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던지, 한동안 “파이어 엠블렘 외전”이란 게임을 붙들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그러니까 1991년에 닌텐도 사에서 발매되어 31만장이란 기록적인 판매고를 올린 턴(Turn) 제 시뮬레이션 게임의 고전이다.
사실 기록적인 판매고고 고전이고 상관없이, 옛날 게임은 옛날 게임이다. 배경은 까맣고, 인물도 도트가 다 드러나는 조악한 그래픽으로 만들어졌다. 배경음악은 거기에 한 술 더 떠 핸드폰의 2화음 벨소리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대사도 유치하고 스토리도 뭔가 앞뒤가 안 맞는데다, 버그까지 많다. 한 번은 동료가 “해방군의 아지트”라며 한 동굴로 일행을 안내했는데, 좀비만 득실거리는 빈 동굴인 경우도 있었다. 이 나라의 레지스탕스란 좀비로 구성되어 있는 건가 하고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천마(天馬)기사 하나를 동료로 하지 않으면 이런 버그가 나타난다고 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재미있다. 한 번 잡으면 쉽게 놓을 수가 없다. 고막을 찌르던 배경음악도 어느새 장엄하게 들린다. 일주일만에 사신(死神)을 쓰러뜨리고 엔딩을 봤고, 사신을 쓰러뜨리는 순간에는 나름대로의 감동도 느꼈다. 거기에 보통 넘겨버리기 일쑤인 엔딩도 끝까지 봤다. 주인공들의 후일담이 까만 배경에 죽 쓰여지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는데도. 이는 요즘 게임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옛날 게임만의 힘이다. 그래픽도 스토리도 엉망이지만, 게임으로서의 미덕만은 잃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 미덕이란 단순함이다. 예를 들어, 장기나 바둑, 체스 등은 무한히 많은 전략과 전술을 통해 운용되고, 또 끊임없는 머리싸움과 수읽기가 요구되는 게임이다. 그러나 이런 게임들을 접하기 위해 매뉴얼을 뒤적일 필요는 없다. 십여 분 정도만 게임을 지켜보면 누구나 말이든 돌이든 잡을 수 있다. 그 판 위에서 창조되는 수와 재미는 무궁무진하지만, 사실 룰 자체는 매우 단순하기 때문이다.
반면 요즘 게임은 어째 플레이하기 시작하면 머리부터 아프다. 복잡한 규칙을 숙지해야 하고, 기술을 쓰려면 수학 공식까지 동원해야 할 판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 나온 게임 중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게임은 “테일즈 오브 테스티니 2″였는데, 전작들에 비해 전투시에 고려해야 할 규칙들이 많아져서 한 시간 여를 잡았지만 흥미를 붙일 수가 없었다. 이런 게임의 규칙들은 게임 전에 반드시 숙지해야 하며, 충분히 숙지하지 못하면 게임이 버튼 난타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단순 노동으로 전락한다. 그렇게 수많은 규칙을 숙지하고 게임 패드를 잡지만, 반면 그 이후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 그저 게임에 규칙을 적용하기 위해 머릿속에서 계산기를 두드릴 뿐, 창조적인 운용이란 도통 찾아볼 수 없다. 그러다보니 쉼도 재미도 잃었다.
(그런 면에서 가장 맘에 드는 건 “모두의 골프” 시리즈였는데, 이 게임은 골프의 복잡한 요소, 운동상의 물리적 규칙(?) 따위를 과감히 생략하면서도 골프의 본질만은 놓지 않아 그 재미를 쉽게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골프를 전혀 모르던 사람이라도 십 분이면 호쾌한 “나이스 샷”에 환호할 수 있다.)
팔콤의 이스(Ys)가 처음 나왔을 때, 그들은 이 단순한 게임을 가리켜 “이보다 더 복잡하면 좋겠단 건 위험한 생각”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지금 와서 그 당시 주류 게임들의 수준이나 그 광고 카피의 저의를 알아볼 생각은 없지만, 요새 나오는 게임을 하고 있다 보면 (그 카피의 원래 의도가 어떤 것이었든 상관없이) 자꾸만 동감이 된다. 게임의 완성도니 게임성이니 하는 것들은 룰이 복잡해진다고 해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역시 게임의 미덕이란 단순함에서 나온다.
2 개의 반응
댓글을 씁니다.
http://yeinz.net/blog/archives/60/trackback

좋은 글이네요
하지만 읽진 않으셨다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