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 222012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줄 알았는데, 한큐에 ‘헛발질’로 끝나버렸다. 강용석이 제기한 ‘박원순 아들 병역 비리 의혹’ 얘기다. 강용석은 한 손에 MRI 사진을 들고 “이런 체형은 20대인 박원순씨 아들에게선 나올 수 없는 체형” 이라며 사진 바꿔치기 의혹을 세차게 제기했고, 조용히 대응하던 박원순은 결국 끓어오르는 여론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MRI 재촬영을 승낙했다. 그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재촬영을 진행한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은 재촬영된 MRI 사진이 강용석이 들고 나온 MRI 사진과 동일인의 것으로 보인다는 소견을 내놓았고, 모여 있던 기자단은 강용석의 ‘완패’ 사실을 송고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후련하게 보았지만, 사실은 대단히 찜찜한 점이 많다.

첫째, 강용석은 어디에서 박원순씨 아들의 MRI 사진을 입수했는가. 여러 정황으로 볼 때 강용석이 내세운 MRI 사진은 박씨 본인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병원 또는 병무청에서 유출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만약 그렇다면 이는 심각한 의료법 위반이다.

둘째, 이 일로 큰 고통을 받은 박원순씨 아들의 고통은 누가 보상해 줄 수 있는가. 그는 가장 완벽하게 보호되어야 할 개인정보를 누출당했고, 강용석은 심지어 그 연인의 이름을 트위터에서 공공연히 떠들어대며 “당신이 결단을 내리라”고 선동하기도 했다. 물론 소수의 네티즌들, 또 소수의 언론도 이런 선동에 동참했다. 이로 인해 박씨는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셋째, 왜 강용석의 음모론은 이렇게까지 불어났는가.

강용석이 짠 진실게임의 틀은 이러했다. “병무청에 제출된 MRI 사진이 내 손에 있다. 그런데 이건 20대 마른 체형 청년의 MRI 사진이라곤 도저히 볼 수가 없다. 뭔가가 있다.” 즉, MRI 사진이 박씨 본인의 것이 아니라는 게 이 진실게임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사실 이에 대한 결론은 나온 지 오래였다. 병무청 관계자는 계속해서 “박씨의 신검 절차에는 문제가 없었다” “MRI만 보는 것이 아니라, CT를 추가 촬영하여 본인인지를 확인하였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실제로 신검을 진행한 행정기관에서는 이미 문제가 없으며  제출된 사진이 본인의 것임 역시 확인하였다고 하는데, 그런데 이 음모론이 잦아들지를 않았다.

이 시점에서 한 몫 거든 것이, 부끄럽게도 의료인들이다. 연세대학교 외과학 교실 한석주 교수는 감사원 사이트에 “MRI 사진을 보고 강용석 의원이 사실임을 확신했다”는 경솔한 글을 남겼고 청년의사와의 전화를 통해 이를 재확인해주기까지 했다. 전국의사총연합(이하 전의총)이라는 단체는 ’6천명의 의사 회원이 있는 단체’라는 위압적인 단체 소개로 포문을 연 보도자료를 통해 “MRI는 3~40대 비만인의 것으로 추정되며, 재촬영을 통해 이 의혹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며 강용석의 음모론에 다시금 힘을 보탰다.

이는 주요 언론에 의해 계속 인용 보도되면서 사태를 키웠는데, 스스로의 실책임을 자인하고 즉시 사과한 한석주 교수와는 달리 전의총은 ‘정당한 입장 표명’이었음을 강조하는 입장을 대표 명의로 다시 내놓았다. 이는 전의총 스스로가 앞선 보도자료에서 “개인의무기록 입수에 대하여 면죄부를 주는 것이 아니며, 오직 혼란 해소에 일조하기 위함이고, 이에 대한 정치적 해석을 거부한다”는 전제를 달았기 때문인 듯 한데, 이건 대단히 순진한 접근이거나 아니면 야비한 접근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애당초 강용석이 제기한 MRI 사진은 유출 경로도 불분명했고 불법성이 강하게 의심되었으며(이는 전의총 스스로도 보도자료에서 전제하고 있다), 또한 박씨 본인의 것인지 그 진위 여부도 불투명했다. 이런 자료를 판독하면서 ‘불법에 대한 면죄부가 되지 않으면서 혼란은 해소되고 정치적 논란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자료 자체가 진짜인지 가짜인지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그 자료를 해석한다고 해서 대체 어떻게 논란이 종식된단 말인가?

게다가 이미 병무청 관계자가 “신검 과정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입장을 밝힌 상황이었다. 일부에서 ‘그것도 못 믿는다’며 난리를 쳤을 뿐이지, 진실게임은 사실상 이미 끝났었다는 얘기다. 이 상황에서 “MRI가 3~40대 비만인의 것으로 추정된다”는 입장을 발표한다는 것은 병무청 관계자의 입장에 대해 불신을 표하는 것과 진배없었다. 또한 의혹의 주인공이 야권 ‘시민세력’의 대표격인 인물이고 그 의혹을 제기한 인물은 그의 ‘정적’임을 스스로 선언한 여당 출신 의원이다. 그들이 정치적 해석을 거부하든 말든, 이건 정치적으로 해석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는 얘기다.

게다가 순수하게 의료인의 입장으로만 보더라도 이런 견해 표명은 부적절했다. 환자의 상태를 실제로 관찰하지 못한 상황에서 MRI 사진만을 판독하여 ‘환자는 이러저러한 사람일 것’ ‘재촬영 통해 의혹을 풀 수 있다’ 같은 판단을 내리는 것은 의학자로서의 바람직한 태도라 보기도 어려웠다. 물론 어디서 나온지도 모를 ‘개인의 의료 기록’에 대한 판독을 하는 것은 의사로서의 의무와 그 궤를 달리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상황이 이러한데, 다만 스스로 면피용 구실을 잔뜩 덧붙였다 해서 사람들이 당연히 그 책임을 면해 주어야 하는가. 우스운 소리다. 책임은 스스로 “난 책임이 없다” 면피한다 해서 진짜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석에서의 잡담도 아니고, 이렇게 공공연히 ‘입장’을 정리해 내놓을 것이었다면, 사실 의료인으로서의 입장은 이런 것이어야 했다. “불법적으로 유출된 것임이 의심된다. … 의료인으로서의 윤리에 입각하여, 우리는 환자 본인의 의사와 동떨어져 불법적으로 유출된 것임이 의심되는 이 자료를 판독해야 할 그 어떤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물론 여기에, “병무청과 환자 본인의 주장을 신뢰하며, 이를 의심할 만한 합리적인 정황이 있다면 정식 절차를 통해 조사해야 할 것이다” 정도의 입장이 덧붙여져도 괜찮았을 것이고.

물론 많은 사람들이 강용석의 음모론에 도취되었고, 개인의 의료 기록에 대해 왈가왈부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며, 또 몇몇 삼류 언론이 이를 부추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음모론에 권위를 부여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전문가들이었다. 부끄럽게도 전문가들은 강용석의 헛발질에 가장 강력한 힘을 실어주었고, 그리고 – 여전히 그리 반성의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일이 적당히 진정된 후 일각에서는 “의사들의 판독 자체는 잘못되지 않았다” 같은 논리로 문제를 지독히도 좁게 축소시켜 당시의 움직임을 합리화하기도 했다. 또 보수 지식인을 자칭하며 “병역비리는 뻔할 뻔 자”라고 공세를 전개했던 자들은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오히려 무리한 방어논리를 내세우던 진보 지식인들이 문제”라며 정신승리를 한다. 그리고 누구보다 강력하게 힘을 보태던 전여옥 의원은 “일상생활이 가능하던데 그럼 군대에 가라” “최소한 공익이라도 가라(박씨는 4급 판정을 받았으므로 굳이 전여옥씨가 부추기지 않아도 공익 근무를 하게 된다)” 같은 주장을 하질 않나, 박씨를 일컬어 ‘낙타체질’ 운운하는 저질스런 글을 리트윗하기도 했다.

강용석은 완패했지만, 여전히 꺼림칙함이 남는다. 피해자는 여전히 남았고, 그들의 상흔은 그 깊이가 얕든 깊든 쉬이 치유되지 않을 것이니. 그리고, 여전히 음모론을 부추기던 사람들은 반성하는 대신 자신의 입장을 합리화하느라 애쓰고 있을 뿐이니.

  2 개의 반응

  1. -정신 이상자들이 한 둘이 아니군요 .의사들이 이 모양이니 . 대한민국의 미래가 정말로 격정이 됩니다. 가진 놈들이 배운 놈들이 이 모양 이 꼴이니 부처님 예수님 공자님 소끄라테스님 구비 살피소서.

  2. 정신승리.. 하하 딱 어울리는 말이네요.

 댓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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