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한, 일종의 쉬어가는 한 페이지 같은 책이었다. 책은 다 해봐야 총 207페이지로 구성되어 있어 분량에 있어서도 부담이 없고, 어떤 문제를 심층적으로 파고들기보다는 차라리 다양한 문제에 도입을 제시하고, 독자의 지적 호기심을 점화시키는 수준에서 서술을 마친다. 책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이 책은 철학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막상 철학에 대해서는 거의 지면을 할애하지 않으며, 대신 그러한 철학이 탄생하게 된 배경, 그 당시의 역사, 주요한 흐름 등을 설명하는데 대부분의 정력을 쏟아붓는다. 역사 속에서의 철학을 서술한다기보다, 철학이 탄생한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걸맞을 것이다. 그 서술은 앞서 말한 것처럼, 보다 넓은 지적 호기심을 점화시키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 그러기에 충분한 재미를 갖췄다.
결국 문제는 보다 분명해졌다. 플라톤이 쓴 <국가>를 보다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서 그 텍스트 자체에 파고들어 형이상학적인 생각의 나무를 키워가는 것 또한 중요하겠지만, 그리스, 아테네, 스파르타, 폴리스와 민주정으로 이어지는 – 곧 플라톤이 살고 있던 현실 국가를 파악하는 것 또한 만만찮게 중요할 것이다. 막상 도서관을 이 잡듯이 뒤져 봐도 이런 “플라톤이 살던 세상”에 대한 책을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이지만, 그래도 그러면 무에 어떠한가, 튼튼한 두 다리로 세상을 안는 우리네의 여행처럼 그리스로 떠나는 이 환상적인 여행 또한 힘들어도 그만큼 값어치있을 것임에 분명하다.
4 개의 반응
댓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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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말하려면 거기에 대해 알아야 한다.” 가장 원론적인 말이지만 제일 필요한 것이기도 하고 제일 힘든것이기도 해요.//임용공부도 저렇게 내가 하고싶고 알고싶게 만들면 참 좋을텐데 라는 생각이 듭니다. ㅠㅜ ㅎ
그 얘기는 아래 < 중립>이란 글에서 한 얘긴 것 같은데… ㅎㅎㅎ
현재의 ‘교사 지망생’ 들이 얼마나 큰 딜레마에 빠져 있는지, 사실 좀 안타까워요. 힘을 내세요. 자본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철학은 돈이랍니다…… 히히히
예인님도 상당히 딜레마에 빠져서 고민하고 계신 느낌이 오는데… 돈과 의학, 그런 거요. 히히.^^(그냥 받은 느낌입니다)
아니 어째서 그런 생각을…. 히히히
사실 제가 놓여있는 딜레마는 좀 더 학문적인 데 있죠. 내가 한의학을 배워서 정말 무얼 할 수나 있을까, 한의학이 정말 사람을 치료할 수 있는 힘을 내게 줄 수 있을까 하는…… 고로 아직 돈과 의학에 대한 고민을 할 번짓수조차 아니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