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간이 화초를 기르기 시작한 지도 오래 되었고 물을 주고 감상하며 교감을 나누기도 하는데, 어떻게 풀을 먹을 수 있단 말인가, 야만인들이다.” 이 말에 동의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유독, ‘화초’ ‘풀’ 대신 ‘개’라는 단어를 집어넣으면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다.

2.

혹자는 개는 다른 동물과 달리 특별하고, 따라서 다른 동물들은 먹어도 개는 먹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생명을 먹을 것인가’ 같은 문제는 정말 어려운 이야기이다. 그나마 객관적인 것을 골라, 예를 들어 “통각을 느끼는 생물은 먹지 않는다”고 기준을 정했다고 하면? 그럼, 물고기는 통각을 느끼는가 느끼지 않는가? 우리는 이런 문제에 대한 답을 잘 모른다. 좀 더 나아가 ‘자아의 유무’ 같은 걸 기준으로 정한다면, 얘기는 더욱이 복잡해질 것이다.

그럼 묻지 않을 수가 없다. ‘먹어도 되는 생명’과 ‘먹어서는 안 되는 생명’을 구분하는 확고한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그 어떤 생명도 먹지 않을 수는 없다, 사람은 그렇게 살 수 없게 되어 있으니. 따라서 어딘가에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미 말했다시피, 그건 끔찍이도 어려운 일이다. 심지어 채식주의자라 해도, 이 딜레마를 완전히 벗어나긴 어렵다.

3.

제물로 끌려가는 소를 보고서는 불쌍히 여겨 “양을 대신 제물로 쓰라”고 지시한 왕에 대해, 맹자는 “눈으로 보니 차마 죽이지 못하는 마음이 인(仁)”이라고 이해해주면서도, 위정에 있어서 “그 마음이 정작 백성에게 미치지 못하는 것은 잘못”이라 지적한다.

뻔한 이야기인데, 개고기를 먹는 것을 보며 개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인(仁)의 실마리(端)로서 존중받아야 함은 마땅하지만, 그 좁은 실마리는 위정(爲政)의 근거까지는 되지 못한다. 이건 “소를 불쌍해 여겨 양을 제물로 바치고” “눈 앞의 소는 불쌍히 여기면서 보이지 않는 백성에겐 그 어진 마음이 미치지 못하는 ” 수천 년 전 어떤 왕의 과오를 되풀이할 뿐이다.

어떤 사람, 개를 기르며 강렬한 교감을 느꼈고, 개라는 종 자체에 대해 애정을 느낀 사람이 있다면, 그는 스스로 개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물론 주위에도 먹지 않을 것을 권할 만 하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그 주장이 공공의 영역으로 확대되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법이란 강제력을 가진 규범이며, 타율적인 규범이고, 우월한 규범이다. 그만큼 조건도 복잡할 수밖에 없다. 다시, ‘어떤 생명을 먹고 어떤 생명을 먹지 말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대해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해답이 없다면, 누군가가 개를 먹는다고 해서 야만인으로 묘사하고, 개 축제를 연다고 해서 이를 방해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내가 길렀는데 교감했다”, 이건 순전히 개인적인 체험이고 공공의 논의에는 부적합하다. 그것은 – 극단적으로는 “내가 화초를 기르며 교감했으므로 풀을 먹는 것은 금지되어야 한다”는 얘기와도 맞닿아있다는 것이다.

“내가 개를 키우므로 나는 개를 먹지 못한다”는 말이 인(仁)의 실마리로서의 측은지심이라면, “내가 개를 키우므로 이 사회는 개를 먹지 못한다”는 말은 폭압적인 위정에 불과하다.

4.

“개를 먹지 말자”는 게 “모든 동물을 먹지 말자” 또는 “~~한 동물을 먹지 말자”는 운동의 시발이라면 그 목소리는 충분히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고 본다. 내가 그 의견에 찬성하는 건 아니지만, 그건 충분히 생각하고 토의할 만한 ‘다른 의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의견이 어느 시장의 ‘개고기 축제’를 막고 “역겹다” “야만인이다” 같은 평까지 내릴 정도라면, 나는 그 의견을 별로 존중할 생각이 없다.

개를 잔인하게 도축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다면 손뼉을 치며 환영할 것이다. 잔인한 도축을 막으려면 법의 테두리로 ‘개의 도축’을 가져오는 수밖에 없으니까. 법의 테두리 밖에 있는 것을 사회가 막아내는 것은 아주 어렵다. 하물며 개의 식용이 가능한 사회에서는 더욱이 그러할 것이다. 식용 자체를 법의 테두리 밖으로 밀쳐내자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시 2번의 논의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3 개의 반응

  1. 개고기 먹고 싶은데;
    정말 … 생각하면서는 못 먹죠.

    적당히 어릴 때 할머니께서 식칼로 목을 치시는 것을 돕기 위해 닭날개를 잡은 기억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 생각 하면서는 닭고기 먹기 어렵죠.

    소는 또 어떻고요.
    식객이라는 만화/영화에서 충분히 소개했죠. 충분히 끔찍하다는 것을.
    소와 교감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계란은요? 무정란이라구요? 말장난이죠?

    풀 얘기는 ^^ 신선하네요.
    농부는 작물이랑 교감해요.
    그래야 소출이 좋아지거든요. (땅이랑도 교감한다고 하죠)

    농부는 풀이고 가축이고 그 생각으로 키워요. 먹을 걸로 팔 생각으로요.
    외국인들요?
    똑같잖아요.

    개는 정말 인간을 적극적으로 따르는 것 같기는 합니다.
    물론 주고 받기에 따라서, 그리고 약간의 차이를 무시하면, 다 똑같기도 하죠.

  2. [...] 먹지 못한다’는 말은 폭압적인 위정에 불과하다.”[주1]   [주1] 개고기 [...]

  3. [...] 2012-02-17 6:55 AM 한국에서도 개고기를 먹지만 엄밀히 개 식용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는 있지만 불법이라 명시되고 있다 는 사실과 다릅니다. 개고기를 먹는 것이 옳은 일인가 그른 일 인가 에 대한 문제는 차치하고, 현행 법에 개 식용을 불법으로 볼 근거는 없는 것으로 압니다. 개고기가 불법 이라는 주장은 주로 1) 식품위생법 2) 축산물가공처리법 3) 동물보호법 을 그 근거로 제시 합니다.   보건복지부에 의하면, “식품위생법시행규칙 제42조[별표13]의 규정에 의거 보건복지부장관 또는 시·도지사가 국민에게 혐오감을 준다고 인정하는 식품을 조리·판매하여서는 아니 되도록 식품접객영업자등의 준수사항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개고기’를 특정하여 혐오식품으로 정한 별도의 규정은 있지 아니” 하다고 합니다. 축산물가공처리법 은 소·말·양(염소 등 산양을 포함)·돼지(사육하는 멧돼지를 포함)·닭·오리, 사슴, 토끼, 칠면조, 거위, 메추리, 꿩, 당나귀 를 위한 법 입니다. 개는 축산물가공처리법의 규제를 받지 않습니다. 만일 그렇기 때문에 불법 이라면 타조, 갈매기, 캥거루, 말 고기도 먹을 수 없습니다. 동물보호법이 문제가 된다면 말을 반려 동물로 키우는 경우는 어떻겠습니까?   문제가 있는 것은 개를 “식용을 목적으로 하는 동물”로 인정하지 않는 일 입니다. 동물애호협회가 개고기를 정당한 축산물로 인정하는 것을 반대 한다고 합니다. “‘내가 개를 키우므로 나는 개를 먹지 못한다’는 말이 인(仁)의 실마리로서의 측은지심이라면, ‘내가 개를 키우므로 이 사회는 개를 먹지 못한다’는 말은 폭압적인 위정에 불과하다.”[주1]   [주1] 개고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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