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 없는 성범죄에서 일관된 진술의 증거능력을 인정하는 데 대해

1.

다른 범죄와 달리, 성범죄엔 증거가 남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적 접촉이란 보통 내밀한 공간에서 이뤄지는데다가, 사실 성적 접촉 자체는 전혀 범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적 접촉이 있었는지를 증명하는 것도 어렵거니와, 그 성적 접촉이 거부 의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뤄졌는지를 증명하는 것도 아주 어렵습니다.

그래서 많은 성범죄는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을 증거로 채택합니다. 실제 있었던 사실을 증언한다면 진술이 일관될 수 있겠지만, 꾸며낸 사실을 증언한다면 진술이 중언부언하고 예상 밖의 허를 찔리면 당황하게 될 거라는… 뭐 그런 직관적인 까닭 때문이겠습니다.

하지만 사실 일관된 진술이 곧 신빙성 있는 진술인지에 대해선 의문부호가 찍힙니다. 인간의 기억이란 그리 믿을만한 것이 아니니까요. 사소한 사실관계가 틀려나가는 건 보통이고 아예 없던 사건을 창조해내기도 하죠. 이런 잘못된 기억, 거짓 기억은 심리학에서 오랫동안 다루어온 단골 주제이기도 합니다.

2.

1980~9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기억회복 운동’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많은 여성들이 심리치료를 받던 중, 유년기에 부모나 친척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습니다. 그들은 늦게나마 한때 부모였고 친척이었던 이 가해자들을 고소했죠.

심지어 에일린 프랭클린이란 여성은 자신의 아버지가 어릴 적 자신의 친구를 살해했을 뿐 아니라, 그 외에도 강간 살인을 저질렀음을 ‘기억’해냅니다. 아버지 프랭클린은 고소당했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하지만 반전이 있었습니다. 훗날 DNA 검사가 이루어지면서 아버지 프랭클린의 결백이 증명된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그녀들은 심리치료 과정 중 기억을 ‘회복’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심리치료 과정 중 치료사의 암시를 통해 기억을 ‘주입’ 당한 것이었죠. 그 기억들은 만들어진 가짜 기억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10년, 20년, 30년을 복역한 사람들이 뒤늦게 이뤄진 DNA 검사를 통해 무고함을 증명받기도 했습니다. 그중 상당수가 거짓 기억에 의한 증언 때문에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엘리자베스 F. 로프터스의 연구는 굉장한 논란을 낳았죠.

3.

조작된 진술이라고 해서 일관성이 없을 것이라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만들어진 기억이 많은 사람들을 감옥으로 보내버렸던 것처럼, 잘 짜여진다면 얼마든지 일관성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전후 정황이 단순하다면 더욱 그렇겠지요.

이건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일관되지 않은 진술이라 해서 그게 거짓말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인간의 기억은 이처럼 불완전하며, 선택적이고, 때로는 사실을 왜곡해서 저장하니까요. 정말 중요한 부분이 기억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화창한 낮이 비바람이 몰아치는 밤으로 기억될 수도 있고, 빨간 색 옷이 파란 색 옷으로 기억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두 눈으로 본 범인의 얼굴조차 잘못 기억할 수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짓말을 그렇게 잘 하지 못합니다. 없던 기억을 조작해 끼워넣는 경우도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형사처분은 그렇게 ‘대부분의 선의’를 믿고 이뤄져서는 안 됩니다.

4.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을 핵심 증거로 삼아 판결을 내리는 것은 위험합니다. 기억은 불완전하고 때로 조작됩니다. 거짓말이라 해서 일관성이 없는 게 아닙니다. 참말이라고 해서 반드시 일관성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법관들도 기억은 불완전하고, 진술의 일관성이 곧 신빙성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저보다 훨씬 훌륭하고 공부도 많이 하시는 분들인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이 이처럼 중요한 잣대가 된 까닭은… 아주 많은 성범죄가, 그것 말고는 증거로 삼을 게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죄추정이라는 형사처분의 대원칙을 지키려면 수많은 성범죄가 법망을 피해 빠져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성범죄가 얼마나 심각한지,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 성범죄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분명 엄한 처벌이 필요합니다. 사회적인 분위기도 점점 성범죄에 강한 단속, 엄한 처벌을 요구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결국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이 이렇게 중요해진 까닭은… 그게 정말 흔들리지 않는 증거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래야만 하는 정치적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증거 없는 범죄를 어떻게든 심판은 해야 하니까. 피해자의 진술을 증거로 인정하지 않게 되면, 그 많은 범죄자를 심판할 수 있는 방법이 사라져 버리니까.

5.

몇 년 된 기사이긴 합니다만, 경향의 기사에서 한 판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우리 성폭력 전담 판사들은 어떻게 보면 형사소송법을 어기고 있다”고요. 무죄 추정의 원칙을 사실상 지킬 수가 없다는 겁니다.

피해자중심주의가 유죄추정원칙으로 흐르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럼 수많은 성범죄자가, 증거 없는 범죄의 그 수많은 가해자들이 아무 죄값도 치르지 않고 빠져나오게 될 겁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실 답이 없는 문제입니다.

판사의 재량을 가급적 크게 인정하고, 증거가 없다면 그 또한 양형에 반영하는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증거의 유무가 범죄의 중대성을 결정하는 것도 아닌지라,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형사처분 대신 민사소송의 역할을 더 크게 늘릴 수도 있겠지요. 형사처분보다는 그나마 낙인효과가 덜할 테니까요. 하지만 어차피 성범죄는 추문입니다. 사회적 평판이 땅에 떨어지는 걸 어찌 할 수가 없습니다.

이야기를 쭉 풀어보았습니다만, 암만 풀어봤자… 참 어려운 이야기란 결론밖에 나오질 않네요. 증거 없는 범죄, 사람들은 그걸 종종 완전범죄라고 부르죠. 인간의 양심에 기대지 않고서는 밝혀낼 수 없는 범죄. 이것이 성범죄의 태생적인 한계일 수밖에 없을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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