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령을 통해 보는 에이즈 관리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 의료인이 아니라면 이름조차 생소할 이 법령은 말 그대로 후천성면역결핍증, 즉 에이즈(AIDS) 예방을 위해 제정되었다. 하나의 감염성 질환, 그것도 유병률이 극도로 낮은 질병을 관리하기 위해 별도의 법률을 제정했다는 것은 그만큼 이 질병에 대한 국가의 관심이 깊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또한 우리는 이 법을 통해 국가와 사회가 이 질병을 바라보는 관점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고로 여기에서는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법령 중 대표적인 부분을 먼저 들여다봄으로써, 이후의 이야기를 보다 보기 쉽게 진행해 나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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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주목할 점은, 이 법이 최근 몇 번의 개정을 통해 그 목적에 있어 큰 변화를 겪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제 1조 ‘목적’을 보면, “후천성면역결핍증의 예방과 감염자의 보호·관리”를 위한다고 했던 것이 “후천성면역결핍증의 예방·관리와 감염인의 보호·지원“을 위한 것이라고 바뀌었다. 감염인의 삶 자체에 보다 초점이 맞춰진 것. 실제 조문에서도 이런 변화는 눈에 띄는데, 예를 들어 제 3조에서 정하고 있는 국가와 지자체의 의무에는 ‘감염인에 대한 차별 및 편견을 방지할 것’이 추가된 것을 볼 수 있다. 예전 에이즈 공익광고가 “콘돔을 씁시다” 같은 메시지가 중심이었다가, 최근 공익광고는 “에이즈는 일상생활으로 전염되지 않습니다” 같은 메시지가 중심이 된 것은 이런 변화와 관계가 있다 하겠다.

제 8조에서는 에이즈의 검진과 관련된 내용을 찾아볼 수 있는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부분은 ‘익명 검진’에 대한 내용을 법률로 정하였다는 것이다. 에이즈의 검진을 실시하는 자는 익명 검사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고지해야 하며, 익명 검진을 원하는 사람에게도 검진을 실시하여야 한다. 또한 감염인으로 밝혀진 경우에도 그 정보를 익명으로 관리하여야 하며, 그 결과를 감염인 이외의 사람에게 알려서는 안 된다(단, 심신미약자, 심신상실자, 미성년자, 군 / 교정시설 생활자는 기관의 장이나 법정 대리인에게 통보). 감염인의 익명성을 철저하게 보호하는 것은 물론, 검진 희망자의 익명성 또한 보호하여 조기 검진과 조기 치료를 독려하고자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반면 법 제 9조와 보건복지부령에 따르면 채혈된 모든 혈액, 장기, 조직, 정액 및 기타 바이러스 매개체 등에 대해서는 후천성면역결핍증 감염여부를 검사하고 감염이 의심될 경우 검사기관의 장에게 검사를 의뢰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만큼 철저한 관리 감독이 이뤄지고 있는 질병이 또 없을 정도. 누군가는 감염인의 익명성을 무엇보다도 우선시하는 제 8조와 철저한 검사와 관리를 요구하는 제 9조가 뭔가 모순된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는데, 오히려 감염인의 익명성을 보호하는 것이 감염을 예방하는 데는 훨씬 큰 도움이 된다. 이 이야기는 별도의 이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따로 하기로 하자.

다음으로, 잊어버릴 때 쯤 하면 뉴스에서 “에이즈 환자가 무분별한 성행위를 해서 조사를 받고 있다…”는 뉴스가 나올 때가 있는데, 이는 법 제 19조와 관계가 있다. 이에 따르면, 감염인은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한 전파매개행위를 할 수 없게 되어 있고, 이를 위반할 시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 위반 중 가장 큰 처벌인 3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게 된다. 이 형량은 88년 이후 개정되지 않은 것.

여기에서 또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다. 제 19조가 정하고 있는 ‘전파매개행위’로는 원래 ‘콘돔을 사용하지 않은 성행위’가 명확히 명시되어 있었는데, 이 부분이 2008년 법이 개정되면서 삭제되었다는 점. 물론 콘돔을 사용하지 않은 성행위는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한 전파매개행위’의 일종이므로, 이런 행위가 전파매개행위에서 빠진 것은 아니다. 따라서 개정의 의의가 다소 불분명한 상황인데, 관련 자료를 찾아보려 했으나 찾지 못했다.

다만 이는 아마도 유관단체 및 몇몇 의원실에서 내놓은 19조 – 전파매개행위 금지 조항 전체에 대한 삭제 요구와 관계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판례상 고의적 전파행위로 타인에게 HIV를 감염시킨 것이 확실하다면 현행 형법 제 257조(사람의 신체를 상해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에 의해 처벌이 가능할 뿐 아니라, 이 조항이 감염인 및 감염인의 성적 파트너의 사생활에 대한 국가의 지나친 간섭일 수 있다는 것.

또한 이 조항은 그 효과 또한 의심되는데, 잠복기가 10여 년에 달하는 에이즈의 특성상 이 조항은 감염 사실을 잘 모르는 잠복기 감염인에 의한 감염을 막을 수가 없다. 또 오히려 조기에 감염을 발견하고 잘 관리받고 있는 감염인의 경우 감염력이 극히 낮은 경우가 많다는 점, 감염인의 일회성 성행위를 실제로 모두 감시 관리할 방법이 없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HIV 감염인의 성행위를 잠재적인 범죄 행위로 취급하는 19조가 과연 에이즈의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 할 수 있다. HIV 감염을 막을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은, 모든 질병이 그러하듯이, 조기 발견과 조기 치료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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