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원곡고등학교에 내려오는 ‘원곡동 또라이’ 이야기. 그는 남루한 차림으로 가끔씩 운동장에 난입하여, 아이들에게 “돈이 없어 밥을 못 먹으니 천원만 빌려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풍문으로 떠도는 그의 기행(奇行)들이 그를 향해 ‘또라이’라는 비하적인 별명을 붙였지만, 사실 그 소문의 진위 여부는 지금까지도 알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가 머리에 꽤 든 게 많은, 나름 박식한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수 년 전, 밀가루 세례를 받으며 떠난 모교를 다시 둘러보았다. 별 건 아니고, 그저 근처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 잠시 들른 것 뿐이다. 그러나, 수 년 만에 다시 찾은 그 향수어린 장소에서도 나는 추억에 잦아들지 못한다. 담장이 생기고 새 도서관 건물이 들어선 – 그리고 너무 많은 것이 변해버린 모교로부터는 그닥 애틋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미 쇠락해버린, 그래서 영세상인들의 생존권 요구만이 절박하게 표면으로 떠오른 상점가 또한, 2000원짜리 떡볶이와 순두부찌개로 저녁을 때우던 그 때 그 고교시절의 상점가와는 다르다.
어디 그 뿐이던가. 고개를 돌리면 어느새 xx 건설이니 oo 건설이니 하는 것들이 수십 층짜리 마천루를 건설하고 있다. 수 개의 아파트 단지가 누가 누가 빠른가 경쟁이라도 하듯 동시에 올라가지만, 그 수십 층짜리 마천루 도시와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중국식품 전문점이 들어서 있는 주택가, 그 둘은 끽해봐야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을 뿐이다. 그 기묘하게 섞인 풍경처럼, 마천루 도시의 사람들과 주택가의 사람들, 주택가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기실 같은 삶을 공유한다. 모두 7천원짜리 큰 수박 한 통을 사기보다 5천원짜리 작은 수박 한 통을 사려고 하고, 스타벅스의 테이크아웃 커피보단 맥심의 커피믹스를 선호한다.
그러나 그들의 언행까지 그렇지는 않다. 어떤 사람들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얘기할 때 으레 비하적인 태도를 비추어 나를 크게 실망시킨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주택가는…….” “안산이란 데는……” 강남에서 놀러온 어떤 친구는, 마천루 도시에 사는 어떤 어머니는, 그렇게 그 작은 도로 하나를 굳이 구분선으로 두려 한다. 중국어가 난무하고, 까만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더러운 주택가와, 오롯이 진주빛의 뽀얀 사람들만이 돌아다니며, 오직 한국어만 들리는 그 마천루 도시를 바로 그 도로 하나로 굳이 구분해두려 든다.
그런 그곳에서 느낄 향수는 없었다. 마천루를 바라보면서도, 주택가를 바라보면서도 나는 이곳이 내 기억의 장소임을 확신치 못한다. 가슴 속에 끓어오르던 과거에 대한 향수는 현실의 발을 내딛는 순간 완전히 꺼져버렸다. 기실 이곳이 내가 3년을 보냈던 바로 그 기억의 장소임을 절실히 느끼게 한 것은, 그런 실제로 보이는 장소보다 오히려 기억 속에 가물가물하게 남아있던 “원곡동 또라이”에 대한 일화 쪽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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