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강양은 화학과에서 전과(轉科)하여 경영학도가 되었다고 했다. 놀려먹는답시고 E-Z 규칙이니 SN 메커니즘이니 하는 헛소리를 늘어놓다가, “대기업 들어가서 연봉 2천 받아야지!” 하는 응원 아닌 응원(?)을 했는데 바로 “그거야말로 헛소리”라는 욕을 얻어먹었다. 단순하게 생각하자. 국내 1천대 기업의 대졸자 초임 연봉은 2천 520만원으로 조사되어 있으며, 심지어 업계 10대 기업의 대졸 초임은 3,000만원에 이른다. 통계상으로 연봉 2천은 비현실적인 수치가 아니다. 그런데 나는 욕을 얻어먹었다.
여기에 통계의 묘(妙)가 있다. 한국의 중소기업은 약 3백만 개 정도로, 이들은 전체 고용의 8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통계는 기업들을 무작위로 표본추출하는 지극히 상식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대신, 맨 위에서부터 잘 나가는 기업들을 적으면 10개, 많아봐야 1000개 정도 잘라내 그것을 표본이라고 우긴다. 거친 비유법을 사용한다면, 60만 고등학생들의 평균 점수를 조사한답시고 상위 10만명(심지어 천 명)의 점수만 평균낸 셈이다. 실제로는 아마도 85%의 중소기업에 취직하게 될 대부분의 대졸자가 받을 연봉이 통계에서 빠져 있다. 추측 그대로 그 85%의 사람들에겐 초임 2천이 쉬운 숫자가 아니다.
여기에 산술평균(arithmetic mean)의 함정까지 끼어들면 문제가 아주 심각해진다. 산술평균은 가장 자주 사용되는 대표값이지만, 데이터가 아름다운 가우스분포를 그리지 않는 한 집단을 잘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상 기업 가우스전자를 예로 들어 보자. 가우스전자는 사장 가우스 씨가 1500만원, 5명의 이사들이 700만원, 5명의 작업반장들이 250만원, 20명의 직공들이 120만원을 받는 회사다. 평균을 내 보자. 가우스전자에서 실제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은 120만원이지만, 데이터상으로 이 회사의 평균 임금은 280만원이다. 중앙값(median)이나 최빈수(mode)가 모두 120만원임에도 불구하고, 산술평균은 어쨌든 280만원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통계는 바로 이 산술평균만을 데이터로 사용한다.
통계는 과학의 얼굴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쉽게 믿음을 준다. 거기에 3년만에 연봉 5천의 꿈을 이루었다는 묘령의 펀드매니저 A씨나, 주식투자로 3년만에 10억을 벌었다는 B씨의 신화적 성공담, 혹 선생이나 공무원 등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얻고 있는 C씨, D씨의 이야기들이 눈과 귀를 어지럽힌다. 사람들은 성공한 가우스 사장의 일화는 듣고 싶어하지만, 연봉 1800만원으로 다섯 식구를 먹여살리는 공장 노동자 노동해 씨의 일화는 그저 소수의 예로 치부하고 싶어한다. 사람들은 거대한 현실 왜곡의 장을 펼쳐간다. 대한민국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봉 4천, 5천을 받으며 여유롭게 살아가고 있다고 착각’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통계만큼 또 쉽게 사람을 속이는 것도 없다. 도시근로자의 평균가구소득이 3700만원이라는 통계자료를 본 학생회장 조형은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런 결과가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대졸 초임자의 평균 연봉이 2500만원에 달한다는 통계자료에도 불구하고, 강양은 “연봉 2천 받아야지”라는 내 응원에 손쉽게 헛소리의 딱지를 붙였다. 숫자 놀음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연봉 1800에 감지덕지하는 노동해씨의 현실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대졸 화이트컬러 노동자들의 현실마저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 대한민국은 통계와 숫자 속에서는 이상적인 자본주의 나라가 되어가고 있지만, 두 눈 앞에서는 증오와 절규가 가득한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6 개의 반응
댓글을 씁니다.
http://yeinz.net/blog/archives/81/trackback

한국의 통계가 좀 위험하죠. 위의 경우는 그래도 일단 말한 그대로 실행한 것이니 양반이지 않을까요? 지니계수처럼 그 내용에 문제가 있는 것은 관심이 없는 한 알기도 힘드니 더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선진국 수준의 한국의 평등 -_-;..
세뇌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한의대 동학들과 같이 얘기를 나누다가, 그 사람들의 경제관념에 경악한 적이 있거든요. 중소기업에도 연봉 2천은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고, 몇 년 안 돼 3, 4천씩 버는 사람들의 일화가 지극히 ‘평범한’ 일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많고……. 이런 가짜 통계에 세뇌당한 사람들은 그 선의에 관계없이 사회적인 부조리에 힘을 보태게 되겠지요.
동감합니다. 통계는 수치를 제시하고 해석된 의의를 제공할 뿐, 그 정의를 알려주진 않는 것 같습니다…… 독자들은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숫자의 화려한 향연을 보며, 자칭 정론지들이 주입하는 해석된 의의에 몸을 맡기게 되겠지요. 지금 지니계수가 이용되는 모습처럼……
- 요건 헛소리였구요.
이런 부족한 글이 관련 전공자의 눈에 띄면 언제나 참 부끄럽고 불안합니다. 글이란 참, 쓸 때는 용감해지는데 쓰고 난 후의 상호작용에서는 글쓴이를 오도가도 못할 함정으로 빠뜨리는 것 같은 기분이에요.
이건 평균의 잘못이 아니라 해석자의 잘못인 것 같은데요… 평균은 말 그대로 평균입니다. 4년제 졸 1000대 기업 초임 평균은 말그대로 평균이지 일반적으로 받게 되는 연봉도, 누구나 받아야 하는 최저 연봉도 아닙니다. 만약 당연히 평균 연봉은 받겠지하고 생각한다면 그 수치는 평균이 아닌 최저 연봉이겠죠. 심지어 초임도 아닌 기업 평균 급여나 도시 근로자 평균소득을 초임을 비교하거나 1000대 기업 초임과 중소기업 초임을 비교하는 것은 더더욱 큰 오류로 보이는 군요.
네. 통계는 숫자일 뿐, 해석자의 잘못이겠죠. 보다 명확하게 말하자면, “1차적 해석자”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SPSS든 Stata든 어쨌든 일련의 통계 패키지들은 매우 기계적인 결론을 제시하지만, 일반인들이 접하는 통계란 그 기계적인 데이터를 p-value가 어쩌니 대표값이 어쩌니 분포가 어쩌니 유의수준이 어쩌니…… 하는 식으로 해석하고 검정한 2차적 결과물이기 마련입니다. 그 2차적 결과물은 인위적으로 일련의 “한국식 통계의 함정”을 창조합니다. :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34&article_id=0000237440§ion_id=101&menu_id=101 이런 함정에 빠져들지 않는 것도 개개인 지성의 몫이라 하신다면 딱히 드릴 말씀이 없지만…… 그리고 혹여 제가 중간에 도시근로자 평균가구소득을 잠시 예로 들어 혼란을 초래한 것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건 기업 초임과는 별개의 얘기입니다. 서울권이 아니고서야, 심지어 소수 베드타운을 제외한 수도권에서조차 평균 3700만원씩을 벌어들이는 가구는 흔히 보이지 않잖아요. 그 얘기를 나누었던 거에요.
저는 수학에 관심있는 사람도 아니고, 과학에 있어서도 “대입 면접 문제는 심심찮게 틀리면서 양자역학 교양서나 뒤적이고 있는” 기초없는 우민에 불과합니다. 이 글 역시 애당초 수학적 엄밀성을 논하고자 했던 글이 아니었고, 사회적인 병리, 혹 말과 언어, 언론에 대해서 평소 생각을 논한 것에 불과해요. 어떤 학술적인 엄밀성의 부족이나, 몇 가지 “엄밀해야 할 용어 사용”의 혼돈 때문에 읽기가 껄끄러우셨대도, 그냥 “그래, 그 정도” 하고 넘어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역시나 진정성 있는 답글은 언제나 저의 무지(無知)를 일깨우며, 글쓴이를 오도가도 못할 함정으로 빠뜨리곤 하는군요.
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수학적 엄밀성이 아니라 누구나 평균은 받겠지라고 생각하는 그 안일성입니다. 평균을 한다는 것 생각 보다 쉽지 않습니다. 그것도 단지 등수가 아니라 결과물에서 평균을 가져간다는 것은 더더욱 어렵겠지요. 당연히 돈을 천만원을 벌었으면 N분지 1을 해야히 하는 마음이 있는 순간 사회에 동기라는 것은 없어지고 노력할 필요라는 것도 없어 질 것입니다.
물론 옳은 말씀입니다만, 그 얘기라면 제 글과는 좀 동떨어진 것 같은데요…… 적어도 제 주위에서, “평균의 함정”에 빠진 건 취업 전선에 뛰어들 필요 없는 쁘띠부르주아들이었는데다, 제가 글을 통해 얘기하고 싶었던 건 그 착각을 유도케 하는 시스템, 혹 나아가 ‘선전’ 같은 거였으니까요. 이 글에서 취업 전선의 프롤레타리아트라 할 만한 사람이라면 강양 뿐인데, 그녀도 “평균 쯤은 누구나 받겠지”란 생각을 한 게 아니고, “평균 정도는 받으라”는 제 응원을 “헛소리”로 만들어버린 사람이었구요. 어쨌든, 글쎄요…… 저로서는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