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눈에 띄었다. “대국민보고서 : 여러분은 줄기세포 강탈사건을 아시나요?” 황지연과 서프라이즈에 의해 만들어진 이 홍보물은, 역 주위에서 심심찮게 보이던 증산도의 그것을 연상시키는 것이었다. 친구의 핀잔에도 불구하고 호기심이 동해 한 장 받아다가 읽어 보았다. 역시나 여전히 코메디같은 주장이 반복되고 있다.
부족한 앎으로 블로그에 황우석을 바라보는 일관된 방법이란 글을 쓴 이래, 그로부터 반년이 지나 그 논문이 조작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이후까지도 – 황우석 지지자들은 무서울 정도로 폭력적이었다. 거기에 파시즘이란 이름을 붙였던 그 날 그 때의 치기가 지금 와서는 조금 후회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두고 싶지는 않다. 대한민국의 시작으로부터 우리를 지배했던 우리 안의 파시즘, 황우석은 처음 대두될 때부터 그 상징과 같은 존재였다. “33억의 경제효과”, “한국인 최초의 노벨상” 따위의 상찬 앞에, 생명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나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치열한 고민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효율성이라는 절대선 앞에선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상징되는 비인간적 연구 환경도 자랑거리로 탈바꿈했고, 민주노동당은 난자 제공처가 석연찮다는 의혹을 제기한 뒤 황우석의 언론 플레이와 여론의 반발에 꼬리를 내려야 했다.
PD수첩의 보도와 프레시안의 지속적 문제 제기, 어떤 과학기술인들의 끝없는 토론으로 황우석은 그 허상의 권좌에서 끌어내려졌지만, 거기까지 가는 길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적이 만만치 않았던 탓이다. 노장파 학자들의 정점이라는 한림원은 그 명성에 걸맞잖은 무지로 소장파 학자들을 비판했다. 김병준 부총리, 박기영 보좌관 등 정부의 실세들이 온갖 거짓말과 왜곡을 동원하여 황우석을 비호했고, YTN의 거짓 보도와 KBS 홍사훈 기자 등의 무지 따위가 다시 한 번 황우석을 위한 방어막을 만들었다. 거기에 가장 무서운 것은 낮게는 70%, 높게는 90%라는 수치로 나온 여론의 압도적 오류였다. 성난 여론이 황우석을 지키기 위해 나서면서 PD수첩은 광고줄이 끊기기 시작했고, 프레시안은 힘겹게 쌓아올린 ‘인터넷 정론지’로서의 이미지를 송두리채 잃어버렸다.
모르겠다. 그 때 그 시절의 일들이 오늘날에 와서 무슨 의미가 있는지. 연합뉴스와 조중동이 외신 보도를 인용한답시고 본의를 왜곡한 엉터리 보도를 쏟아내고, 황우석의 랩으로부터 온갖 거짓말들이 쏟아져나오고, 한나라당의 한 대선 주자는 그야말로 망언이라 하기에 아깝지 않은 말을 쏟아내고…… 이 모든 일들이 대체 오늘날에 무슨 의미로 다가오는지, 어떤 가르침을 준 것인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그 저주의 굿판을 거치고서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12쪽짜리, 전면 컬러로 만들어진 이 홍보물을 바라보며, 아직도 황우석의 망령이 이 땅에 떠돌고 있음을 실감한다. 굳이 서프라이즈나 아이러브황우석 따위가 설치지 않아도 그렇다. 여전히, 어떤 사람들은 “효율성”을 신봉한다. 효율적이라면 소수의 인권을 무시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대추리에 들어선 미군 기지와, 이건희가 말하는 “엘리트 경영”이니 “무노조 경영” 따위 개똥철학과, 동성애자나 혼혈아 등 소수자를 향한 혐오스런 시선과, 몰락해가는 농촌을 향한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과, 오직 국익을 위해 무시되도 좋은 여성의 인권과 연구자들의 쾌적한 환경과……. 애국을 위해서라면, 국익을 위해서라면 그 모든 소수를 포기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아직도 너무나 많다.
그러나, 대추리 어떤 땅에 미군 기지가 들어서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던 사람들은, 주택 옆에 장애인학교가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발작에 가까운 알러지 반응을 보인다. “엘리트 경영”과 비정규직 확대가 바람직한 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엘리트가 되거나, 내가 비정규직으로서 이유없이 해고되지 않을 때까지의 얘기다. 서울대생이 아닌 대부분의 대학생들에게 있어, 기업가(자본가)가 경영하기 편한(투자/투기하기 좋은) 나라는 바람직한 곳이지만, 서울대생들이 조금이라도 더 많은 특권을 얻는 나라는 혁신해야 할 대상이다. 연구를 위해 난자가 채취되어도 좋은 이유는 일단 내게 난자를 기증할 의사가 없기 때문이며, 연구원들의 연구 환경이 아무리 엉망이어도 상관없는 이유는 내가 연구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뜬금없이 다세포소녀의 대사가 생각이 났다. “사랑하긴 하는데, 재능과 포부만 보여주고 여관비는 안내는 걸 용서할 수 없을 정도만 사랑한다.” 박장대소했던 그 대사를 여기에도 대입할 수 있을 것 같다. “애국하긴 하는데, 딴 사람들은 몰라도 내가 가진 것만은 절대 나라를 위해 희생할 수 없을 정도로만 애국한다.” 아마 수많은 ‘애국자’들이 이런 마음일 것이다. 아직도 세상의 중심에서 줄기세포를 소리치는 괴수들을 바라보며, 수많은 생각에 잠긴다.
4 개의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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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문단의 말이 제대로 찌르는 군요.
저는 그래서 애국자 노릇을 포기했습니다.
“대한민국”이 내 이익과 나라의 이익이 합치될 때만 소리칠 수 있는 구호라면, 차라리 포기하는 게 훨씬 양심적인 행위일 것 같아서요. 그냥 솔직히 내 이익이 젤 우선이라고 말하고 살죠, 뭐.
황까따위가 아직도 있나요?
서울대학원 졸업한 우리 막내 딸내미가 하는말이
황까는 극히 한줌의 인면수심의 무리라고 하던데
극히 적은 한줌의 핵심 황까가 주위 사람 몇몇 선동하고
알바들 고용해서 여론 조정하는 쥑일놈이라던데
찬바람 나기 전에 방 고래나 손봐 놔야할텐데
세상이 흉흉해서 원
황우석이 제 29촌인데, 지가 구라친 거 맞다는데요. 시끄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