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키즘, 대안의 상상력
Anachy in Action
콜린 워드 지음(1982), 김정아 옮김(2004).
돌베개.

미국의 사회학자 노암 촘스키는 신자유주의를 무너뜨릴 최후의 희망으로 대중을 꼽았다. 또 어떤 사람들은 대중을 지극히 감정적인 존재로 규정하지만, 그것은 또한 노암 촘스키가 말한 희망의 본질과 연계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울리히 벡은 앞으로의 사회가 지난날의 산업사회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형태로 변해가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개개인의 자유와 동시에 자율적인 공동체주의를 기반으로 한다. 사람들은 원하는 집단에서 원하는 삶을 누리는 일종의 아나키즘, 곧 위원회국가를 형성하고 있으며, 동시에 한 쪽에서는 감정과 사랑을 기반으로 하는 자율적 공동체주의를 노래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후자는 신자유주의가 신이 내린 소명인 양 얘기하던 ‘효율성’을 극단적으로 배제한 형태이다.

현대인들은 오늘날의 급속한 기술 발달과 눈부신 과학적 성취가 우리의 행복을 증진시켰다고 믿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 작업을 어서 끝내고 조깅이나 수다, 낚시 따위의 여가를 즐기기를 소망하고 있다. 블루 컬러의 컨베이너벨트나 화이트 컬러의 데스크탑 PC가 눈부신 속도로 사람들을 로봇으로 바꾸어버렸기 때문이다. 에리히 프롬이 그토록 걱정했던 자본주의사회의 로봇들이 이미 수많은 기업들을 가득 메우고 있고, 그 로봇들, 곧 우리의 심장이 로봇으로서의 껍질을 견디지 못하고 당장 일탈이라도 할 양 거세게 뛰고 있는 것이다.

그 탈출구로 제시되는 “소수의 위원회”는 지극히 아나키적이다. 소수의 위원회는 멸사봉공을 배격하며, 참여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언제든 변화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하며, 변화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나갈 수 있어야 한다. 한 두 사람의 리더나 CEO의 명령에 따라 기계처럼 각자의 분업을 완수하는 기존 조직과 달리, 소수의 위원회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경영자가 된다. 기존의 조직들은 “리더의 위대한 지혜”에 성원들이 따를 것과, “리더의 위대한 계획”을 완수하기 위한 부품이 될 것을 강요함으로써 성취감을 빼앗고 창의성과 지혜를 발휘할 수 없게 한다. 반면 소수의 위원회는 “리더의 지혜” “CEO의 전략” 따위가 모두 허상임을 직시한다. 모두가 리더가 되거나, 모두가 CEO가 된다. 이것이야말로 아나키즘의 기초다.

[#M_이 책은 다음과 같은 말들로 기존 조직을 비판하고, 아나키즘을 옹호한다.||1. 국가권력은 소수가 민중을 지배하기 위해 권력을 수립하고 조직할 때는 의지가 되었지만, 권력을 장악한 소수의 특권을 없애고자 할 때는 도움이 될 수 없다.

2. 정치 원리는 권력, 권위, 지배로 설명된다. 반면에 사회 원리는 사람들이 공동의 필요나 이해를 토대로 관계를 형성하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발현된다.

3. 국가는 강압이라는 최후의 수단에 온 힘을 쏟는다는 점에서 다른 모든 조직들과 분명히 구별된다. 그렇다면 이 최종 권력은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 외부에 있는 적을 '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내부사회'를 '노리고 있다'.

4. 프루동이 말했던 것처럼, 자유, 그것은 질서의 어머니이지 질서의 자식은 아닌 것이다.

5. 크로포트킨은 이렇게 묻는다. "어떤 사람이 평생 동안 엄청난 속도로 실끝을 매듭짓는 일만 해야 하는 운명이라면, 이런 사람이 도대체 무엇을 발명할 수 있을까?" ...... (중략) ...... 체제는 저능아를 생산하고, 그들의 우둔함을 경멸하며, '재능 있는 소수'에겐 그들이 소수라는 이유로 상을 준다.

6. 고속도로 엔지니어는 자신의 명예를 걸고 (어떤 비용을 치르더라도) 도로를 뚫는다. 빈민지역이 가장 값싼 노선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 (중략) ...... 도시계획이란 기성 사회의 본질적 구획 양식으로서, 아나키를 '불가능한 꿈'으로 만드는 방법일 뿐 아니라 부유층과 권력층이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하고 괴롭히는 수많은 방법 중 하나다.

7. 도시계획자들은 자기네 구상에 대한 사회적 이견이 들리면, '방해', '저지', '작업중단' 같은 용어를 사용하여 문제의 본질을 흐려놓는다.

8. 사람들은 보통 지방정부 선거에 무관심하고 투표율도 저조한 반면에, 지방정부와 투쟁하는 지역사회의 임시 행동단체에 대해서는 광범위한 지지와 관심을 보인다. ...... (중략) ...... 한마디로 지방의회는 19세기 온정주의적 지주정치의 후예이다. 반면에 실질적인 문제에 대한 실질적 관심에서 출발하는 지역사회협회(Community Association)는 대면 접촉 집단의 수위에서 활동한다.

9. (주 : 슬럼에 대한) 시청 관리, 정부, 신문기자, 국제기구의 공식 관점에 따르면 이런 종류의 거주지가 온갖 오류의 범죄, 악덕, 질병, 사회 혼란, 가족 해체의 온상이다. ...... (중략) ...... 그러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10년 동안 페루의 바리아다(주 : 빈민들이 건설한 대규모 자립형 이주 공동체)를 연구한 결과, ...... (중략) ...... 이곳에서는 혼란과 붕괴를 찾아볼 수 없다. 폭력적인 경찰 진압에 맞선 공유지 점거는 고도로 조직적 양상을 띠고 있고, 내부에 정치조직이 있어서 해마다 선거를 치른다.

10. 터너와 만진의 결론에 따르면, 페루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공공주택사업은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들이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11. 법에서 말하는 변태는 때로 우습기 짝이 없다. "스코틀랜드에서 남녀간 항문성교는 합법이고 남자끼리는 불법인 이유가 도대체 뭘까? 잉글랜드에서 남녀간 항문성교는 불법인데, 21세가 넘은 남자끼리는 괜찮은 이유는 도대체 뭘까?" 법을 좀더 합리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고치면 고칠수록 더 많은 모순이 드러난다.

12. 그(주 : 알렉스 컴포트)는 성행위에 대한 도덕적 계명을 두 가지로 정리했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용하지 말라"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원치 않는 아기가 태어나지 않게 하라". ...... (중략) ...... 컴포트에 따르면, 오늘날 청소년들의 성행위에서 평범한 수준의 신중함과 기사도 정신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바로 "상식 있는 젊은이라면 즉시 이해하고 받아들일" 원칙 대신 순결이라는 말도 안 되는 규범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13. 궁극적으로 교육의 사회적 기능은 사회를 영속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회화'의 기능이다. 사회는 아이들을 현재 사회의 이미지대로 양육함으로써 미래를 보장받는다.

14. 대학 교육비 지출에 있어서, 최상층은 최하층에 비해 17배의 혜택을 받는 반면, 최상층이 내는 세금은 최하층의 5배에 불과하다.

15. 아이들에게 허용되는 공간은 기껏해야 크리켓 공을 던지거나 골대를 세우고 축구 경기를 할 수 있는 정도이다. 그 선을 넘으면 집요하게 감시당한다. 이 잠재적 야만인들이 인디언 오두막을 만들거나, 땅굴을 파거나, 댐을 만드는 등 자연스러운 활동을 할라치면, 당장 쫓겨날 것이 틀림없다. ...... (중략) ...... 물론 반론도 있을 수 있다. 요즘에는 아이들에게 예전보다 더 많은 것을 해준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뭔가를 '해준다'는 것, 이것은 심각한 잘못이다. 도시의 아이들은 기술과학의 경이로 가득 찬 세계에서 살고 있다. 그것도 감동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사물을 소유하고, 만져보고, 직접 만들어보고, 창조하고, 재창조하고 싶어한다.

16. "산업 심리학자들은 이제 교활한 보너스 정책을 가지고 장난치지 말고, 사람들이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정원을 가꾸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연구해야 한다."

17. 사람들은 노동자 경영권이 멋진 개념이기는 하지만 전혀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개념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노동자'라는 사람들에게 모종의 결점이 있기 때문에 말이다.

18. 마틴(J.B. Martin)에 따르면, "정신질환 치료에서 미국의 첫번째 개혁은 정신병자를 주립병원에 집어넣는 것이었다. 지금 진행 중인 두번째 개혁은 정신병자를 주립병원에서 빼내는 것이다."

19. 물론 경찰은 필요하다. 그러나 일차적으로 도시의 평화를 지키는 것은 사람들 사이의 자발적 통제와 기준으로 구성되는 복잡한 (거의 무의식적인) 네트워크이며, 도시의 평화를 집행하는 것은 바로 사람들 자신이다.

20. 아나키즘은 인간의 존엄성과 책임감을 내세우는 주장이다. 아나키즘은 정치 변혁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회적 자기결정 행동이다._M#]

책은 아나키즘을 국가 권력에 대한 부정으로 인식하지만, 똑같은 순서도에 따라 아니키즘을 경제 권력에 대한 부정으로 정의할 수도 있다. 취업을 앞둔 사람들 대부분이 “인간을 부품으로 취급하고, 부끄럼없이 1명의 엘리트가 10만 명을 먹여살린다고 궤변하는” 삼성을 혐오하지만, 또한 동시에 삼성에 취업하기를 바란다. 삼성에 취업하여 일하는 것은 인간적으로 괴롭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경제적 권력이 삼성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실 가장 이상적인 대안은 삼성에 집중된 경제적 권력을 빼앗는 데 있다. 사실 ‘정치적 아나키즘’의 주장처럼 소수의 위원회를 실현하기 위해 대한민국 정부의 권한을 빼앗는다는 것은, 극좌파의 급진적이고 위험한 생각으로 비친다. 그렇다면 삼성 또한 그러한가? ‘경제적 아나키즘’ 또한 급진적이고 위험한 생각일 뿐인가? 이런 식으로, 아나키즘의 통렬한 현실 인식이 어떤 분야에 적용될 수 있을까,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아나키즘적인 사회”는 어떤 것일까를 생각하는 것도 은근히 빼앗기고 싶지 않은 즐거움이다.

  하나의 댓글

  1. 아나키즘이라고 하면 폭탄을 정부 기관에 던지자는 것 아닌가, 정부를 폐지하자는 것 아닌가 생각을 한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좋은 의미로 여겨진 않은 것 같다. 아나키즘을 단순히 무정부주의라고 번역하면 대책 없이 그냥 정부를 없애자는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무정부주의도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정부 없이도 할 수 있는 좋은 일은 자발적으로 하자는 주의로 이해할 수 있다. 현대의 아나키스트 폴 굿맨은 이렇게 말한다.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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