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석패율에 합의했다는 소식에 (특히 통합진보당 및 진보신당 지지측에서) “거대정당의 나눠먹기” “양당제의 고착화를 위한 것”이란 식으로 비난하는 모양이다. 이에 대해 간단히 단상을 정리.
석패율제가 “거대정당 나눠먹기를 위한 것”이라는 견해는, 석패율제가 2등 후보자를 구제하여 당선시키는 제도라는 막연한 이해에서 출발하는 것 같다. 따라서 1, 2등 정당끼리 사이좋게 의석을 나눠먹게 되리라는 것. 그러나 실제 도입이 검토되고 있다는 석패율제는 그렇게 단순한 제도가 아니어서…
여기서 말하는 석패율제는 대강 이런 제도다. 지역구로 나선 후보자를 비례대표 명부에도 올릴 수가 있다는 것. 만일 이렇게 양측에 다 올린 후보가 지역구로 당선이 되면 그냥 당선이 된 거고, 만일 당선이 못 된다면 이 석패율 제도로 인해 ‘지역구 결합 비례대표’란 것으로 당선될 가능성이 생긴다. 단 해당 지역에서 해당 정당의 의석수가 일정 비율 (안에 따르면 1/3이라고 한다) 이하이고, 해당 후보의 지지율이 일정 % 이상 (역시 안에 따르면 10% 이상이라고 한다) 이며, 해당 후보가 비례대표 순위상 당선권 안에 있을 때에만 해당이 되며, 이런 조건을 만족하는 대상이 한 지역구에서 여러 명 나올 경우 최다득표자 1명만 당선이 된다고 한다. 써놓고 보니 상당히 복잡한 제도.
예를 들어 임예인씨가 민주당 후보로 경상도의 새볍 갑 지역에 출마했다고 해 보자. 임예인씨는 20%를 득표하여 낙선했는데, 석패율제에 따라 비례대표 명부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지지율도 일정 수준 이상이고, 해당 지역에서 민주당 의석수도 일정 수준 이하였고, 해당 지역에서 2위로 낙선을 했다. 그럼 이 사람도 ‘지역구 결합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무조건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이 사람의 비례대표 순위가 35번이라고 해 보자. 그런데 민주당의 정당 지지율은 50% 정도밖에 안 나와서, 비례대표를 28명밖에 당선시키지 못했다. 그럼 임예인씨는 어차피 당선이 안 된다는 것. 실제 제도와 다소 다른 점이 있을 수 있으나, 어쨌든 이 제도의 대강은 이렇다고 한다.
이 제도의 특징은, 결국 석패율 제도로 인해 특정 정당이 의석을 더 얻는다거나 덜 얻는다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차피 그 정당이 얻은 지지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은 배분되고, 석패율 제도로 인해 당선되는 ‘지역구 결합 비례대표’란 그 비례대표 의석 안에서만 나올 수 있는 것이기 때문. 어떤 정당에서 지역구 결합 비례대표가 한 명 더 나온다면 그건 그 정당에서 비례대표가 한 명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 명 더 나온다면 두 명 더 줄어드는 것이고, 열 명 더 나온다면 열 명이 더 줄어드는 것이다.
실제로 통합진보당 대표인 이정희씨도 석패율제를 “의석수와는 무관한 이슈”라고 답하고 있다.
그렇다면 석패율제에는 문제가 없는가 하니… 일단 지역구도를 타파하기 위한 차선책이라고 선관위는 설명하고 있지만, 이에 반대하는 구 민주노동당 / 진보신당 인사의 의견은 좀 다르다. 그들이 드는 문제는 대강 이렇다. 1) 사실상 비례대표가 줄고 지역구 의원이 늘어나는 효과 2) 지지율이 낮은 군소정당의 경우 이 제도의 활용이 어려움 3) 정당정치 강화라는 목표에 맞지 않음 4) 석패율제로 당선된 당선인의 모호한 대표성 등.
한편 선관위의 반박은 이렇다. 1) 구 민주노동당 / 진보신당에서 비례대표를 늘릴 것을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현실적으로 어려움. 지역구를 줄이는 것은 해당 지역 유권자의 반발, 지역구를 줄이면서 현재 지역구의 균형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불가능하며, 국회 의석을 늘리는 것은 국민 정서상 사실상 불가능함. 2) 따라서 지역구도를 희석하는 데 있어 석패율제는 차선책으로서의 의미를 가질 수 있음.
구 민주노동당 / 진보신당 측의 주장이 옳은지, 선관위 측의 주장이 옳은지는 다소 애매한 문제. 민주통합당 이인영 의원과 통합진보당 이정희 의원이 이 문제로 설전을 벌이고 있기도 하다.
다만 어쨌거나 몇몇 사람들이 제기하는 음모론처럼, 이것이 거대 양당의 나눠먹기, 양당제 고착화를 위한 꼼수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심지어 구 민주노동당 / 진보신당 의원이 주최한 관련 토론회에서조차, 석패율제가 양당제 고착화를 불러오는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간접적으로 그리 될 수 있다는 정도의 견해를 내비쳤을 뿐이다. 고로 여기저기서 들리는 “사악한 민주통합당, 내 이럴 줄 알았다” “진보를 팽하고 한나라당과 손을 잡았다” 하는 얘기는 솔직히 말해 좀 불쾌한 흑색선전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9 개의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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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구도 타파 돌격대원을 위한 생명보험 같은 느낌이 드네요ㅋ
그리고 석패율제가 민주 한나라당 양당에게 유리할게 없다는것도 단정지을 수 없는 문제입니다. 적어도 석패율제로 당선가능성이 보이는 의원들의 지역구선거의 비례대표표는 해당의원을 석패율로라도 뽑기 위해 양당의원들에게 갈 가능성이 있죠. 정략적으로 아예 누구 누구 처럼 훌륭한 의원을 석패율로 구제하기 위해서 정당에 대한 투표도 의원 얼굴 보고 우리당을 뽑아주세요 할 수도 있구요.
저는 1) 경선 과정에서의 독일식 정당명부제 도입 요구 (이거 진짜 궁금한데, 이런 게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가요?) 2) 이정희의 일방적인 관악 을 양보 요구 (여긴 민주통합당 김희철 의원의 지역구입니다) 등을 보면 실제로 통진당이 실제로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봅니다. 만일 제가 민주통합당 인사라면 일단 여론 때문에 연대 하는 척은 하겠지만, 상대가 저런 식인데 절대로 안 할 겁니다. 통진당의 지지율 자체가 지금 급하락세이기도 하고.
민주통합당이 통합진보당을 정책연대의 파트너로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반증은 될 수 있죠. 진정으로 통합진보당과 이번 총선 그리고 다음 대선에서 연대를 고려하고 있다면 적어도 한나라당과의 석패율제 도입 이전에 통합진보당과 합의가 먼저 이루어졌어야죠.
이해찬의 인터뷰에서도 뻔히 드러났던 사실이지만 민주통합당쪽에서는 애초에 통합진보당을 연대의 파트너로 전혀 가정하고 있지 않다고 봅니다. 그냥 야권연대의 깃발만 살살 형식적으로 흔들고 있는거죠. 이러고서는 나중에는 야권연대실패의 책임을 통합진보당의 지나친 원칙주의때문이라고 둘러댈 가능성이 큽니다. 애초에 뭐 하나 양보하고 합의해나갈 생각도 없으면서 연대를 들먹거린다는 자체가 위선입니다.
예로 드신 사항이 통합진보당에서 무슨 마지노선처럼 내놓은 안이 애초에 아닌데 이번건과 비교하기에는 좀 무리 아닌가요. 1) 같은 경우 불합리한 면이 있어 받아들일수 없다라고 하고 그게 나름대로 타당한 점이 있다면 되는거고요. 2) 같은 경우 결국 당선 가능성이 높은 곳에서 누굴 대표로 내보낼 것인가의 문제이고 어떻게 보면 연대의 핵심부분인것 같은데 논의 자체가 이루어질 수 없는 문제들은 아니에요.
이정희가 당선가능성이 높은 지역구를 선택한건 꼴사나운 짓이긴 하지만 이걸 억지고 연대의 자세가 안되어 있는거라고 단정지을정도의 행동은 전혀 아니라고 봅니다.
지금 제일 꼴사나운 짓을 하고 있는건 일방적으로 석패율제 도입하고 호남에서는 통합진보당 후보는 나올 생각도 하지 말라고 큰소리로 호탕하게 외치고 있는 이해찬을 정책고문으로 모시고 있는 민주통합당입니다.
석패율제로 누가 당선되고 말고 하는 것은 철저히 전국정당투표에 의해서만 결정됩니다. 석패율제로 구제받을 가능성이 있는 누구를 고려해서 전략적으로 해당 정당에 투표한다… 는 것이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할 일은 아니지만 그건 너무 멀리 돌아가신 것 같은데요. 게다가 누구 누구처럼 훌륭한 의원을 뽑기 위해 우리 당에 정당투표하세요 라는 건 비례대표제 하에서 너무나 당연한 선거 전략이 아닙니까? 당내 주요 인사를 비례대표 후순위에 배정해야 한다는 것도 이런 걸 노리는 경우가 많고. 물론 망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인 것 같습니다만.
1) 저는 ‘경선 과정에서의 독일식 정당명부제 도입’이라는 요구 자체가 일종의 틀짓기라고 봅니다. 이걸 거부하면 ‘독일식 정당명부제에 대한 거부’로 몰아갈 수 있게 만들었어요. 말씀하신대로 실제 서로 다른 정당간의 선거연대란 적당한 합의와 적당한 당내정치로밖에 불가능한 것인데, 마치 통진당에 몇 석을 보장해주는 것을 ‘정당명부제 도입을 위한 것’이란 식으로 포장해놓고 시작하고 있단 말입니다.
2) 이정희는 그 정당 최대 계파의 대표입니다. 통진당 측의 관악 을 양보 요구는 꽤 오래 전부터 잡음을 일으켜왔고 민주당 측에서는 절대 불가를 얘기해왔어요. 지역구에서 높은 지지를 얻고 있는 현역 의원이 있는데 그 지역구를 상대 정당 후보에 일방적으로 양보하고 아예 후보를 안 낸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됩니다. 일례로 민주당 정동영이 통진당에 울산 북구를 양보하라고 요구한다면 통진당 쪽에서 어떤 반응이 나올지 궁금한데요. 물론 다수당과 소수당의 차이를 무시할 순 없겠습니다만, 아니, 정당간의 이해관계는 그렇다 치고, 현역 의원에 대해 높은 만족도를 보이고 있던 지역 유권자들은 갑자기 뭐가 되는 건가요?
3) 호남에서 통진당 후보, 나와도 됩니다. 민주당이 독재 정권도 아니고 나오지 말라고 어떻게 강요합니까. 반대로 보자면, 이건 통진당이 호남 일부 지역에서 민주당이 ‘출마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는 상황인 건데요. 텃밭에다가 기존 지역구 의원들이 버티고 있는 곳이기도 한 곳을 일방적으로 양보하라는 요구는 꼴사나운 것이 아닌가요? 그냥, 소수정당이니까?
호남에서 통합진보당 후보가 야권연대 후보로 나와서 당선되는 모습이 제가 볼 때는 한나라당 후보가 석패율제로 의석 챙겨가는것보다는 훨신 모양새가 좋아보이는데요.
애초에 호남출신 민주당 의원들 전부가 그렇게 훌륭한 분들도 아니고 추려낼 사람들은 추려내고 그 자리에 괜찮은 인물로 진보당후보가 대표로 나서는게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민주당 입장에서도 애초에 그렇게 손해볼게 아니에요. 연대에서의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서 전체적인 이미지 진작도 되잖습니까. 기득권의 포기라는 면에서 어필할 수 있는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양당이 ‘다른 정당’이라는 게 문제겠죠. 한 정당 안에 있다면 추려낼 사람을 추려내고 새로운 사람을 공천하는 것은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김희철 공천 안 하고 이정희 공천해도 아무 문제 없어요. 그런데 추려낼 사람을 추려내고 우리는 그냥 후보 안 낸다는 건 좀 다른 차원의 문제죠. 그럴 거면 뭐하러 당 나눴나요, 그냥 이쪽 통합당이랑 저쪽 통합당이랑 대통합해서 통합통합당 만들지.
사실 선거 연대라는 게 무슨 내각제 하에서 공동정부를 만들자 이런 내용이라면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민주당과 통진당이 논의하고 있는 선거 연대는 그냥 대선을 위한 이합집산에 가깝다고 봅니다. 그 상황에서 한쪽이 “특정 지역에서의 일방적 양보 없다”고 했다고 해서 이를 파렴치한 것으로 몰아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민주당이나 통진당이나 명분은 됐고 의석 수 싸움인 건데, 통진당의 지지세가 거꾸러질 대로 거꾸러진 상황에서 민주당이 무리해서 그 요구를 받아들일 이유도 찾지 못할 것 같고.
물론 대통합론자나 MB 타도를 최고 목표로 두고 계신 분이라면야 얘기가 좀 달라지겠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