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의 의료개혁 전략 – 다시 의사와 이야기하라

예방의학에 대한 책을 읽거나 수업을 들은 많은 사람들은 한국의 의료보험 제도가 ‘이상할 정도로 잘 만들어져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의료기술의 수준에서는 미국 같은 나라보다 다소 뒤진다. 형평성의 문제에 있어서는 무려 무상의료를 실현하고 있다는 프랑스 등의 나라보다 다소 뒤진다. 그러나 효율성과 형평성의 미묘한 균형에 있어서는 정말이지 군계일학이다. 의료기술에 있어서도 선진국 수준이지만 형평성에 있어서도 무척 인상적이다.

어떻게 이렇게 훌륭한 의료보험 제도가 만들어질 수 있었는가? 여러 견해가 있지만, 많은 의사들은 이것이 ‘의사의 일방적인 희생을 담보로 한 것’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한다.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의 표현을 빌면 ‘박리다매 방식의 의료수가 구조’, 쉽게 얘기해 ‘낮은 의료수가’가 바로 그것이다. 의료수가가 낮은 것은 물론 이에 의사들이 묶이다보니 소신있는 진료가 어려워지고, 정당한 진료도 과잉 진료로 매도되는 경우가 생긴다.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서 원하는 일을 하기가 힘들다.

그러니만큼, 아마 의사 사회는 아마도 현행 의료보험 제도에 불만이 많을 것 같다. 의사 개개인의 생각은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의사 사회를 대표하는 의사협회장의 발언은 틀림없이 그렇다. 우안컨데, 이건 당연하다. 의사 뿐 아니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등 의료 관련 시민단체에서도 지적하고 있는 바, 이는 단순히 의사의 수입이 적어진다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의사의 부담을 과중시키고 의료서비스의 질을 낮출 뿐 아니라 의료의 구조마저도 왜곡한다. 현행 제도는 말하자면 ‘지금껏 그래왔던’ 관성에 힘입어 겨우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 의료 관련 단체의 지적이다.

한편, 좌파 역시 한국의 의료보험 제도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은 한국의 의료보험 제도에 아직도 형평성이 부족하다고 얘기한다. 문제는, 의료보험 제도에서 ‘더 큰 형평성’은 당연히 ‘더 많은 의료보험료’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고, 여기에서 조세저항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건 해결하기가 아주 힘든 난제이며, ‘형평성의 확대’가 탁상공론에 그칠 수밖에 없는 큰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나마 의사 사회도 이러한 ‘형평성의 확대’에 부정적이라면 이건 정말이지 더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우안컨데, ‘더 큰 형평성’은 직관적으로 생각했을 때 ‘의료보험 제도의 확대’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의사 사회는 이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좌파가 말하는 ‘형평성의 확대’ 전략은 의료 소비자들은 물론 의료인들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악수(惡手)로 전락하고 만다. 그런데 여기에 한 술 더 떠 몇몇 얼치기 좌파는 쁘띠부르주아에 대한 무작정적인 비토에 따라 의사사회에 대해서도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기까지 하니 – 이렇게 의료에 대한 좌파의 생각과 의사 사회의 생각은 서로 접점을 찾지 못한 채 평행선을 달리게 된다.

그러나, 의사 사회가 좌파 진영의 적이라는 생각은 도그마에 불과하다. 의사협회장의 발언을 들어보자. “젊은 의사들이 흉부외과 전문의 지원을 기피하는 풍토는 고위험 · 고난도 치료기술이 필요한 특성상 상당히 고가일 수밖에 없는 관련 치료 비용을 국가가 가격을 통제해 강제로 가격을 낮추는 바람에 빚어진 일”이라고 한다. 아주 맞는 이야기다. 그는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시장기능을 작동시켜 흉부외과의 가치에 맞는 보상이 이뤄지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한나라당의 방식이고 좌파가 싫어하는 방식이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의사 사회는 좌파의 적이 맞는 것 같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더 많은 보험 재정을 투입해 제대로 된 보상을” 하는 방안도 제시한다.

물론 의사협회장의 본심은 후자보다는 전자였을 것이다. 그동안 쌓인 불신이 있으니 두 집단이 쉽게 융화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의료보험 제도를 바꾸어 나간다는 것은 몇 년만에 될 일이 아니다. 그러니 의사와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큰 형평성’에 대하여 말이다. 혹여 좌파 정부가 들어서고 ‘더 큰 형평성’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는 날이 온다면, 모르긴 몰라도 그로 인해 가장 큰 혜택을 받을 사람들이 가장 극렬하게 반대할 것임에 틀림없다. 오바마의 의료개혁이 시작된 작금의 미국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나는 생각한다. 그 아이러니를 누가 극복할 수 있을까. 정부일까, 지식인들일까, 아니면 의사들일까. 조금 접근을 달리해 보자. 환자들을 살려내고 치료하며 정서적으로 가장 절실하게 교감하던 것은 과연 누구일까. 누가 그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지식인들일까, 아니면 의사들일까.

1줄 사족
저는 의사 아닙니다.

“좌파의 의료개혁 전략 – 다시 의사와 이야기하라”에 대한 4개의 댓글

  1. 핑백: tzara's me2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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