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092008
얼마 전부터 꽃미남 밴드가 유행이다. 물론 이런 개념이 요즘 갑자기 나온 것은 아니다. 예전 클릭비 같은 팀도 밴드 형태를 시도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의 나름 참신한 시도는 참담하게 실패하고 클릭비는 결국 평범한 댄스 팀으로 노선을 전환하게 된다. 꽃미남을 소비해야 할 여중생, 여고생들이 아직 기타니 베이스니 드럼을 들고 나오는 밴드 문화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게 통한다. 인터넷의 발달 덕택에 뮤즈(Muse)나 마이 케미컬 로맨스(My Chemical Romance) 같은 밴드들이 우리나라 여성들에게도 알려지고, 먹혀들면서 밴드 문화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이 높아진 덕분이다. 그러나 결국 그렇게 해서 탄생한 F.T. 아일랜드니 버즈니 하는 한국의 꽃미남 밴드들은’사랑앓이’나 ‘겁쟁이’ 같은 노래를 부른다. 이런 노래를 위해 밴드의 외형을 뒤집어쓰고 있을 이유는 없다. 밴드의 핵심인 보컬과 각 악기 사이의 견제와 균형을 이들로부터 찾아보는 건 <디 워>로부터 포스트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의 색채를 찾아보는 것만큼이나 무리다.
한편 2005년 영국, 이쪽에서는 음악계가 발칵 뒤집히는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이라기엔 좀 낯부끄럽고, 한 무명 밴드의 데모 음반이 인터넷을 떠돈 것이 그 시발이었다. 음질이 조잡할 뿐더러 앨범으로서의 완결성도 갖추지 못한 채 뒤죽박죽으로 조합되어 떠돈 이 음원들은 이내 영국 음악 마니아들의 귀를 확 사로잡았다. 그리고 그 인기를 몰아 2006년 출시된 그들의 첫 정규 앨범은 한 주만에 36만장을 팔아치우며 오아시스(Oasis)가 가지고 있던 최단 기간 최다 판매 기록을 갈아치우는 혁명을 일으킨다. 마이스페이스(MySpace – 싸이월드와 유사한 영미권 사이트)시대가 또 하나의 스타를 탄생시킨 것이다.
그들의 첫 앨범은 영국의 음악 잡지 <NME> 등에서 그 해 최고의 앨범으로 손꼽혔다. 생각을 해 보라. 2006년은 Yeah Yeah Yeahs의 혁명이 계속되었고, Muse가 그들의 디스코그라피 사상 최고의 역작을 선보였으며, Gnarls Barkley가 21세기 최고의 팝으로 일컬어지는 노래를 만들어낸 시기였다. Bob Dylan의 신작이 나왔고, Bruce Springsteen이 건재했고, Sonic Youth도 있었다. 이 모든 명반들을 물리치고 이 인터넷 시대의 스타가 그 까다롭다는 영국 평단으로부터 최고라는 찬사를 받은 것이다.
놀라운 것은, 그들이 기타를 퉁기며 밴드를 결성한 것이 2001년의 일이고, 인디 무대에서 첫 공연을 가진 것도 2003년 중순에 이르러서의 일이었다는 것이다. 이 인디 무대에서 그들이 팬들을 위해 나누어 준 데모 테이프가 인터넷에 올라오고, 반향을 일으키기까지 단 2년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기획사가 한 명의 연예인을 만들기까지 걸리는 시간보다도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거기에 더욱 놀라운 것은, 대부분의 작곡을 맡는 밴드의 중심 멤버이자, 보컬과 기타를 맡은 알렉스 터너(Alex Turner)가 당시 고작 스물 한 살 청년이었다는 사실이다.

NME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ARCTIC MONKEYS의 보컬 알렉스 터너(Alex Turner)
영국이 낳은 또 하나의 천재 밴드 아크틱 몽키스(Arctic Monkeys)의 등장은 이처럼 여러모로 남다르다. 그들은 인디로부터 올라와 평단의 열광을 얻은 전형적인 ‘뮤지션’형 밴드이지만, 마이스페이스(MySpace)가 탄생시킨 인터넷 시대의 아이콘이기도 하고, 시쳇말로 ‘열폭’을 자극하는 미디어 스타이기까지 하다. 그는 뛰어난 곡과 노랫말로 마니아들의 귀를 황홀하게 해 줌과 동시에, 뜬금없이 ‘가장 섹시한 엉덩이를 가진 스타’ 순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한다.
F.T. 아일랜드와 아크틱 몽키스 사이의 차이, 어쩌면 그것이 양국 대중의 대중음악을 듣는 문화 차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에는 기획사에 의해 강제로 끼워맞춰진 기형적인 엔터테인먼트가 있고, 영국에는 인디에서부터 새로운 패러다임을 들고 나와 뜬 뮤지션이 있다. 그 결과 한국에서는 오직 노래방에서 고함 대신 지르기 위해 만들어진 <사랑앓이>가 불러지는 반면, 영국에서는 그루브와 완급 조절이 예술적인 <Fluorescent Adolescent>가 불러지는 것이다.
물론 영미권이라고 해서 기획사에 의해 인위적으로 탄생하는 팝 밴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팀들조차도 밴드 음악다운 최소한의 틀은 잃지 않는 게 보통이다. 노래가 저질스러우면 보컬이 아무리 미남이더라도 성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좋은 예로, 여고생 코묻은 돈이나 뜯는다고 평가받던 마이 케미컬 로맨스(My Chemical Romance)는 지난 앨범 <The Black Parade>를 발표한 후 “<American Idiot>의 계보를 잇는 앨범”이라는 평가를 얻어냈다. <American Idiot>은 그래미에서 올해의 레코드 상을 거머쥔 역작이었다.
그럼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가? 단순히 F.T. 아일랜드가 아크틱 몽키스보다 열등하기 때문인가? 물론 F.T. 아일랜드의 역량이 아크틱 몽키스보다 못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리라.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F.T. 아일랜드 멤버 개개인이 밴드 음악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조차 없는 딴따라 지망생은 아닐 것이다. 그들에게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게 놔둔다면, 적어도 지금보단 훨씬 완성도 높은 밴드 음악이 나올 것임을 확신한다. 어쩌면 진짜 한국의 아크틱 몽키스가 될 지도 모른다.
사실 이건 시스템의 문제이고, 음악을 소비하는 청자들의 문제다. F.T. 아일랜드가 TV 라이브 무대에 서면 청자들은 헤어스타일이나 코디 따위의 문제에 주로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아크틱 몽키스가 TV 라이브 무대에 섰을 때 청자들은 사운드 세팅과 연주에 관심을 갖고 노래를 감상한다. 한쪽에서 보컬이 입고 나온 옷의 브랜드가 가십거리가 된다면, 한쪽에선 보컬이 들고 나온 팬더의 스트라토캐스터가 어떤 모델인지가 가십거리가 된다. 한쪽에서 보컬이 뮤직비디오에서 어떤 여자 연기자와 호흡을 맞추었는지가 얘깃거리가 된다면, 한쪽에선 보컬이 글래스톤베리에서 헤드라이너를 맡을 수 있을 것인가가 얘깃거리가 된다.
이것은 슬프게도 극복 불가능한 문제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런 문제는 그저 문화의 차이이자, 취향의 문제로 치환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뛰어난 음악인이 먹고 살 길이 막막해 웹 디자이너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분개하던 한 좌파 선생조차 “대중들이 문화를 즐길 줄 모른다”는 얘기가 나오면 이 모든 것들을 취향의 문제로 돌려버리곤 했다. 대중에게 칼을 돌리는 것은 곧 시스템의 뿌리에 적의를 표하는, 우파도 좌파도 꺼리는 금기이기 때문이다. 이래서는 한국의 아크틱 몽키스는 절대 못 나온다. 그러니 한국 음악계가 망하든 말든 영미권 음반이나 사 주자. 알 게 뭔가, 위대한 자유무역의 시대 아닌가.
상당히 좋은 글이군요 이거.
arctic monkeys 이야기여서 반가운 맘에 흔적 남기고 갑니다.. 시스템 문제는 잘 모르겠으나… 일단 토양이 틀린 탓이겠죠. 쉬운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 예인님 포스트에서 “꽃미남 밴드”라는 용어를 봤다. 참 낯선 용어다. 더 놀라운 것은 내가 꽤 좋아하는 밴드인 ‘My Chemical Romance’를 “꽃미남 밴드”로 묘사하셨다는 점. 사실 나는 좋아하는 노래나 밴드가 있어도 구체적인 사생활까지 관심을 갖는 편이 아니다. 그냥 노래만 듣는다. 예를 들면 Suede나 Oasis를 매우 좋아하고 노래도 많이 듣지만 멤버 이름도 잘 모르고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더더욱 모른다. 그쪽에는 관심이..
악틱 몽키즈 정말 최고죠! 저도 2006년에 그들의 존재를 제가 구독하는 잡지에서 알게된후 포스터마저 방에 붙여두고 지금도 틈틈히 듣죠.
모든 곡들이 다 좋지만 특히 , mardy bum이라는 곡을 참 좋아합니다.
좋은 글 읽고 갑니다. 꽤 오랫동안 언급되어오던 한국의 음악계, 혹은 대중문화가 가지는 문제에 대해서 알기쉽게 써 놓으셔서 쉽게 읽었습니다. 이제는 이런 논쟁따위가 자리잡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살아온 날들이 7-8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제자리 걸음인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군요. 그래도 언젠가는 개선되겠지요. 희망마저 잘라버린다면 너무나 슬프니까요. ㅎㅎ
아 너무 슬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