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NL VS PD
과거로부터, 한국의 사회운동권은 크게 두 개의 파벌로 갈라져 있었다. 민족해방(National Liberation, NL) 노선과 민중민주(People’s Democracy, PD) 노선이 그것으로, 두 노선은 소위 사회구성체논쟁(사구체논쟁)으로 차별화된다. 민족해방 노선은 미국/소련 등 서구사회 열강이 남북을 분단시켜 진정한 독립을 방해했다고 보았고, 따라서 독립운동의 정체성을 계승하고 자체적인 동력으로 통일을 이룩하며 서구사회의 부당한 간섭을 배제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반면 민중민주 계열은 한국 사회를 고도화된 자본주의 사회로 보았으며, 따라서 노동운동을 지원하고 자본가(부르주아지)에 대한 노동자(프롤레타리아트)의 상대적 승리를 지상목표로 생각했다. 노학자들은 민족해방 노선과 민중민주 노선의 투쟁사를 이렇게 정리한다.
민족해방 노선이 사실상 북한사회주의의 수입판이었다면, 민중민주계열은 사실상 소련사회주의의 수입판이었다. 미래에 사는 우리들이 보기에 이 두 가지 노선은 모두 기형적이다. 맑스가 설계하고 레닌이 실현시킨 현실사회에서의 유토피아는 결국 스탈린이라는 괴물과 파시즘에 버금가는 국가주의를 낳으며 완전한 실패로 돌아갔다. 북한사회주의는 70년대 박정희 시대를 지나며 점차 비효율성을 드러냈고 북한은 결국 김씨 일가의 봉건국가로 쇠퇴했다. 물론 정작 사회구성체논쟁과 민족해방-민중민주 계열의 대립이 격화되던 시기에는 이런 붕괴가 눈으로 보이지 않았기에, 당시의 사회운동가들이 이 두 가지 현실사회주의를 대안으로 모색했던 것 또한 정당하다고 할 수 있겠다. 어쨌든, 노학자들은 그들의 실패를 이렇게 진단한다.
문제는 현실사회주의의 붕괴 앞에서도 두 노선이 그 실패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문제는 민족해방 노선이었다. 사실 북한사회주의를 사실상 비판 없이 받아들인 그들의 노선은 근본적으로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북한사회주의가 붕괴한 것을 ‘미제의 간섭 때문’으로 규정해버린다. 자신들의 이념, 즉 반미주의에 모든 현상을 끼워맞추는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모든 문제를 미국제국의 오만과 독선 때문이라고 주장하다보니 이내 민족해방 노선은 억지스런 논리로 기워진 헝겊조각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더불어 ‘한민족’ 북한사회주의에 대한 그들의 짝사랑은 북한이 봉건국가로 쇠퇴한 후에도 계속되었다. 반봉건, 반식민지 운동이었던 민족해방 노선은 봉건국가 미국에 분노하면서 또다른 봉건국가인 북한을 신봉하는 사이비로 전락한 것이다. 그들의 교조적 믿음에는 주체사상파(주사파)라는 이름이 붙었다.
2. 현실정치의 시작, 민주노동당에서 진보신당으로
원래 민족해방 노선은 정당운동에 큰 관심이 없었다. 따라서 민주노총을 기반으로 한 민주노동당(전신은 국민승리21)이 만들어졌을 때만 해도 그 주류는 민중민주 노선이었다. 그러나 국민승리21이 현실정치에 진출하는데 성공하고, 이어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출하고 현실정치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하면서 그 현실적 영향력에 눈독을 들인 민족해방 노선이 당을 점령하기 시작한다. 원래 한총련을 앞세운 학생운동에서 민족해방 노선은 압도적인 다수파였으므로, 사실 이건 어린이 손목 비트는 것처럼 쉬운 일이었다. 그리고 2007년 대선 경선, 민족해방 노선은 권영길 후보에 압도적 지지를 보내 심상정과 노회찬 의원을 거꾸러뜨린 뒤 북한의 통일전략을 모사한 ‘코리아 연방 공화국’이라는 기이한 공약을 들고 나오기에 이른다. 현실정치에 주체사상파가 대두되는 순간이었다.
구세대의 민중민주 대 민족해방 노선전쟁은 새로운 시대에 발맞추어 평등파(민중민주) 대 자주파(민족해방) 노선전쟁이란 이름으로 새롭게 불붙었다. 사실 김규항 등 재야 지식인들은 2007년 대선 훨씬 이전부터 “민주노동당 내에 주사파가 있다”는 진실을 사람들에게 계속 일깨워왔으나 이미 좌파의 환상에 취한 대중들은 그 경고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좀 더 정확히 말해, 많은 좌파 지식인들이 “진보를 분열시켜선 안 된다”는 억지스런 논리로 주체사상파를 좌파 내부에 계속 안고 가려고 했고, 거기에 대중들이 호응했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코리아 연방 공화국’이라는 일대 사건이 발생하고 민주노동당이 시민들에게 외면당하게 되자 이에 진중권, 홍세화 등 대중 친화적인 지식인들이 나서 민주노동당의 분당을 강력히 요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결국 당내 평등파의 지주였던 심상정, 노회찬 등이 민주노동당을 탈당, 주체사상파로부터 자유로운 새로운 진보정당을 세우기에 이른다. 이것이 진보신당이다.
3. 실험은 계속되어야 한다, 진정한 좌파가 설 때까지

아직 좌파의 실험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긴 좌파의 역사를 통하여 자주파 노선이 주체사상파로 전락해버렸음을 알게 되었고, 북한사회주의를 모사하고자 하는 그들의 교조적 태도가 결코 한국 사회의 대안이 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미 정치실험으로서의 민주노동당은 실패했으나, 폐기되어야 할 민주노동당은 여전히 민주노총이라는 강력한 지지세력과 진보세력의 분열을 걱정하는 사민주의자들에 의해 그 끈질긴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이에 심상정과 노회찬을 주축으로 한 사회운동가들은 진보신당이라는 새로운 연구소를 세웠다. 그들이 어떤 미래를 보여줄지 나는 잘 모른다. 물론, 그들과 대립하던 민족해방 노선은 북한사회주의의 붕괴 앞에서 교조적인 주체사상파로 전락하며 무너졌다. 그러나 그것이 곧 민중민주 노선, 곧 평등파의 정당성을 확보해주지는 못한다. 심상정과 노회찬조차 원내 진입에 실패하며 속도가 늦어질 것 같긴 하지만, 그들의 실험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 끝나지 않은 민중민주 노선의 실험, 노동자를 위한 세상을 열고자 했던 그들의 진정성은 변질되지 않고 현실 정치에서 실현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인가? 한총련, 민주노동당 자주파…… 좌파의 탈을 뒤집어쓴 수구들, 소위 ‘수구좌파’들은 몰락했다. 진보신당이 그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진정 현실적 대안과 좌파의 진정성을 동시에 갖춘 진짜 좌파로 거듭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희망이 될 것이다.
서른살을 바라보도록 NL, PD 가 뭔지도 모르고 살았는데
덕분에 간략하게나마 정리가 되었습니다.
정말 대단하시네요 ^^
제가 공부하려고 정리한 거였습니다.
틀린 내용이 있었을까 두려울 뿐입니다 -_-;;;
사실 짧게 정리하느라 선후관계를 좀 뭉뚱그려놓은 부분이 가끔 있거든요.
흐음…
문제는 현실사회주의의 붕괴 앞에서도 두 노선이 그 실패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에 공감합니다.
휴우 요즘 머리가 아파오는 기사들이 난립하더군요 ㅠ
솔직히 NL-PD 논쟁이 쫌만 일찍 끝났어도 좌파가 훨씬 일찍 자리를 잡았을거란 생각이 들더군요. 어쨌든 지극히 비생산적인 논쟁이고 비생산적인 역삽니다. 그놈의 한총련 수구좌파들…… -_-;;
기실 코리아연방공화국과 대선에서의 지지율 획득 실패와는 별반 연관성이 없다고 보여집니다. 민노당 안에서의 권력쟁투에서 패배한 이른바 평등파가 당을 깨고 독자세력을 만들기 위한 명분에 불과했을 따름입니다. 그 작은 민노당 안에서도 권력획득에 실패한 평등파가 더욱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는 현실정치에서 자리를 차지한다? 꿈같은 얘기일 뿐입니다. 결국 민노당으로 기어 들어가게 될껄요.
게으른 패션좌파들은 좀더 현실에서 깨져야 합니다. 그리고 자주파 애들처럼 좀더 치열하게 살 필요가 있어요. 자주파 애들이 어떻게 민노당을 장악해갔는지 배워야 하고, 왜 현장에서 평등파보다 자주파가 더 먹히는지, 자주파 사람들이 더 평가받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게으른 평등파”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처절하게 반성해야 해요.
저는 민주당의 비판적 지지자긴 하지만(손학규와 박상천이 꺼져주길 간절히 소망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사실 좌파가 현실 정치에서 어떻게 되든 별 관심이 없어요.
다만, 저는 평등파의 미래는 밝다고 봅니다. 어차피 지금 좌파 지지세의 태반은 대학생들과 화이트컬러로 구성된 패션좌파고, 그들이 좋아하는 지식인들은 대부분 평등파를 지지하고 있어요. 뭐 문소리나 임순례같은 폴리테이너까지 포함해서요. 괜찮을 거라고 봐요.
그런데 사실 ‘자주파 애들처럼 치열하게 살아야 하고’ ‘자주파 애들처럼 당을 장악해야 한다’는 말씀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부분에서라면 친박연대가 킹왕짱이죠. 또 코리아연방공화국 공약이 권영길의 지지세를 깎아먹은 부분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것은, 그 코리아연방공화국 공약이 진짜 민노당이 집중해야 할 전선에 대한 집중도를 흐트려트렸다는 거죠. 코리아연방공화국 공약을 제외하고는 지난 대선에서 권영길이 내세운 공약 중에 기억에 남는 게 하나도 없는걸요.
몇일전에 이 블로그를 발견했습니다. 아직 만으로 20대 초반이신 예인님의
사회과학 지식이 남다름에 놀랐습니다. 게다가 전공과도 아주 거리가 먼데도 말이죠.
제가 이곳 블로그 포스트를 쭈욱 읽어봤는 데,
예인님은 스스로 우파 쪽이라고 밝히셨는 데,,
좌파의 역사나 좌파의 현재 흐름에 오히려 더 관심이 많으 신 것 같아요.
아마도 대한민국의 일그러진 사회정치판에서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우파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좌파 역시 탄생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으세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경제를 굴리는 기술은 확실히 우파가 우세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인권과 자유, 평등의 가치는 우파도 좌파도 반드시 지켜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경제를 제외한 그런 핵심적인 가치에서, 좌파는 정말 진정성있는 사람들이죠.
저는 좌파가 꿈꾸는 세상에 굳이 손을 보태고 싶지도 않고, 그런 세상이 정말 가능하다고 믿지도 않아요. 하지만 그 사람들이 꿈꾸는 세상이 정말 아름답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건전한 우파와 좌파가 의회를 나누어가지고 서로 건전한 정책 대결을 펼치는 게 좋아요. 노무현을 신자유주의자라고 욕하는 좌파도, 심상정을 입만 산 이상주의자라고 욕하는 우파도 없이, 시각과 가치의 차이를 인정하고 최선의 정책을 협의해나가는 그런 세상이….. 사상과 투쟁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진 우리 20대가 꿈꾸어야 할 진짜 민주주의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이거 써놓고 보니 건전가요 가사 같네요. ㅎㅎㅎ
글쎄요, 저도 NL에 대해서는 비호감이지만
NL이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가 오직 북한에서의 실패 경험때문이라고만 말하시는데 그 부분이 석연찮네요.
뭐 그걸로 끝은 아니겠죠. 하지만 뭐, NL이 왜 안되는가 하는 문제는 구글과 네이버가 저보다 훨씬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으니까요.
“진보신당이라는 연구소를 세웠다” 그래요 그들은 항상 연구만 해요…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고…. 진중권, 박노자, 홍세화…진보신당이 이들과 결별하지 않는 이상 그들은 계속 연구만 하게 될것이다.
연구도 안하고 정책을 내놓는 2MB보다는 훨씬 낫지 뭘 그래요. ㅎ
죄송하지만, 공부를 좀 더 하셔야 될 듯 해요~
NL-PD 논쟁에 대해 무엇을 읽고 어떻게 공부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쓰신 내용만 보면 겉핧기한 것으로밖에 안보이네요…
나름대로 보고들으신 것은 많은 것 같은데, 어째 짜집기한 것 같고, 글에서 진실함이 보이지 않습니다요~ –;
그럼 진실되게 한 수 가르쳐 주시는 것도 좋겠네요
님의 댓글도 별반 진실함은 보이지 않네요
겉핥기한 거 맞습니다. 사실 요즘 세상에 NL-PD에 대해 겉핥기 이상의 공부가 필요한가 싶은데요…. NL-PD는 좌파의 주류가 되기에는 너무 늙었고 고리타분하죠.
그래도 가르쳐주신다면 얼마든지 배워야지요. 가르쳐주실래요? ㅎㅎ
“저는 좌파가 꿈꾸는 세상에 굳이 손을 보태고 싶지도 않고, 그런 세상이 정말 가능하다고 믿지도 않아요. 하지만 그 사람들이 꿈꾸는 세상이 정말 아름답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뭔 헛소리..
철지난 글에 링크 따라 들어왔지만… 이런 용기없음에 어이없음까지
오지랍 넓은 이들이 너도나도 논평가로 등단하는 시대라는게 ‘인간극장’과 ‘결혼 했어요’의 심원한 차이마냥 ‘삶’과 ‘쇼’의 차이일진대 이제는 ‘쇼’가 ‘삶’이라고 우기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하기야 이명박이 사기쳐서 대통령이 된건아니고 민주적 선거로 대통령이 된게 우리에 현실이니 누구를 탓할것인가? 뽑아준 수준이나 뽑힌 수준이나… 우파가 꿈꾸는 세상이 더 아름답다는 자들이 뽑아준 거니 그 아름다움이 정말 가능한지는 믿음으로 기다려 볼 수 밖에…
엔엘이건 피디건 사회주의자들인데 이들의 세상봄이 님만 못하지는 않을진데 하수가 고수를 나무라는 어설픔이란.
그냥 저냥 세상을 사는 사람과 깨지면서 세상을 배우는 사람의 차이가 큼을 알려는지…
그리고 한수 가르치자면
인간에 대한 예의는 남의 인생을 평가하기 이전에 그들이 무엇엔가 목숨을 바쳤다면 그 가치가 무엇일까… 왜 그들은 그들이 살아생전에 실현되지 못하는 가치라는걸 알면서도 그를 위해 목숨을 걸었을까를 생각해야 기본이 아닌지
안중근이 활동하던 시절 일제의 국력이 최상을 달리던 시절 “그가 ‘꿈꾸는’세상은 아름다울뿐 그가 꿈꾸는 세상에 굳이 손을 보태고 싶지도 않고, 그런 세상이 정말 가능하다고 믿지도 않는다”는 그렇고 그런 소시민들이 많이 있었지요. 그들은 그리고 조용히 사라졌구…. 요즘으로 치면 사람은 가고 남는건 블로그?
내 관점의 한계와 내 미래의 한계는 동일한 표현임을 잊지마시길….
20대에 벌써 40대 50대나 가질법한 조로함을 보니 안타깝네요
잘 보고 갑니다. 수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