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보감의 가치를 어느 수준까지 인정해야 하나

동의보감은 훌륭한 한의학 서적임에도 불구하고 해부학적 지식이나 미생물학적 지식 등에 있어서는 틀린 부분이 많고, 양생(養生, 웰빙과 유사한 개념의 한의학 용어)법 등에서는 특히 신뢰할 수 없는 도가적인 주술법 등이 언급된 부분도 있다. 물론 그 분량이 동의보감의 방대한 저술 중 아주 적은 비중에 불과하긴 하지만, 많은 한의학 비판론자들은 이런 부분을 들어 한의학 자체를 깎아내리곤 한다.

오히려 이러한 비판론은 다른 주제로 논쟁 중에 한의학을 깎아내리기 위한 논점 일탈의 의도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한의학 옹호론자와 비판론자가 논쟁을 하던 중, 비판론자가 ‘투명인간을 만드는 처방, 주술을 외워 목에 걸린 가시를 제거하는 처방’ 등 동의보감의 처방편에 기재된 비상식적인 내용을 들어 옹호론자의 주장이 틀렸을 것임을 주장하여 글을 읽는 이로 하여금 심정적으로 동의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경’ ‘동의보감’ 등 고서가 교과서 수준의 책으로 인정받고 있는 현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물론 동의보감 중에서도 해부학적 지식이나 미생물학적 지식, 도가적 주술법 등 상식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내용을 실제 진료에 사용하는 한의사는 없다. 그러나 동의보감이 교과서적인 지위를 인정받음으로서 동의보감 중 어떤 내용을 신뢰할 수 있고 어떤 내용을 신뢰할 수 없는가 하는 평가가 한의사 개개인의 자의적인 잣대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만일 투명인간을 만드는 법이나 주술을 외우는 방법 등 지극히 비상식적인 내용의 경우에는 ‘모든’ 한의사와 대중이 당연히 사용하지 않기로 합의할 수 있겠지만, 동의보감의 모든 내용이 이처럼 시비가 분명한 것은 아니다.

또한 한의계에서는 자신이 내세우는 주장의 근거를 내경과 동의보감에서 찾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일종의 동어반복의 오류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1+1=2임을 근거로 2+2=4임을 추론할 수 있지만, 1+1=2라는 주장을 증명하지 않을 경우 2+2=4라는 것을 진리로 믿을 근거가 없다. 즉 2+2=4를 맞는 명제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1+1=2임을 증명하는 것이 우선이다. 한의계가 내경과 동의보감을 주장의 근거로 삼는 것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자신이 내세웠던 주장을 그대로 또 하나의 주장의 근거로 삼는 경우 이것은 논리적으로 타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아무런 정보를 줄 수 없는 공허한 분석이 되는 것이다. 한의사가 주장을 성공적으로 펴기 위해서는, 내경과 동의보감의 특정 부분을 근거로 내세우기 전에 인용한 부분이 옳음을 납득시킬 수 있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실제로 현재 한의학계에서는 실제 동의보감을 교과서로 이용하는 대신 이 중 신뢰할 만한 부분을 뽑아 각과 교과서에 나누어 싣고 있는데, 이러한 과정이 더욱 정밀해져 누구나 믿고 사용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야 할 것이다.

한편 임상가나 민간 학회 등에서 실제 동의보감이나 내경의 전문(全文)을 교과서처럼 다루는 현실은 학문으로서 한의학에도 막심한 피해를 주고 있다. 앞서 얘기한 자의적 해석의 문제는 그 대표적인 것이다. 또한 과학의 발전을 살펴보면, 어떤 이론이나 가설이 등장하기까지는 많은 학자들의 수십 년에 걸친 노력이 필요했던 반면, 그 내용은 시간이 지나면서 간결하게 정리되어 학생 수준에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내경>이나 <동의보감>의 내용은 그 대부분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집주(集註)의 형식을 통해 그 내용이 더욱 방대해지기만 했고, 시간이 지나도 그 내용을 이해하기는 여전히 어려웠다. 물론 관념 수준에 머물렀던 과거의 인식 체계를 정밀한 것으로 가다듬는 데 있어 집주라는 형식이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집주의 양이 늘어가면서 한의학 체계에 대한 이론적 합의가 이루어지기 어려워졌고 따라서 한의학도들은 이 모든 집주를 빠짐없이 익혀야 하는 무리한 숙제를 떠안게 되었다. ‘온고’에 매몰되어 ‘지신’을 할 수 없을 정도가 된 것이다. 이러한 특색은 결국 한의학의 학문으로서의 발전을 더디게 만들 수밖에 없다.

연재 : 새로운 한의학상의 정립이 필요하다
(6) 동의보감의 가치를 어느 수준까지 인정해야 하나

“동의보감의 가치를 어느 수준까지 인정해야 하나”에 대한 4개의 댓글

  1. 열심히 쓰는구나.

    내가 수련병원에 노예짓 하면서 계속하여 드는 생각이 있는데
    임상 한의사들은 저절로 저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게 된다는 것이야. 망설이지 말고 라잇 나우

    결국 ‘동의보감을 얼마나 믿어야 하나’라는 질문은 개인 한의사에게 공허하면서 흥밋거리가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내 환자 A, 환자 B, 케이스 A 케이스 B 등 개별 개체의 질병 또는 체질 또는 증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가 충실하게 되기 때문에…

    사람은 밥을 안 먹으면 굶어서 결국 죽는 존재라는 것…병원에서 이것만은 정말 절실하게 느꼈다.

    나란 존재를 지우고 싶을 만큼 한의사 김승효는 무력하다. 이대로 나가면 나는 굶어죽는다 강의 좀 들어야겠다 등등ㅎ

    윗 글과같은 고민보다는 ‘이 사람의 질병에 동의보감 XX에서 밝힌 병리기전이 들어맞는 것인가’의 접근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더라고. 그래서 기십만원~기백만원짜리 강의 등이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이고.

    레지던트 과정을 어느 병원에서 하게 될 것인지. 나조차도 모르는 나의 운명은 어디로…

  2. 한의학계 일부에서는 한의학을 내부비판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의료계 등에서 맹공(?)을 당하다보니 “우리끼리는 뭉쳐야하지 않겠냐”는 마인드인 것 같은데……

    그건 전쟁하는 사람의 마인드고, 학문이라는 건 전쟁이라기보다는 무역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한의계 내부에서 내부 비판이 계속해서 나와 주어야 의학계(? 좀 어색한 표현인 듯 합니다)도 한의학계를 학문적인 동반자로 여길 수 있게 되고, 서로 교류할 수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이렇게 될 수 있다면 의료일원화를 할 것이냐, 의료이원체계를 그냥 계속 이어나갈 것이냐 하는 문제는 차라리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희망(?)도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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