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11개 한의과대학이 6년제로 설립되어있을 뿐더러, 배타적이고 보수적인 한의사 면허 제도도 있다. 즉 “제도권 의학”으로서 정부와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의학계에는 또한 재야 한의사, 한약사, 혹 침구사를 “선생님”이라 지칭하며 학생들이 찾아가 배우는 인습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설령 그 “선생님”들이 제도권 내의 교수들보다 더 뛰어난 임상적 지식과 교육적 열정을 갖고 있고, 따라서 한의과대학의 커리큘럼은 쓸모가 없고 “찾아가서 배우는” 학습만이 효과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가정이 진실이라면 한의사들에게 배타적인 면허를 인정해줘야 할 당위성은 무엇인가? 집앞 영광슈퍼에서 칭얼대는 아이에게 침 너댓 대 놔주고 인자한 미소를 짓는 슈퍼 주인 아저씨가 의료행위를 해선 안 될 이유는 무엇인가?

한의사의 배타적 면허는 어디까지나 그들이 받는 “정규 교육 과정”이 재야 의료인(민중 의료인)들의 그것에 비해 보다 체계적이고 도덕적이며 안전성을 담보한다는 사회적 합의 하에서 그 효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만일 배타적 면허 제도를 유지하는 것이 단순히 의료제도 유지를 위한 한의사 수의 적정 수급을 위해서일 뿐이라면, 면허 제도를 유지하되 한의사 국가시험의 문호를 재야 의료인들에게 열어젖히면 그만이다. 국가시험의 응시 요건이 한의대 졸업생에게 엄격히 제한되는 것도 역시 어디까지나 한의대생들이 받는 “정규 교육 과정”에 대한 사회적 신뢰 덕분이기 때문이다. 한의사들은 이런 사회적 합의의 힘을 쉽게 망각하고, 한의학이 제도적으로 인정받는 이유가 한의학 자체의 우월성 때문이라고 생각해버리고 만다. 만일 그렇다면 왜 한의학은 그렇게 긴 시간동안 제도권 의학으로 인정받기 위해 ‘사회적으로’ 투쟁해왔는가?

그러나 이러한 실상에 대해 학생들을 탓하기는 어렵다. “자연계열 상위 1%”라는 한국 수능식 자부심(?)을 갖고 한의과대학에 입학한 “제도권 수재”들이, 아이러니하게 제도권 밖의 교육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은 그만큼 제도권 교육이 부실한 탓이기 때문이다. 교재는 비문(非文)이 가득한데다 외국 서적을 갖다 붙였음이 뻔히 보이고, 국한문 혼용에 뜬구름 잡는 소리만 가득하여 실제 환자를 치료하는데는 하등 쓸모가 없다. 해리슨(Harrision)과 같은 압도적인 권위를 가진 교과서는커녕 그 어떤 교과서에도 학생들을 이해시킬만한 일체의 권위가 없기 때문에 학생들은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가”하는 고민으로 수 년씩 방황한다. 학교는 “1학점 2시간”의 원칙 하에 1주일 35시간 내외의 수업을 강요하지만 막상 교과서부터 권위가 없으니 학생들이 수업으로부터 느끼는 흥미는 없고, (에둘러 말하자면) 제도권 교수들이 재야 의학자보다 마땅히 낫다는 확신도 갖지 못한다.

따라서 “실력이 없다는 것이 의학에 있어서는 곧 윤리적인 죄이기 때문에” 도입된 유급 제도마저 학생들을 전혀 이해시키지 못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한의학의 교과서, 즉 제도권 교육에는 학생들을 압도할 만한 권위가 없다. 제도권 교육에 대한 신뢰 자체가 무너져 있는데 “너는 제도권 교육을 따르지 않았으므로 유급”이라는 판정을 내리는 것은 학생들에게 더욱 큰 반감만을 불러일으킨다. 유급과 같은 강력한 폭력 행위에는 권력자와 피권력자의 사회적 소통과 합의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피권력자는 권력자에게 그만한 권력을 부여한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소통의 단절이다.

이제와서 한의학의 제도적 안전장치를 모두 해제하고, 재야 의료인이고 사이비고 돌팔이고 중의사고 침구사고 모두 한국에서 침이나 약을 쓰게 하자는 소릴 하려는 게 아니다. 그것이야말로 열린우리당의 실정에 실망했다고 해서 한나라당에 몰표를 몰아준 우리네 민심과 다를 바 없는 최악(最惡)으로의 회귀일 따름이다. 대안은 한의학의 제도권 교육과정, 곧 한의과대학의 철옹성을 무너뜨리고 이를 재정립하는 데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몇 차례나 말했지만 권위있는 교과서의 집필이다. 어떤 학자들의 주장처럼 “한의학은 워낙 다양하고 상이한 이론들의 총체이므로 교과서의 집필이 불가능하다”면, 이는 곧 한의학을 제도권에서 교육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따라서 제도적으로 한의사의 배타적 면허를 인정하는 것 또한 불합리하다(심지어, 한의학을 제도적으로 용인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결론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권위있는 한의학 교과서”를 집필하는 일은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을 글로 풀어내면 될 따름이다. 그 분량이 1천 쪽이 되든, 심지어 1만 쪽이 되든 만들어지기만 하면 된다. 거기서부터 제도권 교육으로서의 한의학이 비로소 “시작”될 것이다. 교과서조차 없는 학문이라 – 실상 아직 현대 학문으로서의 한의학은 시작조차 되지 못한 것 같다.

  하나의 댓글

  1. 한의학에 대한 좋은 의견 많이 읽었습니다. bfree@kiom.re.kr 로 연락 한 번 주실래요?

 댓글을 씁니다.

다음 HTML 태그 및 속성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a href="" title=""> <abbr title=""> <acronym title=""> <b> <blockquote cite=""> <cite> <code> <del datetime=""> <em> <i> <q cite=""> <strike> <strong>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yeinz.net/blog/archives/77/trackback
   
임예인의 새벽 내리는 길. 이 사이트의 글은 출처를 명기하여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Suffusion theme by Sayontan Sinh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