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 검진 – 사회는 멸시하고, 국가는 보호한다

HIV(인간 면역 바이러스, 에이즈의 원인 바이러스) 감염인이나 혈액 등 매개체에 대한 관리가 잘 이뤄지고 있는 우리나라같은 경우, 대부분의 HIV 감염이 성적 접촉에 의해 일어난다. 그러나, 성적 접촉이 주요 감염 경로라고 해서 “문란한 성생활이 에이즈를 일으킨다”는 편견도 옳다는 건 아니다. 에이즈는 바이러스에 의해 감염되는 질환임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여러 사람과 성생활을 하더라도 개중 HIV 감염인이 없다면 에이즈를 걱정할 필요가 없지만, 단 한 명과 성생활을 하더라도 상대가 HIV 감염인이라면 에이즈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 아니, 있는 수준이 아니라, 오히려 이렇게 동일인과 장기간 성생활을 할 때 콘돔 등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꽤 높은 수준으로 봐야 한다. 특히 HIV는 감염인의 수가 극소수이기 때문에, 누군가의 성생활 패턴을 보고 누가 더 감염에 위험한지를 예측하는 것은 사실 무의미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통계를 마구 적용하는 것도 어느 정도 수가 될 때 통할 만한 것.

그 어떤 질병이나 마찬가지지만, 에이즈는 조기 발견이 매우 중요하다. 비록 완치법은 없으나, 일찍 발견해서 일찍 관리를 시작하면 그만큼 관리가 쉽게 될 가능성이 높고, 이렇게 꾸준히 관리하면 비감염인과 거의 동일한 삶의 질, 수명을 누릴 수가 있기 때문. 그런데 HIV는 감염된 후에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잠복기’가 수 년에서 십 년에 이르므로, 일부러 검사를 하지 않는 한 본인이 HIV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알 방법이 없다. 감염 초기 몸살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고는 하지만 그 증상이 나타날 수 있는 기간이 너무 길고, 다른 원인으로 인한 몸살과 구분이 불가능하며, 그나마 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고 지나가는 경우가 절반 이상이라 감염 여부 판단에는 별 의미가 없다. 오직 검사만이 조기 진단을 위한 유일한 방도인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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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HIV 검사가 그리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다 보니, 많은 경우 감염인들은 치료 시작의 최적기를 놓치고 이미 증상이 심하게 드러난 후에야 병원에 내원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이미 증세가 심해진 경우 관리는 그만큼 훨씬 힘들 수밖에 없고, 관리가 아예 잘 안 되는 경우도 많다. 또한 이런 잠복기 감염인은 자신이 감염되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하므로, 당연히 감염 예방 조치도 취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예방 측면에서도 조기 발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국가에서는 HIV 검사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는데, 일단 검사 비용을 전액 지원한다. 그리고 거의 모든 보건소에서 검사를 할 수 있다. 검사는, 굳이 실명 검사를 원하는 게 아니라면, 완전히 익명으로 이뤄진다. 이는 관련 법률에 “익명 검사가 가능함을 반드시 고지해야 하며, 익명 검사를 원할 경우에도 반드시 검사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 대부분의 보건소에서는 접수할 필요 없이 검사실로 가서 바로 “HIV 검사를 받고 싶다”고 의사를 표현하면 검사를 받을 수 있는데, 소량의 피를 뽑으면 끝나는 간단한 검사다. 이 검사는 민감도가 거의 100%에 가깝다. 본인이 HIV 감염인인데 이를 못 밝혀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뜻. 따라서 한 번의 검사로도 완전히 믿을 수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검사에 소요되는 시간은 검사 기관에 따라 다른데, 짧게는 수십분에서 길어도 수일 내로 알 수 있다. 보통 보건소에서는 2~3일 정도가 걸린다고. 이 역시 연락처나 주소를 남길 필요가 없고, 검사실로 전화를 해서 익명 검사시 등록한 가명이나 비밀번호 등을 대면 바로 검사 결과를 알 수 있으므로, 이 과정에서도 신원이 드러날 우려를 할 필요가 없다. 검사와 관련된 사람들은 법에 따라 검사자의 신원을 외부에 유출할 수 없으므로, 이쪽에서도 신원이 드러날 걱정은 필요가 없다. 심지어는, 만에 하나 불운하게도 감염인으로 결과가 나오더라도, 여전히 익명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

이처럼 나라에서 검사자 및 감염인의 익명성을 거의 완벽에 가깝게, 과민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철저히 보호하는 까닭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듯이, 여전히 사회가 에이즈 환자에 대한 편견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에이즈라고 하면 ‘문란한 성생활’ 아니면 ‘동성애자’를 떠올리는 게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특히 보수 단체, 개중에서도 또 특히 기독교 단체에서 “에이즈를 퍼트리는 동성애자를 규탄한다”는 식의 터무니없는 프로파간다를 벌이는 바람에 이런 선입견은 더욱 공고해졌다. “에이즈? 나는 동성애자도 아니고, 나랑은 상관 없는 세상 얘기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닌 것 또한 작금의 암담한 현실 중 하나. 잠깐 한기총을 비롯한 기독교 단체를 좀 욕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독사의 새끼들.

에이즈는 문란해서 걸리는 병이 아니다. 이건 체액과 혈액에 의해 전염되는, 그냥 감염성 질병의 일종일 뿐이다. 과거 잘 모를 때, 무지의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야 공포의 질병이었을지 몰라도, 오늘날에는 얼마든지 관리 가능하며 평범한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다. 에이즈 관련 공익광고가 “콘돔을 씁시다” 류에서 “에이즈는 일상생활로는 감염되지 않습니다” “평범하게 살 수 있습니다” 같은, 감염인 인권에 초점을 맞추게 된 것도 이런 변화에 기인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견이란 지극히 공고해서, 근거라곤 하나도 없는 몰상식한 멸시이며 폭력임에도 불구하고 부서지질 않는다. 그래도 다행히 정부가, 자주 ‘선량한 시민들의 적’처럼 묘사되곤 하는 바로 그 ‘정부’가, 그 편견으로부터 모두를 보호하고 있다. 이게 모두의 일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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