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는 어떻게든 새로운 유료화 모델을 정착시키려 애쓰고 있다. 매달 일정한 요금을 지불하고 기사를 읽는 구독제 모델은 오래된 것이고, 아이폰(iPhone)을 비롯한 스마트폰용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이 프로그램을 돈을 받고 판다거나 하는 방식도 시도되고 있다. 하지만 단언컨데 모두 실패할 것이다. 그 까닭은 단순하다. 소비자들이 신문 컨텐츠로부터 돈을 낼 만한 효용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직관적으로 말해, 조선일보를 읽어서 얻는 효용은 디시인사이드를 눈팅해 얻는 효용과 비슷한 수준이다. 2009년 12월 22일 화요일 오후 2시 네이버 메인에 조선일보가 걸어놓은 저 기사의 목록을 직접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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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뉴스캐스트에 조선일보가 걸어놓은 기사들.

황색 저널리즘의 절정을 보여주는 뉴스캐스트를 굳이 보지 않더라도 신문 기사의 질은 ‘돈을 지불할 만큼’ 높지가 않다. IT를 예로 들어, 한국에서 아이폰은 도대체 몇백 번째 ‘발매 확정’을 반복했던가. 인터넷 커뮤니티나 블로그 등이 아무래도 IT 분야와 친하다보니 IT 분야 기사들의 저급함이 더 눈에 띄게 드러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문제는 사실 IT 기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전 화제가 되었던 ‘에이즈 택시기사’ 사건을 예로 들어 보자.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 관련 정책에 대한 광범위한 지식은 기대할 수도 없었고,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이 어떤 질병이고 HIV가 무엇인지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 없는 기사가 대부분이었다. 이 사건과 별개로 한 언론의 기자는 MRSA를 ‘남성 동성애자 사이에서 확산되는 신종 질병’이라고 표현했고, 미디어다음 데스크는 이를 ‘신종 에이즈’로 다시 포장하는 등 그 극단적인 무지를 드러낸 적도 있다. 또 다른 예로, 우크라이나 변종 플루에 대한 언론들의 설레발은 또 얼마나 무의미한 것이었던가.
또 한 가지 문제는 이념에 ‘너무’ 함몰된다는 것이다. 프레시안이 의료민영화 문제를 환기하고자 실은 이 만화를 예로 들어 보자. 이 블로그에서 이미 문제를 제기했던 것처럼, 이 만화는 정치적 견해를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자신의 정치적 견해에 유리한 사실만 취사 선택하여 싣는다. 논리가 너무 단순해 성인이 읽기에 지극히 유치한 것은 물론, 만화를 읽음으로써 얻을 만한 지식도 없다. 이 만화로부터 얻을 수 있는 건 오로지 선동과 세뇌 뿐이다. 물론 주류언론, 소위 조선, 중앙, 동아 등도 마찬가지로, 정확히 그 반대 포지션에서 이념 함몰의 극단적인 예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역시 언론에 전문가가 없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예를 들어 아시아경제신문의 이정일 기자는 원래 PC 전문잡지 출신으로 IT 기사만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상당히 신뢰할만한 기사를 뽑아낸다. 반면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이나 신종 플루에 대한 기사를 다루는 기자들 중 의학에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봐야 겨우 찾을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러니 높은 품질의 기사가 나올 수가 없고, 얕은 식견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의식만 강하다 보니 프레시안의 만화처럼 선동과 세뇌에 가까운 컨텐츠가 생산되는 것이다.
갑자기 이런 글을 쓰게 된 까닭은, 삼성저격수로, 양심있는 기자로 그 명망을 얻은 이상호 기자가 <구당 김남수, 침뜸과의 대화>란 책을 쓰는 등 – 한 블로거의 표현을 빌면 – 몰락하는 과정을 우연히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구당에 대한 견해를 밝히는 건 한의사라는 내 직함 탓에 이 자리에서 하기 어렵겠지만, 어쨌든 씁쓸한 일이다. 그가 정말 제대로 된 언론인이었다면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에 함부로 끼어들지는 말았어야 했다. 기자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더러운 자본주의’ 운운하는 가벼운 정의감이 아니라, 사실에 대한 끝없는 탐구이며 자신이 생산한 컨텐츠의 무게에 어울리는 전문성이기 때문이다.
조갑제(리즈시절)의 기자정신은 배울 수 없을지라도, 적어도 그의 팩트에 대한 집착은 언론인이라면 마땅히 따라야 할 기본 자세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기자들이 이런 걸 배울 리가 없지. 그러니까 한국 언론은 앞으로도 쭉 미래가 없을 거야.”

  3 개의 반응

  1. 쉽게 생각하면, 신문의 기사가 가지는 가치가 디시 친구들의 그것보다 떨어진다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네요! 과연 언론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수준의 기사가 일반화되기까지는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요.

  2. 대중은 저급한 걸 더 좋아하니깐요 -ㅁ-
    그래서 언론에 자정작용을 기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 같습니다.

  3. 예전 수업시간에 들은 얘기론 우리나라 사람들은 언론에 너무 많은 권위를 부여한다고 하더군.
    그 원인으로 우리나라 언론의 시작이 계몽이었다는 것을 꼽고 있더라.
    외국은 언론이 첨 나왔을때 상업적 목적의 도구로써 나왔다더라.
    외국도 그렇고 우리나라도 그렇고 언론이 사기치는건 다 같은데,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그걸 얼마만큼의 중요성을 갖고 볼 것이냐의 차이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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