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풍은 불었지만 /

노풍은 불었지만 한명숙 후보는 결국 낙선했다. 그래도, 사실 투표일까지도 2006년(오세훈-강금실)의 재림을 예상했는데 대단한 선전이었다. 한명숙 후보도 선전했지만 충남에서 안희정 후보의 당선이나 “한나라당에서 요크셔테리어가 나와도 당선될 것 같은 땅”이었던 경남과 강원에서 김두관 후보와 이광재 후보가 각각 당선된 것도 파란이었다. 이제 노풍이란 단어는 부적절한 것이 아닐까 한다. 노무현의 사람들은 실재한다. 그 실재가 바람보다 강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트위터는 선거를 바꿀 수 있을까 /

트위터는 선거를 바꿀 수 있을까? 김연아 씨 등 유명인들의 트위터 이용 사례가 많아지면서 화제의 중심으로 부상했으나 여전히 트위터는 보통 사람들에겐 ‘익숙하지 않은’ 서비스다. 또 트위터엔 나와 잘 맞는 사람은 팔로(Follow)하고 잘 안 맞는 사람은 언팔(Unfollow)하는 과정을 통해 내 구미에 맞는 생각만을 듣고 말하게 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게다가 리트윗(Retweet, RT)으로 유언비어가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위터는 선거를 바꿀 수 있을까’란 질문에 굳이 대답을 하라면, 나는 ‘예’라고 대답하겠다. 이 모든 한계에도 불구하고, 트위터가 선거에 ‘재미’를 불어넣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게 선거를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기의 단일화, 저기의 단일화 /

노회찬 후보가 단일화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었는가? 그럴 리가 없다. 그럼 밴드왜건 뭐시기 때문에 초기 노회찬 지지율 15% 중 12%가 한명숙에게 간 것이라는 진중권 씨의 일갈은 적절할까? 이것도 그다지 새겨 들을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노회찬 후보의 단일화 거부에 성난 사람들이 민주노동당 웹사이트를 공격하기도 했다는 사실은 또 무엇을 의미할까? 그냥 이 현상 자체가 우스운 해프닝이란 사실을 알려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20대 개새끼론’이 부상했던 것을 상기한다.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이는 혹자가 “노회찬을 탓하지 말고 20대의 낮은 투표율을 탓하라”며 그저 폭탄 돌리기에만 급급한 현상을 본다. 이런 얘기에 대체 무슨 큰 함의가 있단 말인가.

또 20대 책임론인가 /

젊은 세대의 낮은 투표율은 분명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 모두의 책임’으로 귀결되는 게 아니라 ’20대의 책임’으로 귀결되는 여론에는 분명한 반대, 그것도 반쯤 오심(惡心)이 섞여든 반대의 목소리를 분명히 하고 싶다. 20대의 낮은 투표율이 ’88만원 세대’로 대표되는 20대의 불이익으로 돌아온다는 견해에도 100% 동의하기 어렵다. 이는 20대 병신론이란 제목으로 (나름 블랙코메디를 추구해) 쓴 세 편의 글에서 이미 수 차례 주장했던 바이기도 하다. 감정의 배출 대신 젊은 세대의 투표를 이끌어내기 위한 진짜 논의가 필요하다. 2번에서 얘기한 ‘재미’는 그 논의의 일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축제가 필요하다 /

한 번의 선거는 세상을 어마나 바꿀 것인가? 내가 던지는 한 표는 또 세상을 얼마나 바꿀 것인가? 이 부분에 대해선, 나는 잘 모르겠다.

한명숙 후보의 패배를 놓고 노회찬 책임이네 한명숙 본인이 못나서 그런거네 하며 아웅다웅하는 사람들이 있다. 투표율이 낮다며 ‘의식없는 20대들이여’를 합창하는 사람들이 있다. 투표율을 고취시키기 위해 벌금이라도 걷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투표를 하지 않았다면 정치에 대해 입도 벙긋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다. 이 모든 분노는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일까? 이기고 나서도 싸우고, 지고 나서도 싸우고, 민주당 지지자들과 진보신당 지지자들도 싸우고, 투표 안한 사람과도 싸우고…… 건전한 경쟁 대신 늘상 분노와 적개심만이 지배하는 것이 선거라는 것이라면, 대체 이 판에 어떻게 그 젊은이들을 끌어들일 수 있을까?

지금의 논의는 너무 분열적이다. “한 표를 던진 나는 훌륭”하고 “참여하지 않은 너는 안 훌륭”하고 이런 이분법도 이상하고, “진보는 훌륭하고 보수는 안 훌륭”하다거나 “보수는 훌륭하고 진보는 안 훌륭”하다거나 하는 이분법도 쓸모없다. 우리에게는 축제가 필요하다. 이 민주화가 투쟁으로 얻어진 것이라 한들, 이제 민주주의라는 것은, 그리고 그 꽃이라는 선거라는 것은 보다 즐겁고 재미있는 그런 행위가 되어야 한다. 서울광장을 장식했던 “세훈아 방빼”라든가, 한명숙 후보와 오세훈 후보의 치열한 표싸움처럼, 실로 재미있는 것들, 이런 것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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