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화, 기적의 과정
조이제, 카터 에커트 편저(2005).
월간조선사

박정희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알에 사망한 것이 1979년의 일이건만, 아직도 박정희란 석 자 이름은 한국에서 가장 논쟁적인 소재 중 하나이다. 유신으로 대표되는 그의 권위주의적인, 다소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파시스트적인 정치 행태에도 불구하고, 이승만 체제의 총체적 난국은 물론 윤보선-장면 체제의 무능력한 분열상을 극복하고 한국 경제 발전의 기틀을 쌓은 그의 업적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 근대화, 기적의 과정>은 그 중 후자(後者)에 주로 초점을 맞추어 박정희 시대를 조명한다. 월간조선사와 발행인 조갑제의 이름이 말해주는 바와 같이, 박정희에 대한 이 책의 가치평가는 심각하게 편파적이며 그의 과오에 대해 의도적으로 축소하거나 짧게 에둘러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체제의 경제적 효율성에 대한 <월간조선> 류의 진단은 <한겨레> 등으로 대표되는 중도, 혹 개혁적 매체의 진단보다 보다 설득력이 있다.

책이 진단하는 박정희 경제체제의 핵심은 교도자본주의(Guided Capitalism)에 있다. 이는 프리드리히 리스트(Friedrich List)의 독일식 자본주의 이론과 이를 바탕으로 한 메이지(明治) 유신의 정신을 박정희가 거의 그대로 계승했기 때문인데, 실제로 박정희의 주요저작 <국가와 혁명과 나> 등에서 그는 메이지 유신과 교도자본주의에 대한 자신의 논점을, “無恒産因無恒心” 등으로 상징되는 경제 발전 우선 노선과 함께 역설하고 있다.

교도자본주의는, 그 중에서도 특히 박정희식의 교도자본주의는 시장(Market) 중심의 체제가 아니다. 시장과 자본주의의 원리를 존중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정부가 주도하는 통제와 계획을 중심으로 한다. 박정희 체제는 금융 제도나 대충(對充)자금 등을 적절히 활용하여 수출과 무역을 중심으로 한 경제체제를 수립하였으며, 정부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기업과 시장을 강력하게 압박했다. 또한 농촌 정책에 있어 박정희 정부가 도입한 이중가격제는 차라리 공산주의 사회에 어울릴법한 반(反) 시장적인 조치였다.

이러한 교도자본주의와 고도성장이 가능했던 배경으로 공저자 중 한 명인 정범모 서울대 교수는 다섯 가지를 제시한다. 1) 1950년대부터 배출되었던 교육자원의 팽창, 2) 박정희라는 걸출한 지도자, 3) 정주영으로 상징되는 신화적인 기업가, 4) 군대 조직 등으로부터 배출되는 뛰어난 기술관료, 그리고 5) 박정희 체제의 정치적 안정성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 중심의 분석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차라리 정주영, 이명박같은 신화적 기업가가 등장할 수 있었던 당시의 드라마틱한 시대상이나, 박정희가 선보인 실용주의적 파시즘 체제, 그리고 무엇보다 이승만 시대의 토지개혁 등 보다 체제(System)적인 분석이 더 설득력이 있다 할 것이다.

여하튼 박정희 시대의 정부주도적 교도자본주의는 놀랄 정도의 결실을 한국에 안겨주었다. 당시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비약적인 것이었으며, 후기 경제개발5개년계획에 접어들며 박정희 정부가 시도한 중화학공업 및 첨단산업 육성은 오늘날까지 그 비약적인 발전이 이어지게 만들었다. 그 뿐 아니라 인구정책과 교육으로 대표되는 인력개발 계획과, 시설은 물론 R&D에 대해서도 아낌없이 쏟아부었던 방대한 투자, KIST와 KAIST 등이 상징하는 과학기술정책 역시 오늘날 경제에 든든한 기반이 되고 있다.

물론 무시 못할 오점들도 남아있다. 박정희 시대의 정부주도형, 경제중심 과학기술정책은 오늘날에 와서 “황우석 사태”라는 이름으로 그 망령을 드리우고 있으며, 많은 학자들에 의해 당시의 과잉투자, 과잉설비가 현재 경제 위기의 근본이라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또한 당시의 비민주적 노동정책은 오늘날까지 우리 사회에 남아 노사간의 극한 대립을 어두운 그림자로 드리우고 있으며, 전태일이라는 상징은 당시 박정희 정부가 노동자들을 얼마나 통제하고 착취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또한 성장주도형 경제정책에 의한 당시의 심각한 인플레이션과, 경제 발전에 따른 대충자금 감소에 따른 조세 강화는 결국 서민경제를 붕괴시키고 부마사태의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이후 전두환 체제가 강력한 경제안정 조치와 인플레이션 억제 조치를 시행하긴 했으나, 박정희가 살아있었을 경우라도 박정희의 고도성장체제가 얼마나 유지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또 책은 유신과 유정회 등으로 대표되는 박정희 체제의 정치적 붕괴에 대해 인위적으로 외면하고 있다.

또한 오늘날 되살려진 박정희의 망령은 본래의 박정희와 달리, 한나라당의 친(親) 기업 정책과 시장만능주의, 반(反) 인권 노선을 변호하는 정치적 구호, 포퓰리즘이자 프로파간다로 퇴색한 경향이 짙다. 박정희의 경제노선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이 단순히 당시의 비약적 경제발전이라는 사실만을 되살려 전국민의 향수병(Nostalgia)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많은 이들이 동의하는 바와 같이, 현재의 고도화된 시장경제체제에서 박정희식의 파시즘적인 실용주의 노선이 적용될 수는 없으며, 경제적 풍요보다 정신적이고 문화적인 삶의 질이 중시되는 현대의 시대적 흐름에 비추어 볼 때 박정희 향수는 역사를 퇴보시키는 사회 병리 현상이라고 할 만하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박정희에 대한 폄훼가 옹호보다 건전할 것이다. 시장 실패냐, 정부 실패냐 하는 논쟁은 박정희 없이 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2 개의 반응

  1. 박정희와 근대화에 대한 이인화씨와 이문열씨의 논의가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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