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 감시하고 통제해야 하는가

“에이즈 환자가 자신이 환자임을 숨기고 여러 사람과 무차별적으로 성행위를 벌여…”

수 년에 한 번 꼴로 우리를 놀라게 하는 기사 내용이다. 그리고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언론에서는 “환자의 감시 / 통제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언론의 기사만 읽으면 정말 왜 우리나라가 에이즈 환자들을 통제하지 않는 건지 이해가 안 될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에이즈에 관한 나라의 태도는 감염인과 환자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벗겨가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던 것이 사실. 이런 사실을 지적하면, 아마 어떤 사람들은 혀를 내두르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라가 미쳐 돌아간다”고.

그러나 사실은, 나라의 태도가 옳다.

사실 어떤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이유만으로 환자를 감시하고 통제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파쇼적인 것이거니와, 특히 에이즈는 일상 생활에 의해 전염될 염려가 없어 (외국의 경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적어도 한국의 경우는 아예 보고된 사례가 없다!) 그렇게 해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차라리 비말 등에 의해 일상 생활로도 전염될 수 있는 독감 환자를 통제하는 것이 더 타당할 지경. 에이즈 환자가 남들에게 퍼트릴 마음을 먹고 일부러 여기저기서 성행위를 하고 다니면 어떻게 하느냐고? 그런 논리대로라면, 사람이 칼을 가지고 누굴 찌를지 알 수 없으니, 누군가 슈퍼에서 칼을 사는 순간부터 나라는 그를 감시해야 마땅할 것이다. 하물며 HIV는 칼만큼 위험한 것도 아니고, 혹여 누군가 정말 그런 마음을 먹고 행동으로 옮겼다면 이는 형법으로 처벌이 가능하다.

게다가 이런 감시 / 통제 정책에는 실효성도 없다. 만일 에이즈 환자는 전부 나라에서 감시하고 그 행동을 통제한다고 하면 어떨까? 아무도 검사를 받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감염 사실이 발각되는 순간 국가가 나의 모든 행동을 통제한다는데, 감염되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더라도 검사를 받을 엄두를 낼 수 있겠는가. 사실 이미 에이즈를 감시 / 통제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식 때문에 에이즈란 질병 자체에 대한 인식도 안 좋아지고, 그래서 검사를 받는 사람도 손에 꼽는 마당인데, 감시 / 통제 얘기를 꺼낸다는 건 검사 기피를 아예 권장하는 꼴이다. 이런 감시 / 통제 정책이 일으킬 결과는 단 하나다. 감염인들을 음지로 숨어들게 하는 것.

그럼 이런 주장이 나올수도 있다. “전국민을 대상으로 검사하면 된다”! 이런 주장 쯤 되면 이젠 ‘파쇼적인 것’을 넘어서 파시즘 그 자체를 의심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실효성이 없음은 물론이다. 학계에서 지겨울 정도로 반복하는 이야기지만, 오늘날 에이즈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미지’에 비해 그렇게까지 위험한 질병이 아니다. 전염 경로도 확실하고, 일상 생활로 전염되는 일은 없으며, 거의 유일한 경로인 성생활에서도 얼마든지 예방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감염되더라도, 치료하여 30년 이상 멀쩡한 삶의 질을 누리며 살 수 있다. 만일 몇몇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런 엄청난 감시 / 통제를 하려면 사회적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소요될 수밖에 없는데, 그런 천문학적 비용을 소모할 이유가 전혀 없다. 물론, 전국민 대상 검사 같은 게 생각처럼 잘 될 리도 없다. 감시 / 통제가 강회될수록 그 대상은 음지로 숨어들게 될 것이며, 이렇게 감염인들이나 감염이 의심되는 사람들이 음지로 숨어들면, 감염인들을 ‘보호하고 지원’하지 못하는 건 물론 일부의 주장처럼 ‘감시하고 통제’하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이건 사실 사이버펑크에서나 나올 세기말 디스토피아를 재현시키자는 얘기나 다름없다.

그런데 슬프게도, 그런 생각 없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꽤 많다. 2007년 질병관리본부와 서울대학교병원이 조사 발표한 바에 따르면, “에이즈 감염인은 다른 사람과 격리시켜 수용시설에 보내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무려 36.5%에 달한다. 열 명 중 네 명은 감염인을 ‘수용시설에 격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인데, 정말 혀를 내두르게 된다. 같은 조사에서 에이즈에 대한 우리나라의 인식은 선진국은 물론 외국 여러 나라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런 무지와 위험한 사고가 결합하여 파시즘이나 매한가지인 인식을 낳고 있는 것. 사실 “격리해야 하는가”는 물론, “감시 / 통제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도 더이상 논란거리도 되지 않는 답이 확실한 문제이건만, 인식이 그에 따라주질 못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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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는 HIV 발견 초기, 정부가 이러한 혐오와 공포의 감정을 유발한 데 기인하는 측면이 있다. 게다가 행정부가 어느 정도 에이즈와 HIV에 대해 합리적인 입장을 정립한 후에도, 언론은 여전히 이 질병을 보도함에 있어 저널리즘의 기본을 지키지 않고 선동적인 표현을 내뱉는데 급급했다. 이런 흐름은 사실 선진국에서도 과거 겪었던 것인데, 이를 극복하는 방안은 오직, 교육, 캠페인 같은 것이었다. “교육은 에이즈의 유일한 백신”이라는 표어는 이러한 정책의 변화를 상징한다. 편견의 확대를 유발했던 행정부와 언론계가 그동안의 편견을 다시 바로잡기 위해 여러 방법으로 교육에 나섰던 것.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에이즈 관련 교육을 받아보았다는 사람이 절반 이하에 그치는 등, 무지와 편견이 만든 ‘괴물’을 걷어내기 위한 노력이 한창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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