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1월 7일, 야후의 웹툰 ‘열혈초등학교’를 그 일면에 싣고 “폭력 웹툰” “왕따 폭력 피해 학생을 우스갯거리로 만들고 있는 것” 등이라고 비난했다. 또한 이것이 학교 폭력을 조장할 수 있다는 전문가의 견해를 함께 싣기도 했는데, 이 기사는 기폭제가 되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웹툰의 집중 심의에 나서겠다는 의사를 표한 바도 있다. 이에 야후는 웹툰을 전부 삭제하고 연재중단하는 것으로 납작 업드린 자세를 취했는데…

관련 기사 : “열혈초등학교”, 이 폭력 웹툰을 아십니까 (조선)

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이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라 주장하는데, 나는 좀 애매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웹툰을 학교 폭력의 주범인 것처럼 몰아간 조선일보의 보도도, 정부 기관이 나서서 사실상의 검열을 하고 있는 현행 제도도, 연재중단이라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 야후도 모두 문제다. 표현의 자유를 들고 나올 만 하다. 그런데, 묻고 싶다. 만일 조선일보가, 방심위가, 야후가 이렇게 나서지 않았다면, 열혈초등학교는 그냥 연재되도 괜찮은 만화였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조선일보, 방심위, 모두 문제다. 모두 비판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열혈초등학교를 보호하진 못한다. 사실 이 만화는 그보다 훨씬 전에 이미 이용자들의 항의를 받고 내려갔어야 할 만화다.” 사실 조선일보가 문제시하는 폭력성은 별 문제도 아니다. 이 만화는 그야말로 학교폭력 희화화, 소수자 희화화에 장애인 비하 등등 욕먹을 소재의 종합선물세트다. 주먹에 맞아 이빨이 다 빠진 아이에게 다른 아이가 “시켜볼 게 있다”며 바지를 벗고 다가가고, 왕따를 당하던 아이는 다른 왕따가 나타나자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것 같다”며 괴로워하다 결국 다른 왕따를 피가 뿜어져나올 정도로 구타한다. ’18K’를 언어 유희랍시고 욕설과 ‘게이’의 합성어로 변화시켜 게이에게 갑자기 주먹을 날린다. 틱 장애를 희화화한다거나 그 외의 장애를 희화화하는 경우가 한 두 번 나온 게 아니다. 물론 등장인물은 교사나 단역 등 일부를 제외하면 모두 초등학생이다.

이 만화의 문제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 만화의 주요 팬층은 진짜로, 초등학생들이다. ‘열혈초등학교’를 보면 거의 매회 “컴퓨터실에서 보는 사람 추천” “나도 초등학생이다 추천” 이런 댓글들이 최고 추천 댓글 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아동 계층의 사랑을 받아왔고, 야후는 이를 방기해왔다. 혹 열혈초등학교 독자 공모전 같은 걸 하면 실리는 작품들이 거의 사인펜이나 색연필로 그린 것들이었다. 그 있잖나, 초등학생들이 쓰는 십 몇 색 색연필 사인펜 세트 같은 것들. 그리고 내용은 학교에서 A가 B를 죽였다. 그걸 봤을 때 나는 예전에 북한 어린이들이 무슨 “미제 처단” 같은 주제로 포스터를 그렸다던가, 그 소식을 봤을 때와 비슷한 섬뜩함을 느꼈다. 그런데 작가든 웹툰 담당자든 누가 선정했는지는 몰라도, 좋다고 그런 공모작을 입상시키고 선물을 줬고.

누군가는 이 만화를 ‘사우스파크’에 비견했지만, 미국에서도 사우스파크는 TV-MA 등급이다. 이게 뭔고 하니, 우리나라로 따지자면 19금. 열혈초등학교는 초등학생들에게 아무런 경고도 없이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주민번호를 묻는 건 다른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 해도, 이 만화는 심지어는 (외국 성인 사이트가 많이 채택하고 있는) 성인임을 한 번 묻는 장치조차 없고, 또한 폭력성에 대한 경고조차 없다. 다만 작가 귀귀가 연재중단 후 본인의 블로그에 이를 비꼬는 문장을 한 번 삽입했을 뿐.

과거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던 사례를 이 사건에 비견하는 경우도 많은데 사실 좀 과한 비유라고 본다. 그런 비유가 가능하다면 나는 “(연출된) 스너프 필름을 아동에게 보여주는 것도 표현의 자유란 이름으로 용인하겠는가”라고 묻고 싶다. 웹툰 작가 강도하씨는 “특정 영화를 유해영화로 게재했다면 지금보다 더 난리가 났을 것”이라 주장하지만, 대한민국엔 아쉽게도 청소년관람가에 초등학생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살인극과 펠라치오 등의 소재를 다루는 영화가 없다. 그리고, 열혈초등학교는 그렇게 하고 있다. 이건 중요한 차이점이다.

물론 표현의 자유가 당장의 현존하는 위험이 없이 함부로 제약되어서는 안 된다는 데는 동의한다. 이는 매우 중요한 가치이며, 다른 위험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되는 중요한 합의이다. (한국에서는 국가보안법을 비롯해 이래저래 쉽게 버려지는 것 같지만.) 그러나 표현의 자유가 수정헌법 1조에 의해, 가장 폭넓은 수준으로 보장되는 미국마저도, 무분별한 표현(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단어지만, 이 상황에서는 이만큼 적절하고 깔끔한 단어가 없을 것 같다)에 대해 아동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장치는 마련되어 있다. 그런데 열혈초등학교는 그마저도 포기하지 않았는가.

만화가 김태권씨는 마치 이것이 조선일보의 ‘무리수’인 것처럼 포장하며 “조선일보가 아이들에게 인기가 없으니 인기가 있는 열혈초등학교를 부러워하는 것” 같은 의견을 트위터에서 리트윗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조선일보가 ‘열혈초등학교’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이 정도 이슈 제기에서 멈췄다는 생각을 한다. 만일 조선일보가 본격적으로 ‘열혈초등학교’의 유해성에 대해 여론몰이를 시작했다면, 이건 웹툰계에 있어서는 핵폭탄 수준의 파괴력을 가졌을 것이다. 아동을 보호할 최소한의 장치조차 없이, 오히려 아동을 주 고객층으로 삼아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컨텐츠를 팔아넘겼던 야후 웹툰의 몰지각한 행태가, 결국 웹툰 전체에 대한 비난으로 번졌을 가능성도 있었으리라.

인터넷이란 공간은 과거 심의의 기준과 그 기반이 되는 생각을 모두 뒤집어버리는, 실로 놀라운 공간이다. 그 앞에서, 사실 조선일보가 문제를 제기하기 전에, 우리는 이미 훨씬 일찍 이 만화에 대해 논의해야 했다. 아동에게 폭력과 소수자, 장애인을 희화화하고 범죄를 우스운 것처럼 다루는 만화를 보여주는 것도 표현의 자유란 이름으로 용인되어야 하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클릭 몇 번으로 접근할 수 있는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표현의 자유와 아동 보호라는 두 가지 가치를 동시에 지킬 수 있는 방안은 과연 존재할까. 그리고 존재한다면 그 방법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더 일찍 고민했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첨언. 열혈초등학교 / 귀귀 / 야후는 ‘순결한 피해자’ 코스프레 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동안 해 왔던 일을 좀 생각해야지.

  5 개의 반응

  1. 웹툰 “열혈초등학교” 연재 중단과 관련하여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간만에 (저로서는) 긴 글을 쓰려니 머리에 쥐 나네요. ㅡ,.ㅡ; 글의 성격상 반말체이며, 부연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대체로 링크로 처리했습니다. 하나씩 클릭하면서 읽으시면 더 귀찮아요. 좋습니다.   1. 그들의 저격 어떻게 보면 꽤나 역사적인 일이 일어났다. 웹툰의 한 컷이 중앙일간지의 1면에 말 그대로 ‘대문짝만하게’, 23…

  2. 열혈초/귀귀/야후가 ‘순결한 피해자’인양 스스로 언급하는 인터뷰나 그런 사례들이 있었나요? 귀귀 작가가 블로그에 올린 열혈초 183화가 그렇게 보일 수도 있었겠긴 한데, 그 외에는 제가 못 본 듯 해서… 궁금해서 여쭤봅니당.

    • 아, 그 183화 보고 하는 얘기 맞습니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183화 위에 달린… “청소년에게 유해할 수 있다”는 문구를 대놓고 비꼰 부분은 아무래도 그런 혐의가 짙었는데… 이건 그런 최소한의 아동 보호 장치조차 조롱하고 본인의 잘못이 전혀 없다고 주장하는 거였거든요. 물론 귀귀가 아예 표현의 자유를 무제한적으로 주장하는 급진적 인사라면 얘기가 좀 달라지긴 하겠습니다만(…)

      + 야후를 끼워넣은 건 열혈초 문제에 대한 공식적인 해명 없이 그냥 연중 더하기 삭제로 땜질한 것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그동안의 연재에 대해서든, 갑작스런 삭제 조치에 대해서든 당연히 해명을 해야 할 입장인데 그냥 입 다물고 지우기만 하면 장땡이란 태도로 일관하는 것 같아서요.

  3. 웹툰 “열혈초등학교” 연재중단과 관련해서 해당 작품의 내용상 문제에 대해 지적하는 글들을 읽고 들었던 몇 가지 생각… 인터넷 주인찾기 동인이자 존경하는 블로거이며 민주통합당 청년비례대표 국회의원 경선에 출사표를 던지신(헥헥) 이승환 님과, 역시 인터넷 주인찾기 동인이시며 존경하는 블로거이자 잘 생기고 명민하고 예리하신(헥헥) 예인 님께서 관련된 글을 블로그에 남겨 주셨습니다. 조선일보의 열혈초등학교 비판은 부당한가? :…

  4. 앗… 블로그에 핑백이 지원되나 보네요. 트랙백을 따로 보냈더니 2개가… 하나는 지워주셔도 됩니다. ^^;;

 댓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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