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쳐진 것들 : 유년기의 영웅에 작별을 고하며

슬로우뉴스 기고 후기 – ‘교조가 된 구호 : 박권일의 어떤 조롱에 대하여‘ 에 대한 후일담.

초등학교 시절 일기를 쓰기 귀찮아 일기장에 대충 휘갈겼던 동시 한 수가 선생님에게 극찬을 받았다. 중학교 시절 의무적으로 썼던 논설문이 교내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뭐 이래저래 승승장구하며, 나는 내가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시 단위, 도 단위, 이윽고 전국 단위로 나가 나보다 재능있는 그 수많은 동갑내기 아이들과 경쟁하면서, 나는 내 재능이 별볼일 없다는 것을 직시해야 했지만.

그래서 그 뉴스는 더욱 크게 다가왔다. 한 고교생이 서울대-조선일보가 주관하는 논술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뒤, 그 수상과 인터뷰를 거부했다고 했다. 그가 참가하고 있다는 그 ‘안티 조선’ 운동이란 것의 대의보다도, 고교생이 그 정도의 명예를 단칼에 거절할 수 있다는 것, 그럴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 자체가 부러웠다. 그는 내 유년기의 영웅이었다.

그것이 십 년 전의 일이다.

오늘에 이르러, 나는 국가시험을 치르고 의료인이 되었다. 요 앞 시내에 나가면 이층 삼층 쯤에 잔뜩 몰려 있는 그 병의원들, 거기에 몇 명씩 있는 그 의료인 말이다. 아마 내가 거기에서 성공하고 나름 성과를 얻더라도, 사람들은 내 이름은 잘 모를 것이다. 그리고 내 유년기의 영웅은 소위 ‘논객’이라 불리는 사람이 되었다가, 이제는 미디어스라는 미디어 비평지의 기자가 된 것 같다. 그리고 진중권이니 하는 유명인들과 함께 이런 저런 활동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아마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이름은 다들 알 것이다.

사실 그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도 없는 기묘한 문장을 써낼 때에도, 나는 그것이 그의 전부가 아니리라 생각했다. 진중권의 노골적인 실수와 조롱의 말을 뒤섞은 역겨운 자기변호를 보고 내가 진중권에 대한 실망감을 표했을 때, 내 유년시절의 영웅은 도통 알 수 없는 묘한 논점을 내세워 진중권을 변호했다. 하지만 나는 그 또한 시각의 차이라고 여겼고, 오히려 나는 내 유년기의 영웅과 짧게나마 이견에 대해 대화를 나눈 것 자체만으로도 흥미와 감동을 느꼈다.

그러나 점점 그가 사안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함부로 말하는 일이 늘어가고, 이를 지적한 데 대해 결코 사과하지 않으며, 오히려 “내 말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내게 물어보면 되지 블로그에 긴 글을 쓰고 뭐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운운하는 반응을 보였을 때 – 이를 지적하다가 같은 패로 몰려 “나이브한 새끼들”이란 비난을 받았을 때, 난 내 유년기의 영웅이 그 환상 속의 인물과 다르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별 것 없는 사람 – 아니, 그 이상으로, 오히려 오만의 색깔이 몸에 짙게 배어 있는 그저 그런 먹물. 내가 그토록 혐오하던 꼰대 선배들의 모습이 그로부터 느껴졌을 때, 난 내 유년시절의 영웅을 버려야만 했다.

슬로우뉴스에 리트머스를 비판하는 글을 올린 뒤, 다시금 나는 그 영웅과 척을 진다. 소통하지 않는 영웅, 자신의 앎에 대한 자신은 넘치지만 정작 그 풍성한 앎으로 제대로 소통하고자 하지는 않는 강단 위의 먹물. 그의 글에서 여전히 만나볼 수 있는 멋들어진 은유와 논변에도 불구하고, 대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이제는 정말 모르겠다. 텅 빈 그의 논변이, 나의 가치없는 블로그 속 잡설들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인지,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그가 ‘나이브한 새끼들’이라 비난한 까닭이 바로 이런 내 기질 때문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망쳐진 것들 : 유년기의 영웅에 작별을 고하며”에 대한 한개의 댓글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