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중독의 질병화, 그렇게 단순한 문제는 아닙니다

1.

예상대로 WHO가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를 정신과 질환으로 분류하는 안건을 통과시켰습니다. 물론 이것이 게임이 곧 질병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게임에 지나치게 몰입해 일상생활이 파괴되는 경우만을 질병으로 지칭하는 것이죠. 새 진단 기준(ICD-11)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경우 게임이용장애 진단이 가능합니다.

게임이용장애는 온라인 및 오프라인상의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게임(디지털 게임 또는 비디오 게임) 이용 패턴으로 정의되며, 다음과 같이 나타납니다:

  1. 게임 이용을 제어하지 못함 (시작, 빈도, 강도, 지속 시간, 종료, 맥락 등)
  2. 게임을 다른 삶의 이익과 일상 생활보다 중시할 정도로 게임에 높은 우선 순위를 부여함
  3. 게임이 부정적인 결과를 발생시킴에도 게임을 지속하거나 늘림. 이런 행동 패턴은 개인, 가족, 사회, 교육,  직업, 기타 중요한 기능 영역에서 심각한 장애를 유발할 정도로 심각해야 함.

게임 행동의 패턴은 지속적이거나, 삽화적이거나, 재발될 수 있습니다. 위와 같은 게임 행동 및 기타 특성이 일반적으로 최소한 12개월 이상 분명하게 나타날 때 게임이용장애로 진단할 수 있습니다. 모든 진단 요구 사항이 충족되고 증상이 심각할 경우 이 기간은 단축될 수 있습니다.

2.

“게임중독이 질병이면 그걸로 병가낼 수 있냐” 같은 얘기는 그래서 말이 안 되는 것이죠. 진단기준에 따르면, 병가를 낼 정도면 이미 일상생활이 파탄이 난 상태일테니까요.

일상생활이 파탄날 정도로 게임 과몰입이 심각할 때만 게임이용장애로 진단한다는데, 그럼 평범한 게이머들에게는 아무 문제도 없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도 왜 게임계는 – 산업, 문화, 사회과학, 그리고 게이머를 망라하여 – 이렇게 반발하는 것일까요?

사실 그렇게 단순한 문제는 아닙니다. 게임이용장애는 ‘중독적 행동에 따른 장애’ 중 하나로 분류되어 있는데, ‘중독적 행동에 따른 장애’로 분류되는 질환이 딱 두 개 뿐이거든요. 게임은 단 두 개 뿐인 중독을 일으키는 비물질적 요소 중 하나인 거죠. 그리고 또 하나는… 도박입니다.

그러니까 반대편에서, “일상생활이 망가질 정도면 당연히 질병 아닌가?” 라고 되묻는 것도 사실 적절한 질문은 아닌 것이죠. 소위 ‘중독’으로 불리는 다양한 행동 양상, 쇼핑 중독이라든가 드라마 중독이라든가 하는 것들은 일상생활이 파탄나는 지경에 이르더라도 그 자체가 질병으로 정의되진 않습니다. 하지만 게임은 그렇죠. 말하자면 이건, 게임은 도박과 더불어 유이하게 그 자체로서 질병의 근원이라는 선언인 겁니다.

3.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러 논점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금단현상과 내성의 유무로서, 이를 만족하지 못하는 게임 중독은 중독 증상이라 할 수 없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반면 게임이 주는 즉각적 보상과 만족감이 이용자의 통제력을 상실케 할 수 있다며, 이를 질병으로 지정해 관리할 필요성이 충분하다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게임 중독의 질병화에 상당히 큰 역할을 한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입니다. 한국에서 게임 과몰입 환자(?)를 진료한 임상 사례가 국제적으로 많이 공유되었고요. 실제로 미국 정신의학회에서는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볼 것인지 연구가 아직 미진하다면서도 이미 게임 중독 치료에 나선 국가로 한국과 중국을 들고 있습니다. 게이머 커뮤니티에서 도는 음모론들 중, 한국이 게임 중독의 질병화에 꽤 앞장선 국가란 것은 의외로 꽤 사실과 부합하는 셈이죠.

미국정신의학회의 입장에서 볼 수 있듯, 게임 중독의 질병화는 여전히 논쟁적인 주제입니다. 일각에서는 게임 이용과 중독성 물질 이용의 뇌 활동 변화가 유사하다는 점 등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사실 뚜렷한 결론을 낼 만큼 연구의 질이 충분히 담보되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횡적 연구만 있을 뿐, 추적관찰 등 종적 연구가 거의 없다는 점은 특히 큰 문제로 지적됩니다.

게임중독은 질병인가? 질병이라면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가? 사실 게임 과몰입에 대한 연구 자체가 초보 걸음인 만큼 그 치료에 대한 연구 또한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게임 과몰입이 우울증, 불안장애, 강박증, ADHD 등 다른 질환과 지나치게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점도 지적됩니다. 다시 말해 게임 과몰입이란 그 자체로서 질병이 아니라, 다만 우울증, 불안장애 등 다른 정신과 질환의 한 증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4.

게이머 2천 명을 대상으로 5년 동안 이뤄진 정의진 교수 팀의 추적 관찰에서는, 게임 과몰입으로 평가된 청소년의 60%가 아무 조치 없이도 1년 내에 과몰입에서 빠져나온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 다음 해에도 또 나머지의 60%가 과몰입에서 빠져나왔고요.

또한 게임 과몰입을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게임 시간이 아니라 스트레스 요인, 즉 학업 스트레스로 인한 자기 통제력 상실이었고요. 또한 부모의 감독이 높고 커뮤니케이션이 많은 쪽은 증상이 좋아졌지만 부모의 기대와 간섭이 높은 쪽은 증상이 악화되는 경향을 보였으며, 그 외에도 교사의 지지 등이 중요한 요인으로 분석되었습니다.

이 연구가 게임 중독 논의의 바이블이 될 순 없겠지만, 몇 가지 함의하는 바가 있습니다. 많은 사회과학자들의 지적처럼, 게임 과몰입은 그 자체로서 질병이 아니라 다른 사회 병리가 반영되어 나타나는 하나의 현상이라는 것. 설령 어떤 청소년의 게임 과몰입이 심각한 수준으로 보인다 해도 이는 게임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나 교사, 친구 등과의 커뮤니케이션 부재, 특히 부모가 적절한 관리 감독을 넘어 지나치게 자녀의 삶에 간섭하고 기대할 때 발생하는 하나의 증상일 수 있다는 것이죠.

5.

또 한 가지 우려는, ‘만들어진 병상은 채워진다’는 유명한 예방의학계의 격언처럼, 이것이 하나의 ‘시장’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 게임 중독 치료하고 내신 등급 올리기! 뭐 이런 것들. 특히 게임 중독은 그 원인이나 병리, 그리고 치료 방법 등에 대한 합의가 제대로 없는 상태니까요.

사실 의료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수많은 ‘사짜’까지 튀어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고요. 사실 게임 중독이 질병이라는 관점을 채택한다 해도, 게임 이용 인구의 99.5%는 게임 중독에 해당하지 않으며, 게임 중독에 해당하는 0.5%의 인구 중에서도 대부분은 지역 사회의 상담 등으로 증상 개선이 가능한 경우임을 생각해보면… 사실 과잉 진료가 우려되는 게 사실이죠. 특히 WHO의 진단 기준은 그다지 엄밀한 용어로 되어 있진 않아서요.

사회적인 ‘낙인 찍기’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미 셧다운제로 증명(?)해보이기도 했고, 우리 사회의 인식 수준은 ‘게임은 병균이다’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게임 중독의 질병화는 이런 인식에 완전히 도장을 찍는 일일 수 있죠. WHO의 진단 기준에 따르면 게임 중독이란 의학적으로 일상 생활이 파탄날 정도의 행동 양상이 어쩌고 저쩌고 아무리 해 봤자… 사실 ‘게임 중독은 질병이다’라는 단순하고 힘있는 한 문장의 힘에 이슈가 잡아먹히는 걸 막을 수 있을까요?

게임계의 우려가 기우만은 아닐 거예요. 이스 이터널이 동생을 죽인 원인이라던 그 많은 언론 보도를 보면, PC방의 두꺼비집을 내려놓고 게임이 폭력성을 불러일으켰다 말하던 그 놀라운 실험을 보면. 우리 사회에는 책임을 지울 무언가가 필요하고, 게임은 무척 손쉽게 그 불명예를 지울 대상이었죠. 뭐, 지금까지도 게임은 늘 병균 취급을 받아왔는데, 뭐 질병이 된다고 세상이 얼마나 변하겠나 싶은 일종의 위악적인 체념도 들긴 하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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