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조가 나타나면

블랙 스완 (2008)
Black Swan (2007)
Nassim Nicholas Taleb 지음
동녘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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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과는 관계없다. 그냥 심심해서 삽입...

1997년, 델의 CEO 마이클 델은 애플을 두고 “회사를 청산하고 주주들에게 돈을 나누어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 그 정도로 애플에게는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고유의 운영체제 ‘시스템’은 낡고 병들어 있었지만 이를 개선하려는 프로젝트는 전부 좌초하고 있었다. 세계 최초의 PDA 뉴턴은 말 그대로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져다주었을 뿐 전혀 성공하지 못했다. 모두가 마이클 델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다음해, 애플은 아이맥을 만들어냈고, 이것은 애플 사상 최고의 히트작이 되었다.

2001년, 애플은 아이팟(iPod)이라는 정체불명의 기기를 만들었다. 아이맥처럼 큰 발표회장에서 선보인 것도 아니고, 대학 강의실 연단만한 작은 무대에서 별 감흥 없이 발표된 이 물건은 “너무 비싸고, 무겁다” “시장을 지배하는 작은 MP3 플레이어에 대적할 수 없을 것이다” 등의 혹평을 한 몸에 받았다. 그리고, 수 년만에 이 물건은 미국 MP3 플레이어 시장을 평정했고, 소니가 지배하던 일본의 음악 플레이어 시장에서 지배자가 되었다. 미국에서 이 물건은 70%대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했다.

사람들은 애플의 매킨토시는 성장하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다. 그중에서도 PowerPC라는 특이한 CPU를 써서 윈도(Windows)와 호환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꼽혔다. 2006년, 애플은 인텔 CPU를 쓰겠다는 거대한 ‘이주’를 발표했다. 꾸준히 올랐던 주가는 이 발표로 다시 한 번 고점을 경신, 80.86달러를 기록했다. 마치 인텔로의 이주를 축하하기라도 하는 듯. 2000년 초반, 애플은 일 년에 사백만대의 매킨토시를 팔았다. 2010년 초반, 애플은 한 분기에 사백만대의 매킨토시를 팔고 있다.

“애플이 아이팟을 기반으로 한 휴대전화를 만들 것”이라는 소문은 수 년을 살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휴대전화가 대성공을 거둘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노키아와 삼성, LG, 소니에릭슨, 모토롤라 같은 대기업이 버티고 있는 휴대전화 시장은, – 특히 노키아는 그야말로 철옹성이었다 – 애플이 점령한 MP3 플레이어 시장과는 차원이 다르다고들 얘기했다. 애플이 모토롤라와 합작했던 아이튠즈 폰 ‘로커(ROKR)’의 실패도 이런 회의론에 힘을 실었다. 2007년, 진짜로 아이폰이 나왔다. 애플은 수익과 매출에서 세계 최대의 휴대전화 업체가 되었으며, 철옹성으로 불리던 노키아가 지금 아이폰으로 인해 무너지고 있음을 부인하는 분석가는 아무도 없다. 애플은 지금 세계에서 2번째로 가치가 큰 기업이다.

굳이 애플 이야기를 서두에 꺼낸 것은, 일단 그나마 아는 기업이 애플 뿐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 근 10년간 이 회사의 역사가 그야말로 ‘예측의 쓸모없음’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누군가가 “10년만 지나면 매킨토시는 지금보다 네 배는 더 잘 팔릴 것”이라고 얘기했다면, 그 누가 이 말을 귀담아 들었겠는가? 2000년대 중반, 누군가가 “애플이 휴대전화를 내놓는다면 노키아도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라고 얘기했다면, 이건 아마 애플빠라는 모욕적인 취급을 받고 비웃음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블랙 스완의 메시지는 간명하고, 또한 강렬하다. 예측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귀납적인 방법으로 우리는 어떤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하지만, 모든 데이터를 모을 수는 없는 귀납 그 자체의 한계, 돌발적인 변화가 너무나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는 가변성의 문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에 무리하게 현상을 끼워맞춰 판단하고 어떤 현상에 무리해서 인과 관계를 부여함으로써 발생하는 인식의 한계 등으로 인하여 상당한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금융이나 경제와 같은 분야는 극단적인 세계로 엄청나게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고, 우리가 요구하는 ‘매우 합리적인 개연성’이 없는 사건들이 시시때때로 일어나며, 게다가 ‘표준’이라 인식되는 범위 밖에서 일어나는 사태가 크고 강렬하다(…). 따라서 예측하지 못한 범주에서 극단적인 사태가 벌어지게 되면, 그 변화는 너무나 거세고 충격적인 것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사태가 진정되었을 때에서야 우리는 읊조린다. “이런 저런 이유로 인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어.” 그렇게 사태의 인과관계를 정립한 우리는, 또다시 어떤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리고 예측하지 못한 곳으로부터의 새로운 파고에 휩쓸린다.

저자는 이 이야기를 ‘흑조 이야기’에 빗대어 설명한다. “모든 스완(Swan, 백조)은 희다”란 얘기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때, 어디선가 검은 스완이 발견되며 학계는 충격에 빠진다. 그리고 연구를 통해 검은 스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게 된다.” 앞으로 발견될 모든 스완이 흰 색이리라는 예측이, 블랙 스완이라는 극단적인 사건으로 인해 모두 깨진 것이다.

저자는 따라서, 금융이나 경제와 같은 몇 분야에서는 전문가의 의미가 아예 없다고 주장한다. 당장 거시규모의 경제도 아니고, 망해가던 – 그러나 그 이름값만은 여전히 빛나던 일개 기업에 대한 예측조차도, 정말 처참할 정도로 빗나가지 않았던가. 그 어떤 애널리스트가 “애플의 휴대전화로 인해 노키아가 무너질 것”이라고 예측했던가. “노키아에 균열이 갈 것” 정도의 예측이나 했던 사람이 있던가. 그런데 정말 그렇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서야 애널리스트들은 애플의 아이폰 폭풍이 얼마나 거셀 것인가에 대해 또 예측을 내놓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저자가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그의 진짜 주장은, 예측만 믿고 눈을 감아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지금 일어나는 현상에 주목하고, 언제든지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위험요인(리스크)을 무리해서 회피하지도 않는다. 리스크는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블랙 스완, 즉 매우 큰 수익을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안정적인 포트폴리오 – 한국으로 따지자면 삼성전자 같은 주식이 들어있을까 – 의, ‘안정적’이란 수사야말로 이상한 것이다. 삼성전자가 망하지 말라는 법이 있나? 그것이 ‘안정적’이란 것은, 삼성전자가 “앞으로도 쭉” 이렇게 갈 거라는 안일한 예측에 기반한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책의 논점은 흥미롭고 이야기는 술술 읽히지만, 후반에 가우스 곡선과 프랙탈, 통계학 이야기가 나오면서는 (이야기 자체가 다소 어려워지기도 하거니와) 고개가 갸우뚱하는 것도 사실이다. “저게 왜 저기에…”라는 느낌이랄까. 또한 ‘블랙 스완’이라는 소재가 책 전체를 지배하는 탓에 자칫 “예측이란 그 어떤 경우에도 쓸모없다”는 결론이 나오진 않을까 저어되는 바도 있다. 예측이 없어진다면, 모든 것이 블랙 스완이 될 뿐이다. 다만 저자의 주장대로 소위 ‘안정적인 포트폴리오’ 라는 것들, 애널리스트의 예측이라는 것들, 대체 어떤 요소가 들어가고 어떤 요소를 무시하는 것인지도 알 수 없는 형편없는 적중율의 예측들에 대해서는, 이 책의 메시지가 더할나위없이 중요한 것이 될 것이다.

“흑조가 나타나면”에 대한 한개의 댓글

  1. 싸다는 이유로 영문판을 사서 꾸역꾸역 읽다가 모 숙박업소에 놓고 나온 후 아이 씨히바 하며 눈물을 흘렸던 그 책이군요. 가우스분포까지 안 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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