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다임론은 한의학을 변호할 수 있는가

한의학계는 한의학의 정당성을 변호하기 위하여 패러다임론을 남용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한의학계 인사들은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이 뉴튼역학을 혁명적으로 뒤엎었으며, 이런 사례와 같이 기존에 과학으로 여겨지던 것이 새로운 발견에 의해 폐기되어왔다고 주장한다. 서양과학은 만능이 아니며, 자연의 지극히 일부밖에 밝혀내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물론 엄밀히 말해 뉴튼역학의 공식이 틀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느낄 수 없을 만큼 사소한 오류였을 뿐이다. 가시적인 세계에서 상대성이론과 뉴튼역학은 거의 동일한 값을 내놓는다. 즉, 양자역학이나 상대성이론의 등장은 혁명적이었으되 한의학계 인사들이 말하는 것처럼 기존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엎은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뉴튼역학의 F=Ma 공식은 상대성이론이 적용됨에 따라 폐기된 것이 아니라,
사용자 삽입 이미지와 같이 변하였다. 따라서 그동안 한의학계 일부에서 한의학이 과학에 포섭될 수 있다는 근거로 양자역학이나 상대성이론을 들어 온 것은 부적절한 대응이었다 할 수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측면이 아니라, ‘기존 과학은 무력하다’는 절대적인 도그마의 측면에서 패러다임론을 이용하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한의학이 서양의학과 ‘다른’ 패러다임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에 비견될 수 있는 최소한의 내부적 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다. 이는 과학이란 반증가능성과 검증가능성을 가진 방법론이라는 일부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즉 한의학이 서양과학과 패러다임이 다르다는 사실은 변론으로 충분치 않다. 이렇게 패러다임론을 남용하게 되면 아무 근거가 없는 사이비 종교, 사이비 의학까지도 ‘패러다임의 차이’로 인정해주어야 하는 모순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의학을 반증이 가능하고 패러다임의 혁신이 가능한, 즉 서양과학과 대등한 학문적 패러다임으로 발전시켜야만 하는데, 과연 이 수준의 내부적 체계를 갖추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한의학계 한편에서는 비판론자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한의학의 고유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음양오행/내경 등 학문의 초기 단계로 함몰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한의학은 고대경학 – 훈고학 – 성리학 – 고증학 – 실학 – 과학 등 조류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고 발전해온 학문이었는데,[footnote]김광중. 한의학(韓醫學)의 연구방법. 동서의학. 1988; 13(3): 10-15.[/footnote] 비판론자들의 공격에 대해 일부 한의계는 내경을 방패막이로 한 고대경학으로 회귀, 심하게는 신비주의로 퇴화해버린 경향마저 있다.

그 리고 또 한편에서는 분석과학의 방법을 빌려 한의학을 분석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데, 궁극적으로는 긍정적인 흐름이지만 일부 전문연구자 그룹이 많지 않고 연구인프라 또한 부족한 상태에서 단순히 핑계거리를 만들기 위해 분석과학의 외형만을 빌려 다소 신뢰하기 어려운 실험을 수행하고 있는 것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오링테스트 등 유사과학의 범주에도 들어가기 어려운 폐기된 방법론에 대해 ‘유의성이 있다’고 발표한 논문마저(물론 대학교나 대형병원 등 ‘학계’에서는 이를 배척하고 있다) 일부 존재한다는 것은 이러한 현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런 한의학계 내부의 문제 때문에, 엄밀히 정의하여 현재의 한의학을 과학이라 부르기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다.[footnote]과학적 또는 과학이라는 용어의 사용은 과학사의 변천에 따라 다수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소박한 경험주의의 용법 – 다수의 지각과 경험에 의해 귀납적으로 판단되어 생긴 이론이 현상적으로 많은 예를 설명할 수 있으면 참인 이론으로 인정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비한증’이라는 증상 군집을 가진 전형적인 환자군이 있고 이중탕으로 치료를 하여 많은 환자가 증상이 소실되었다면 이를 참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틀에서 한의학의 진단과 주요 방제, 침구 시술 개념은 소박한 개념의 귀납의 틀로서 현상과 치료 연관성을 발견하고, 과학과 일부 합치됨을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반증가능성 : 칼 포퍼 – 다수의 문제의식으로 비판받을 수 있고, 이론의 예측을 전복하려는 수없는 시도가 성공하지 못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 사실일 때만 이론이 입증됨을 주장한다. 뉴턴의 고전역학이 물질계의 대부분의 현상을 설명하였으며 물리학의 정설로 받아들여지다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뉴턴의 고전 역학이 설명하지 못했던 부분을 설명한 이후 반증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아인슈타인이 예측했던 현상은 반증가능성이 대단히 높았으나 그 현상이 실제로 관측된 이후 상대성 이론이 강하게 입증되었다. 초기에 제창되었을 때 많은 과학자들이 포퍼의 이론에 대해 논쟁하였으나 현재는 정설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무수한 증례의 모음에도 불구하고 이론이 완전함을 증명하지 못하는 귀납의 문제와 마찬가지로(까마귀가 검다는 것을 무수한 까마귀의 관찰로 증명할 수 없는 경우 등), 반증이 되지 않는 것을 이론이 완전함을 증명하는 근거가 되지 못하는 것이 포퍼 가설의 인식론적인 약점이다. 한편 포퍼에 따르면 반증가능성이 0인 이론은 과학으로 성립되지 못한다, 이론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거나, 무수한 수정을 통해 반박가능성을 없애는 이론은 과학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한의학이 반증가능성을 갖지 못하여 인식론적으로 약한 부분이 다수 존재함이 사실이다. (김승효)[/footnote] 의학계에서 한의학이 과학이 아니다 라는 주장을 제기하였을 때 한의학계에서 정확한 근거를 대지 않고 단순히 ‘과학과 합치되는 부분이 많다’ 또는 ‘과학적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따라서 비판론자들의 비판이 도그마에 사로잡힌 것임을 지적함과 동시에, 한의학이 최근 보이고 있는 퇴행 현상을 시정하기 위한 한의학계 내부의 노력도 필요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론에도 불구하고 패러다임론이 그 유효성을 상실하는 것은 아니다. 긴 시간동안 발전해 온 한의학에는, 비록 그것이 과학의 틀과 다소 다르고 현대인을 설득하기에는 어려운 것일지언정 장상학, 본초학, 경혈학 등 상당한 수준의 내부 체계가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다만 과학 맹신주의를 공격하기 위하여, 패러다임론이 절대적인 것이며 현재의 과학은 반드시 틀린 것이라거나, 현재의 과학은 불완전하고 한의학이 거기서 진일보한 패러다임이라는 식의 패러다임론 맹신주의를 갖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이는 기존의 도그마를 공격하기 위해 더욱 굳건한 도그마를 형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의학이 서양과학과 다른 패러다임임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 이론의 체계가 보다 정밀하게 내부적으로 약속될 필요가 있으며, 계속적인 수정과 보완을 통해 그 체계를 변혁해가야 한다. 한의학은 내경 시대부터 완전한 학 문이었으므로 수정 보완이 필요없다는 일부의 논리를 받아들이거나, 여러 민간의학회가 다른 학설을 주장하며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한의학을 서양과학과 다르지만 동등한 패러다임으로 격상시킬 수 없을 것이다.

연재 : 새로운 한의학상의 정립이 필요하다
(1) 패러다임론은 한의학을 변호할 수 있는가

“패러다임론은 한의학을 변호할 수 있는가”에 대한 4개의 댓글

  1. 좋은 공감가는 글 잘 읽었습니다. 한의대에 재학 중인 학생의 한 사람으로서 항상 의문을 가지고 생각해왔던 것을 시원하게 정리해주시는 글이군요. 특히 신비주의적인 면은 분명히 비판받아야 마땅한 것임에도 오히려 그것을 한의학에 대해 무지한 자로 몰아가는 풍조는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2.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현재 한의대생이구요. 저도 본초의 효능주치귀경 등을 보고 하면서 이것으로 과연 환자를 치료할 수 있을까? 너무 넓은 범위의 증상을 치료한다 말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좀 하다가 이론적으로 짜맞추려 하고 추상적이고 신비적으로만 얘기하는 현 한의학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니 정말 공감이 갑니다.

    p.s: 여쭙고 싶은 게 있는데 학회를 하신다면 어떤 학회에 몸담고 계신가요?

  3. 전한련 집행부 캠프에서 한 학우가 “한의학은 완학(完學)”이라는 발언을 하는 데서 쓰러졌습니다. 완학 따위의 말이 나와버리면 이건 학문이 아니라 종교죠……

    학회는 하고 있지 않습니다. 도제식 관계에 반감이 있기도 하고, 솔직히 말씀드려 “XX학회보다 XX학회가 낫다더라”는 식의 얘기는 “요즘에는 스키니보다 스트레이트가 대세더라”는 얘기랑 딱히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민간 학회는 약 5년을 주기로 유행이 바뀐다”는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관찰을 하는 중입니다.

  4. 죄송합니다만 저도 앞서 지적해 주신 이유로 한의학에 대해서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습니다.

    한의학이 만약 패러다임을 변화시킨다면, 그 양상은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에 의한 패러다임 변화보다는 ‘네트워크 복잡계 이론’에 의한 것과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은 뉴턴 역학이 근사 이론일 뿐이라는 것을 밝힌 것이고, 이것은 적용할 수 있는 상태의 범위가 더 넓어진, 다시 말해 좀 더 일반적인 이론으로의 변화입니다.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 사이의 모순이 아직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즉, 아직도 적용 불가능한 조건의 범위가 있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비선형 동역학, 카오스 이론, 네트워크 복잡계 이론 등에 의한 패러다임 변화는 입자들간의 상호작용과 네트워크를 통해 ‘창발’, ‘진화’ 등을 설명합니다. 이는 현상을 분석하는 시각의 변화에 의한 패러다임 전환입니다.

    제가 느끼는 한의학의 이미지는 (양)의학보다 인체의 네트워크 적인 측면을 강조한다는 것입니다. 의학이 직접적인 치료를 주로 하는 것에 비해서 말입니다. 한의학의 장점이라면 장점일 것입니다.

    한의학이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면, 말씀하신 대로 서양의학의 폐기가 아니라, 새로운 시각으로 불완전한 면을 보완하는 변화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상대성 이론’ 이든 ‘양자역학’이든 ‘복잡계 이론’이든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어났다 하더라도 그 변화를 분석하는 방법론은 거의 변화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건 틀이 바뀌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아니라, 그 틀 밑에 존재하는 방법론의 견고함인 것 같습니다.

    만약 한의학이 패러다임의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고, 양의학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중요한 건 그러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우월적인 측면이 아니라, 그 패러다임을 받쳐 주고 있는 방법론인 것 같습니다.

    방법론이 다른 두 학문 사이에서 패러다임 변화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즉, 패러다임의 변화를 만들어 낼지라도, 그것은 철저하게 같은 방법론 내에서야만 가능한 것이고, 한의학과 서양의학이 방법론 자체가 다르다면, 평행선만 이어질 것입니다.

    만약 서양의학이 한의학적인 지식들을 자신들의 방법론으로 분석한다면, 그 때 패러다임의 변화는 있을 수 있겠지요. 저는 한의학의 분석 방법론을 예인님 블로그에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한의학의 경우에도 가능할지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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