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성년자의 성범죄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미성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알몸 졸업식 강요 사건, 부천 여고생 성폭행/화재 사망 사건 등이 연달아 터지면서 국민적 공분이 터져나오고 있어, 이 문제를 심도있게 논의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물론 진짜 심도있는 논의는 법학이나 사회학, 청소년 문제 등을 깊이 공부한 전문가들에게 맡길 일이지만, 일개 블로거도 사건의 심각성을 ‘환기’하는 역할 정도는 해야 할 것 같다.
사실 미성년자라고 해서 무조건 형사처벌이 불가능한 건 아니고, 만 14세 이상의 청소년은 범죄를 저지르면 범죄소년(犯罪少年)이라고 해서 형사처벌을 할 수가 있다고 한다. 다만 미성년자라는 점을 고려해 사형이나 무기징역을 선고한다거나 할 수는 없고, 형을 적절하게 감경하거나, 죄질이 무겁지 않다고 여겨질 경우 가정법원으로 송치해 보호처분을 받게 하거나 할 수 있다고 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청소년에 대한 형사처벌이 불가능한 게 아니니만큼 미성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견해는 다소 무리한 것이 아닌가 한다. 다만 강력범죄에 대한 형사처벌 자체가 너무 가볍다는 생각은 있다. 조두순 사건이 판사의 말을 빌자면 “아주 죄질이 나쁨에도” 불구하고 12년 징역형을 받았던 것이 이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볼 수 있겠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합의할 수 있을 정도로 극악무도한 강력범죄, 미성년자 성폭행이나 살인 등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이 더욱 강화될 필요성을 느낀다. 단 이런 경우에도 법을 직접 고치는 것은 위험하며, 이런 범죄에 대한 처벌을 무겁게 할 수 있도록 양형기준을 엄격히 설정하는 것이 더 좋은 해결책이라는 견해가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또 한 가지 간과해선 안 될 것이 문화다. 예를 들어 이번 알몸 졸업식 강요 사건은 언론에 의해 ‘막장’ ‘알몸’ 따위의 선정적인 단어가 과대포장되어 보도되었는데, 사실 이 사건에서 훨씬 중요한 것은 그것이 강요되었다는 것이고, 이것이 성(性)에 대한 폭력으로 죄질이 아주 나쁜 일이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자발적인 것이라는 전제 하에, ‘알몸 졸업식’ 자체는 “권장할 건 아니지만, 어쨌든 재밌잖아?” 수준으로 보고 넘길 문제라고 생각한다. 반면 그것이 강요된 것이고, 폭력이 수반되었다면, 이것은 용납할 수 없는 문제이며 형사처벌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언론의 보도와 세간의 문제제기는 전혀 다른 두 층위의 문제를 교묘하게 섞어 ‘막장’이라는 자극적인 블라스트로 만들어 내놓는다.
청소년 성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콜린 워드는 자신의 저서 <Anachy In Action>에서 “상식적인 젊은이라면 즉시 이해하고 받아들일 원칙 대신 순결이라는 말도 안 되는 규범을 강요함으로써 청소년들의 성행위에서 신중함과 배려가 사라졌다”는 견해를 피력했는데, 나도 이 견해에 매우 동감한다. 성행위에 필요한 수많은 덕목 – 상대에 대한 배려, 피임 등 임신에 대한 충분한 대비, 신중한 태도 등은 청소년들이 얼마든지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일 만한 것이다. 그러나 성교육은 여전히 구시대의 순결 이데올로기를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청소년들을 이해시키지 못하고 공연한 시간낭비만 재촉하는 것은 물론, 성윤리 자체를 회의적인 입장에서 바라보게 만든다. 이런 문화적 요인이 청소년 범죄, 특히 성범죄를 늘게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사실 무슨 연구를 한 게 아니라 함부로 말하기는 어렵고……
이는 자연스럽게 교육 문제로 연결된다. 범죄소년이나 우범소년에 대한 계도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청소년들이 범죄로 빠지지 않도록 하는 교육은 잘 이루어지고 있는가, 이런 부분에 대해 “그렇다”고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교육만 시키면 만사 OK도 아닌 것이 위의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을 이해시키지 못하는 교육은 공연한 시간낭비일 뿐이고, 그 청소년들을 이해시키는 교육이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다시 성교육을 예로 들어, 어른들을 경악으로 몰고갔던 구성애의 성교육도 10대의 눈으로 바라보면 구태의연한 아줌마의 잔소리일 뿐이고 – 사실 개인적으로는 10대들의 견해를 지지한다.
추가로, 약간 논외의 문제인데, 만 14세 미만의 아동/청소년은 형사미성년자로서 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 만 10세 이상은 촉법소년(觸法少年)으로 소년원 송치 등의 보호처분을 내릴 수 있으나 역시 형사상 책임은 아니다. 사실 자기결정능력이 없는 아동에게 형사상 책임을 지우는 것은 단순히 징벌적 효과 이외에 마땅한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점에서 지지할 만한 제도이지만, 여기에서도 논란은 발생한다. 만 14세라는 기준이 너무 높지 않느냐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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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만화는 그저 우스운 블랙코메디일 뿐이지만, 만 13세 쯤 되면 정말 저런 생각을 하지 말란 법도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뉴질랜드에서는 – 그리 중요한 논의는 아니었던 듯 하지만 – 형사미성년자의 기준을 만 12세로 낮춰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고. (관련기사) 물론 미성년자 처벌은 여러 측면에서 아주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문제이고 형사미성년자의 연령을 낮추는 문제는 더욱 쉽게 말할 수 없는 것이지만, 현행 제도에 문제가 많고 미성년자 범죄에 대한 국민 감정이 좋지 않은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몇 가지 대안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부모에게 강력한 민사 책임을 묻는 것. 강력한 민사적 책임은 자연히 형사범죄에 대한 억제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살인, 방화, 강도, 강간, 유괴 등의 강력범죄에 대해서는 보호처분 외에 다른 처벌을 할 수 있게 한다거나 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가장 극단적인 방법으로는 역시 ‘강력범죄에 대해서는 기소할 수 있게 한다’는 식의 것이 될 것이다. 가장 좋은 대안은 이런 촉범소년에 대한 계도, (필요하다면) 정신과적 치료 등 여러 합리적인 제도가 지금보다 훨씬 공고하게 만들어지는 것일 듯하다. 누구도 이런 변화에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저런 얘기는 많이 했지만 사실 이 블로그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결론을 얘기할 만큼 지적인 곳은 아닌 것 같다. 다만 분노가 커지다 보니 이래저래 말이 많아지게 되었다. 이전에도 쓴 적이 있지만, 궁극적인 분노는 언제나 이성적이다. 아는 것도 별로 없는 이 블로그가 머리를 굴려봐야 사회에 큰 도움이 되리란 생각은 안 들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궁극적인 분노’를 쏟아낼 수 있도록, 아주 미약하게나마 – 환기라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시쳇말로 ‘신상 털기’ 같은 놀이에 젖는 게 아니라 정말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혹 일어나더라도 그 대응이 지금같지는 않도록. 똑똑한 사람들이 더 많이 분노했으면 좋겠다. 똑똑한 사람들이 더 많이 얘기했으면 좋겠다. 그게 사회의 분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4 개의 반응

  1. 부모의 죄는 자식의 죄가 아니지만 자식의 죄는 부모의 죄다..

  2. 촉범소년에 대해서는!
    촉범소년이 왜 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느냐를 생각해 보면…..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내용 아닌가 싶지 말입니다.

  3. 청소년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하되…

    그에 따라 청소년의 권리또한 대폭 늘리면 맞지 않을까… 합니다.

    사실 요즘 청소년들 예전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 ^^

  4. 그러게요…
    뭔가 대책이 세워진다면 사회가 좀 밝아지지 않을까
    싶네요

 댓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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