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는 재해석해야 한다 (아킬레스)
“대한민국의 건국이, 탄생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무너지지는 않는다. 국민들이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지도 않는다.” (본문 중에서)
동의한다. 국가보안법이니 반공 교육이니 하는 촌스러운 것들이 지키는 것은 국가의 정체성이 아니라, 오롯이 기득권 테크노스트럭쳐의 자기합리화일 뿐이다. 이승만은 개새끼다. 그 중에서도 특히 한국전쟁 때의 이승만은 개새끼라 말하기엔 개에게 미안할 정도의 말종이다. 한국전쟁은 북한의 일방적 남침이라기보다, 당시 한반도 정치역학의 연장선상에 존재했던 전쟁이라 생각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강정구 교수의 학술적 발언이 옳다고 본다.) 그와 별도로, 지금의 남한은 훌륭한 자본주의 국가다. 북한은 공산주의의 탈을 쓴 김씨네 전제국가다. 이승만이 개새끼고 한국전쟁이 일방적인 북한 탓이 아니라고 해서, 이런 명제마저 위협받는 건 아니다. 너무 당연한 얘기 아닌가?

6.25는 기억할 가치가 없는가 (두루미)
한국전쟁에는 다양한 비극이 상존하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던 인민들에게 실체 없는 이데올로기 싸움을 강요했고, 그 결과 수십 만 수백 만의 사람들이 “너는 빨갱이” “너는 제국주의자” 하며 서로의 목에 칼을 겨누었다는 것은 그 중에서도 가장 참혹한 비극이다.
‘진보는 편협한 아마추어다’ 란 단순한 주장을 위해, 꼭 한국전쟁 얘기를 꺼내들어야 했을까. 결국 한국전쟁은 아직까지도 기억의 대상일 뿐 기념(記念)의 대상은 아닌 것 같다. 한국전쟁 최대의 비극은 네트워크에서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이런 글을 읽으며, 편협함이란 진보의 특성이라기보다 진보/보수를 아우르는 블로그세계의 특징이란 생각이 든다. 소위 블로그라는 이너서클 만들기.
그건 그렇고, 이 두루미라는 이름…… 설마 아니겠지, 동명이인이겠지.

과학자들이 펼친 죽음의 안무 맨해튼 계획 (과학자)
맨해튼 계획은 과학의 가치중립성(좀 더 엄밀하게 말해, 과학자의 가치중립성)에 대한 강력한 회의를 제기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과학주의자들에게 맨해튼 계획은 기억조차 하기 싫은, 혹 언급조차 하기 싫은 대표적인 사태였고, 과학적 업적보다 뛰어난 저술로 더 유명한 미국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그리 중요 인물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맨해튼 계획 참여를 변호하기 위해 온갖 변설을 동원하기도 했다.
과학은 과학 홀로 떨어져 존재한다기보다, 사회 전체와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존재이며, 그래서 “이것은 과학, 저것은 비과학, 이쪽은 과학적 분야, 저쪽은 과학 외적인 분야” 하는 식의 이분법은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실 과학의 시작 자체가 원래 철학의 역사, 사회의 역사와 굉장히 밀접한 것이었다. 만일 “맨해튼 계획은 정치적 분야, 과학자들은 그저 중성자에 대해 연구했을 뿐”이라는 이분법이 정당한 것이라면, 아인슈타인이 반핵(反核)을 위해 그토록 말년을 열정적으로 보내진 않았을 것이다.

생명과학과 윤리 논쟁을 보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지젝)
생명과학과 윤리 논쟁이야 워낙 오래된 것이고, 실제로 찬반 모두 그럴듯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다만 자세히 그 논쟁을 들여다보면 한쪽은 대체로 “인문학의 과학 제어론”을 비판하고 있고, 한쪽은 “과학의 몰가치화”를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국 하나의 합치점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글은 그 합치점 중 하나.

은형법에 대한 변명이 참으로 구질구질하여 (야간)
내가 왜 디씨 한의학 갤러리 개설에 한의학의 미래를 걸었을까.
실은 모범적(?)인 전형으로 삼았던 것이 과학갤러리나 언어갤러리, 철학갤러리 같은 곳이었다. 평소에는 전공자들이나 관심있는 사람들이 찌질 찌질거리고 놀다가, 가끔씩 심도있는 논의가 벌어지기도 하고, 재미있는 얘기가 나오기도 하고 – “횽”으로 대표되는 탈권위와 완전한 익명성이 보장하는 재미있는 놀이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의학 갤러리의 전신이 의학 갤러리라는 걸 깜빡 잊었던 모양이다.
여하튼 글 자체의 찌질함에 관계없이 은형법에 대한 얘기는, 당연히 폐기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은형법은 물론이거니와 동의보감 텍스트의 상당 부분이 폐기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류편 동의보감”이나 “신편 동의보감” 같은 책을 내야 하는가, 그런 건 또 아니라고 생각한다(동의보감 자체를 평가절하해야 한다는 건 물론 헛소리고). 얼마 전 영풍문고 의학 섹션에서 시간을 죽이면서 친구와 한 얘기가 있는데, “해리슨같은 책이 한의학에서도 나와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한의학 비판자들이 하는 말처럼, 수백년 전 책을 (참고서가 아니라) 교과서로 잡고 있어야 한다는 건 좀…… 한의학의 비극은 교과서 부재에 있지 않을까.

  하나의 댓글

  1. 작년에 제 글에 대한 생각을 쓰셨네요.. ^^;
    너무 오래되긴 했지만, 문득 검색을 하다가 읽고 가게 되어 댓글 남깁니다.
    지금은 블로그니 뭐니에 글을 쓰고 있다는 진지한 척을 중단하고 살기에..^^;
    예인님께서 쓰신 생각 잘 읽었습니다.
    새삼 지난 시간 쓴 글을 읽고 생각에 잠겨볼 수 있는 시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마도 두루미는 그 두루미가 아닐겁니다. ^^
    전 예인님을 뵌적이 없고, 예인님이 저를 매체에서 볼 일도 없는
    평범한 사람이니까요..^^
    그럼 행복하고 건강하신 나날 보내시길 바라며 이만..^^

 댓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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