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262010
한국은 피겨스케이팅의 불모지였다. 김연아는 말 그대로 갑자기 나타난 선수였다. 빙상에 섰던 선배들은 김연아의 갑작스런 등장을 오히려 불쾌해하는 듯한 기색까지 보였다. 연맹이니 조직이니 하는 단체도 뜬금없이 피겨스케이팅을 한다고 나선 이 작은 소녀에게 별 도움을 주지 않았다. 반면 일본은 넓은 피겨스케이팅의 인프라가 갖춰진 나라였다. 이미 올림픽에서 한 개의 금메달을 포함해 좋은 성과를 거둔 나라였다. 아사다 마오는 귀여운 외모와 3회전 악셀(Triple Axel)이라는 강력한 기술로 그런 일본인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김연아는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아사다 마오라는 산에 가로막힌 것처럼 보였다.
피겨스케이팅은 우리에게 낯선 종목이다. 이 종목은 점프와 스핀을 비롯한 다양한 연기를 2분 50여초의 짧은 프로그램과 4분 10여초의 긴 프로그램으로 선보여 우열을 가린다. 이 종목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이며 흔히 존경의 의미를 담아 ‘비상’으로도 불리는 ‘점프’는 무려 6가지 서로 다른 방식이 존재하는데, 악셀(Axel), 러츠(Lutz), 플립(Flip), 루프(Loop), 살코(Salchow), 토룹(Toe Loop)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 6가지 서로 다른 점프를 정말로 ‘서로 다른 메커니즘으로’ 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선수들은 점프의 메커니즘을 혼동하거나 속임수를 통해 한 가지 메커니즘으로 두세 가지 점프를 소화하곤 한다. 바깥쪽 날로 뛰어야 하는 점프를 안쪽 날로 뛰거나, 날 앞쪽의 톱니바퀴 모양 구조물 – 토(Toe)로 불리는 – 을 이용해 뛰어야 하는 점프를 날 전체로 뛰는 등의 속임수는 대표적이다.
피겨스케이팅은 단순히 점프와 같은 기술적 항목 뿐 아니라, 연기의 전반적인 질도 점수에 반영한다. 스케이트를 타는 기술이나 연기, 곡에 대한 해석력, 안무의 충실도 등을 채점하는데, 피겨스케이팅에서는 이 부분을 PCS라고 부르며 보통 점수의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하지만 이 항목은 종종 ‘이름값 점수’로 폄하되어왔다. 정말로 연기의 전반적인 질을 보고 점수를 매기는 것이 아니라, 이름값에 따라 점수를 줄세우기한다는 논란이 아주 긴 시간동안 계속되었다.
잠시, 아마도 모든 한국 피겨스케이팅 팬들의 공분을 다시금 되살릴, 2008년 세계선수권대회의 순간으로 돌아가보자. 마지막 프로그램을 끝낸 김연아의 점수가 발표되는 순간 경기장은 야유로 가득찼다. 김연아가 부상에도 불구하고 혼신의 열연을 펼쳤지만 의아할 정도로 낮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 경기장에서 1위에 오른 것은 아사다 마오였다. 그녀는 그녀의 주특기인 3회전 악셀(Triple Axel) 점프를 뛰지도 못하고 넘어진 뒤 수십초 동안이나 아무 연기를 하지 않았지만 김연아보다 높은 PCS 점수를 받았다. 심각한 속임수에 가산점을 준 심판도 있었고 노골적으로 회전이 부족했던 점프에는 거의 모든 심판이 가산점을 주었다. 그녀의 채점표는 같은 기술에 감점과 가산점이 혼재하는 카오스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전 일본의 사랑을 받는 이 소녀는 2008년 봄 관객들의 야유를 뒤로 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연아는 6가지 점프를 모두 ‘서로 다른 메커니즘’으로 소화하는 선수다. 반면 김연아의 라이벌로 불리는 아사다 마오는 속임수(cheating)가 가장 많은 선수 중 한 명이다. 아사다 마오가 아주 강력한 기술인 3회전 악셀(Triple Axel) 점프를 소화함에도 불구하고 기술적인 측면에서 김연아에게 뒤지고 있는 까닭이, 그리고 지금껏 거의 늘상 뒤져왔던 까닭이 여기에 있다. 심지어 – 그녀의 주력무기인 3회전 악셀(Triple Axel) 점프도 그 질이 나쁜 편이다. 그러나 그녀의 속임수는 그에 걸맞지 않은 높은 점수로 보답받곤 했다. 심지어, 이번 2010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조차 해설진이 “회전수가 부족하다”고 지적한 3회전 악셀 점프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ISU를 지배하다시피한 일본의 스폰서 기업들이 이런 부정한 판정에 일익을 담당했다는 소문도 있으나, 어쨌든 이건 소문일 뿐이다. 피겨스케이팅에서 심판의 비리가 발각되어 초유의 ‘공동 금메달’을 수여했던 솔트레이크 동계 올림픽의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한일 빙상연맹의 지원에 큰 차이가 있다는 소문도 있으나 역시 소문일 뿐이다. 한국 빙상연맹이 파벌 문제 등으로 인해 많은 비판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분명한 것은 아사다 마오의 점수가 자주 피겨스케이팅의 규칙을 무시하고 높게 책정되어 왔다는 것이다. 반면 김연아는 가장 정확한 메커니즘으로 기술을 소화했고 가장 복잡하고 우아한 프로그램을 늘 가져왔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걸맞는 점수를 받지 못하곤 했다.
모든 선수에게 격려와 찬사를 보내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들의 아름다운 경쟁은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곤 한다. 그러나 이것이 언제나 늘 통하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종종 스포츠로부터 아름다운 경쟁 대신 이해할 수 없는 판정과 억울하게 패자로 낙인찍힌 고난의 눈물을 보기도 한다. 2008년 수많은 피겨스케이팅 팬들이 김연아로부터 보았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났고, 김연아는 압도적인 기량으로 그녀에게 어울리는 자리를 되찾았다. 1년 전의 세계선수권대회보다 더욱 확실하게, 더욱 강렬하게. 2인자도 격려한다는 겉으로만 아름다운 문구는 적어도 이번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빙상에 어울리는 얘기는 아니다. 오늘은 오직 김연아를 위한 날이다.
우와 점프 종류가 정말로 다양한가보군요. 갈수록 김연아 선수가 대단하게 느껴지네요.
훌륭한 선수입니다. 지저분한 스포츠세계에서 혼자 그 업적을 이뤄냈다는 건 기적같은 일이죠. ㅎㅎ
김연아가 일본인이었다면 250점도 가능했을걸 ㅎㅎ;;
미국인이었다면 미셸 콴 버금가는 저명인사가 되었을지도…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