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헌법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고, 실제로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지 않음으로써, 즉 종교가 정치에 개입함으로써 일어나는 문제도 상당하다. 대표적인 것은 최근 기독교, 특히 개신교의 정치 간섭 문제인데, 이들은 설교시간을 이용하여 특정 정치집단을 비난하거나 현 여당인 한나라당에 노골적인 지지를 표함으로써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이 블로그에서도 개신교를 비하하는 표현인 ‘개독교’를 통해서라도 이런 개신교계의 정치 간섭 문제를 막아야 한다는 개요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최근 1000명이 넘는 천주교 사제들이 이명박 행정부의 주요 사업인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이어 주교회의에서 천주교의 공식 입장임을 전제하고 4대강 사업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일견 이 문제는, 그 정치적 지향이 정반대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개신교의 정치 간섭 문제와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물론 현 행정부를 탐탁찮게 여기는 이 블로그에서야 개신교의 정치 간섭은 막고 싶은 반면 천주교의 이번 입장은 진심으로 지지하고 싶어지지만, 이 성명이 종교의 정치 간섭으로 보여 우려된다는 동아일보의 칼럼에 대해 마땅히 할 말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맥락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천주교는, 그중에서도 특히 ‘정의구현사제단’이라 불리는 젊은 사제들의 모임은 70~80년대 민주주의가 부정당하던 박정희/전두환 독재시대에 등불과도 같은 존재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명동성당이 민주화의 성지 중 한 곳으로 일컬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시민의 권리가 무시당하던 그 시대에 그곳은 시민들을 지키는 성채같은 곳이었다고 한다.
실제로도 최근 천주교가 정치적인 발언을 내놓은 사례를 살펴보면,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내부고발을 보호하거나, 이명박 행정부의 4대강 사업에 반대의견을 내놓는 등 당대의 권력에 정면으로 반(反)하는 모양새였음을 알 수가 있다. 촛불집회를 반대하거나 한나라당에 대한 노골적인 지지 의사를 표하는 등 오히려 권력에 야합하는 행태를 취한 개신교계의 정치 간섭과는 다소 차별화되는 데가 있다. ‘한나라당’이라는 집단의 사회적 함의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동아일보 민병선 기자는 이렇게 얘기했다. “천주교단은 민주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다. …(중략)… 그러나 국민의 정치의식은 그때와 달라졌다.” 한국 정치에 미친 천주교단의 긍정적 영향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민주화가 진전되고 정치의식이 발전한 오늘날에는 천주교단의 정치적 역할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한국 사회가 토론과 끝없는 대화, 관용으로 가장 ‘좋은’, 즉 가장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결론을 내고 있는 것일까? 현 행정부는 정말 민주주의적일까? 행정부의 권력, 입법부의 권력, 검찰의 권력, 지방 토호들의 권력, 이런 것들은 독재주의 시대, 유신 시대의 향취를 완전히 벗어버렸을까? 많은 사람들이 아무래도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다.
결국 동아일보 민병선 기자의 지적을 거꾸로 해석할 수도 있다. 과거 민주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던 천주교단이 여전히 그때처럼 목소리를 내고, 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어떤 종교를 가졌는지에 관계없이 천주교단의 목소리에 동감하고 호응할 정도로, 대한민국의 정치가 다시 후퇴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물론 궁극적으로는 동아일보 민병선 기자와 마찬가지로 이 별 볼일 없는 블로거도 천주교단이 더이상 정치적 목소리를 내지 않게 되었으면 좋겠다. 민병선 기자가 얘기하는 것처럼 정말로 천주교단이 목소리를 낼 필요가 없을 정도로 세상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3 개의 반응

  1. 기독교와 천주교의 차이는… 천주교는 아예 천주교의 공식 입장이라고 뜻을 모은 반면에… 기독교에서는 적어도 일부 목사들의 탈선과 같이 취급한다는 거 아닐까요? 진정한 용자는 누구일지…

  2. 저는 이러한 주교회의의 공식입장이 그간 교회에 비해 비교적 침묵하고 있었던 천주교의 정치적 영향력과 더불어 사대강 사업자체에 대한 재고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천주교는 기독교보다 비교적 체계적인 수순과 절차를 통하여 사대강 사업 반대를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매 미사이후 성당앞쪽에서 서명운동을 하고 있더군요.
    현재 정부쪽에서는 애초 사제들을 대상으로 열린 사대강 설명회에서의 실수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있던데…예인님께서 말씀하신 이야기의 논점에는 어긋나지만 저 역시 서명운동에 동참을 하였고, 천주교에서 이러한 다소 강격적인 태도의 목적이 사대강 사업자체에 대한 고찰이라면 파급력이 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가지는 교회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성당의 경우 사대강 사업에 대한 특별한 언급을 삼가는 편이었습니다. 새벽미사 때의 큰 신부님이나 주말미사에서의 막내 신부님의 이야기를 예로 들자면 ‘주교회의에서 사대강 사업에 반대하기로 하였습니다. 천주교의 높으신 분들의 생각은 사대강 사업이 환경을 망치고 있다고 하네요. 혹시 이러한 의견에 동참하시는 분은 미사가 끝나신 후 가시는 길에 서명운동에 동참해주셨으면 합니다. 집으로 돌아가 복음을…’이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
    이 것이 사대강 사업에 대한 천주교의 의도나 목적이 있어 정치적인 개입을 하는 것이 아닌 단지 환경에 대한 걱정때문인지, 아니라면 다소 수직적인 천주교의 시스템의 구조에서 생겨난 문제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오랜기간 비교적 침묵하고 있던 천주교의 이러한 입장표명이 한창 여론의 비난을 받고있는 사대강 사업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가 궁금할 뿐입니다.

  3. 종교가 정치에 관여하라고 만들어놓은것은 아닐텐데…

 댓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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