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용 씨의 젠더 문제 인식은 잘못되었습니다

1.

전우용 씨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현 정부가 들어선 뒤 (젠더) 문제와 관련해 새로운 법률이나 제도가 생긴 것도 아니고, (중략) 사실 이제는 법제화할 것도 거의 없습니다”.

“일각에서 법제화를 요구하는 것들이 있기는 하나, ‘무죄 추정의 원칙’을 폐기해야 하는 등 대개 근대법의 기본 원칙에 위반되는 것들이라 실현 가능성은 극히 낮습니다.”

출처: 전우용의 페이스북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법과 제도가 여성을 ‘일부러’ 차별하는 바는 없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아직 아버지의 성을 따르도록 하는 민법 등이 남아있긴 하지만… 대체로 사실이라고 봐도 될 겁니다.

2.

그러나 법제화할 것이 거의 없다는 주장은 이상합니다. 당장 성범죄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무죄 추정의 원칙’을 폐기해야 한다는 말씀에서 미루어 짐작해 볼 때, 그가 말하는 ‘일각에서 법제화를 요구하는 것’이란 아마 비동의간음죄를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비동의간음죄에 대해서는 저도 생각이 비슷합니다. “동의 없는 성행위는 강간”이라는 명제는 부인할 수 없는 참이지만, 그걸 법제화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비동의’를 형사절차에서 증명할 방법이 없고, 따라서 무죄추정원칙을 폐기하지 않는 한 이걸 형사처분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폭행, 협박의 의미를 얼마나 넓게 볼 것인지, 위력, 위계에 의한 경우 등 비동의가 분명한 상황에서의 성폭력을 어떻게 처벌할 것인지 등 여전히 이야기할 것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안희정 사건과 같은 예가 있겠죠.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할 부분이고요.

또한 최근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 불법촬영물(리벤지 포르노)의 단속 및 처벌에 있어서도 여전히 우리 법제도는 헛점을 노출하고 있습니다. 스토킹, 협박, 기타 성폭력에 대한 단속과 처벌도 모자람이 있고, 피해자 보호 대책도 크게 부족합니다. 법제화할 것이 이제 거의 없다는 말은 분명 어폐가 있습니다.

3.

여성의 경제활동은 M자 커브를 그린다고 합니다. 20대에 정점을 찍고 30대에 하락세를 보였다가, 40대에 다시 높아지는 형태죠.

가장 큰 이유는 결혼 및 출산으로 인해 30대 이후 경력이 단절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경력이 단절되면 40대 이후 다시 취업시장에 뛰어들더라도 자신의 전문분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비숙련직, 상대적으로 급여가 낮은 분야로 빠지게 되죠. 이것이 남녀 임금격차의 아주 큰 원인 중 하나라고 합니다.

물론 한국의 법제도에 “여성은 30대에는 일을 하지 말고 아이를 낳으시오”라고 써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를 낳고도 커리어를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육아휴직 제도도 조문상으로는 잘 마련되어 있고요…

그런데 그게 실제로 작동하진 않습니다. 이걸 어떻게 작동시킬 것인지, 그런 부분에서 법제도의 정비가 더 필요한 겁니다. 육아휴직을 어떻게 강제할 건지, 기업이 육아휴직 문제로 인해 여성 고용을 아예 회피해버리면 그 문제는 또 어떻게 해결할 건지. 기업에 어떤 유인을 줄 것인지.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사립유치원 문제 같은 것도 같은 맥락이죠. 영유아 교육을 국가가 얼마나 책임질 수 있을 것인지, 영유아 교육을 위한 공립시설이 얼마나 확충되어야 할 것인지… 이런게 다 법제도의 문제입니다. 명문화할 수 있는 것이고요, 국회에서 만들고 통과해야 하는 문제들이란 말이지요.

4.

결코 충분하지 않습니다. 더 많은 법과 제도가 있어야 합니다.

오히려 제가 궁금한 건 이런 겁니다. 실질적인 변화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 이런 변화에 성대결적인 구도가 필요한가? 성대결 구도가 실질적인 변화를 더 어렵게 만들 수 있진 않은가?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강한 백래시에 부딪친 것처럼.)

제가 답을 내려선 안 될 문제겠죠. 걱정되는 건 전우용 씨의 견해가 많은 남성들에게 정답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세태입니다. 나아갈 길은 아직도 멉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