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표는 무통주사 논란에 대해 제대로 해명하지 않았습니다

1.

발단은 뉴스앤조이의 기사였습니다.

이영표 “창세기 읽고 아내 출산 때 무통 주사 거부”

창세기를 보고 출산시 무통주사를 거부했다? 동성애를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를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위험하다? 그야말로 혐오발언의 결정체였죠. 무통주사 얘기는 심지어 종교적으로도 위험해 보입니다.

저는 이영표의 이 발언을 보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영표가 나오는 방송이나 컨텐츠를 소비하지 않는 것은 물론, 그가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더 나아가 진지하게 방송에서 퇴출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신념에 따라 저런 발언을 할 자유가 없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 발언이 약자와 소수자를 핍박하는 것임을 생각해보면, 전파를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부지불식간에 이런 자의 목소리가 ‘던져지는’ 것은 당연히 막아야 합니다. 자칭 ‘믿는 사람’들끼리 놀란 말이죠.

2.

이에 대해, 이영표는 본인의 페이스북에서 해명(?)을 했습니다.

이영표의 페이스북

이 해명글은 ‘잘 썼다’ ‘몰랐던 사정을 알게 해 줬다’는 감상과 함께 공유되었는데요. 이를 보며 저는 좀 소름이 끼쳤습니다.

우선, 뉴스앤조이가 인용한 문제의 구절을 봅시다.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을 주신 것과 남자에게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 수 있다고 하신 창세기 3장 16절을 찾아 읽었고, 주님께서 주신 해산의 고통이라면 피하지 말자 이야기했다.”

“말씀에 따라 살려는 노력은 힘들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런 노력을 통해 느껴지는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아내와 나는 앞으로도 쉽게 사는 방법과 말씀대로 사는 방법 사이에서 고민할 것이다.”

이영표의 해명글에 이 문제의 구절에 대한 해명이 있나요? 없어요. 이영표가 종교적 신념을 아내의 출산 과정에 개입시켰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해명글이 암시하듯 진짜 그게 아내의 순전히 주체적인 결정이었다면 저 책 내용은 뻥이어야 해요.

또 저 구절에 따르면 이영표는 결국 무통주사를 맞는 출산은 쉽게 사는 방법이고, 무통주사를 안 맞는 출산은 말씀대로 사는 방법이라고 주장한 건데요. 아주 나쁜 주장이죠. 종교적으로도 위험하고요. 이영표 아내의 출산이 주체적인 결정이었고, 이영표와의 의사소통도 동등하고 평등하며 그 어떤 심리적 압박도 없었다 하더라도… 그 위험한 의견을 책이라는 형태로 대중에 펴내는 건 좀 많이 다른 이야기거든요.

3.

좀 더 나아가서는,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특정 의료행위를 거부하는 행위가 정말 개인의 자유의사에 따른 주체적인 행위가 될 수 있는지도 생각해봐야 해요. 이것과는 문제의 층위가 – 특히 위험성 측면에서 – 좀 다르지만, 한 종교집단의 수혈 거부 같은 걸 생각해보세요. 그들의 수혈거부를 정말 개개인의 주체적인 행위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선 동아사이언스에 실린 심리학자 지뇽뇽 님의 글을 한 번 읽어보죠. 이 글은 왜 사람은 사이비종교에 빠지는지에 대한 글이지만, 사실 사이비종교 뿐 아니라 모든 종교에 적용되는 이야기이기도 해요. http://soda.donga.com/3/all/37/777590/1

이 글을 대강 제 멋대로의 해석을 섞어서 요약하자면 이래요.

3-1.

종교인들은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소속감을 느끼죠. 집단생활을 하고, 같이 예배를 드리고 노래를 부르는 등의 의식을 통해 집단으로서 더 강하게 결속돼요. 개인은 이렇게 강하게 결속된 집단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요.

하물며 종교는 신을 얘기하고, 내 존재의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죠. 그건 나의 자아, 정체성 중에서도 가장 깊고 본질적인 부분을 형성하는 거예요. 따라서 이미 종교에 귀의한 사람이 종교 집단을 따르지 않는다는 건 나의 정체성, 본질을 도려내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어버리죠.

게다가 종교는 강력한 원칙을 갖고 있어요. 이건 경전과 같은 형태로 이미 존재하고 있어서, 토론이나 비판이 필요하지 않아요. 그냥 따라야 하는 것이죠. 안 그래도 집단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진 사람들은 이 권위에도 맹목적으로 복종하게 돼요.

그러다보면, 이러한 종교의 원칙에 충실한 ‘우리’와 그렇지 않은 ‘그들’을 분리해서 보게 되고, ‘그들’을 적대시하고 공격하기까지 한다고 해요.

이거, 사이비종교만의 이야기는 아니에요. 오히려 정상 종교에서도 정말 자주 보이는 현상이죠. 예를 들어, 개신교를 볼까요? 그들은 높은 비율로 강력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목사의 권위에 비정상적으로 복종하죠. 이단 논쟁도 그 어디보다 거세고, 사회적으로는 성소수자 등을 적으로 규정하고 강한 공격성을 보이기까지 해요.

종교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에요. 강한 소속감을 제공하고 행복을 주기도 하죠. 종교가 도덕적인 원칙에 충실하면 그 어디보다 모범적인 커뮤니티가 될 수 있고, 그 개개인도 정말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어요. 그럼으로서 종교가 말하는 구원에 비로소 가까워질 수 있겠죠.

그러나 위험성을 늘 경계해야 하죠. 뭐가 하나같이 너무 강해요. 소속감이 너무 강해서 개인이 돌출행동을 할 수가 없고, 목회자의 권위가 너무 강해서 이를 비판하거나 토론할 수가 없죠. 설령 종교가 위험한 주장을 한다 해도 이를 주체적으로 거부하기가 쉽지 않아요.

3-2.

의료행위의 경우 위험성이 더 커지는 이유가, 의료행위는 정보비대칭이 아주 심하기 때문이에요. 이 증상은 왜 나타나는가부터 시작해서 여기엔 어떤 치료가 적절한가, 이 치료에 따른 반응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비의료인이 알기가 너무 어려워요.

이건 의료행위가 전문성을 요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풋과 아웃풋이 그리 직관적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해요. 예를 들어 컴퓨터 프로그래밍은 그 과정이 아무리 복잡해도, 컴퓨터 프로그램을 쓰는 우리가 그 과정을 모두 알 필요가 없단 말이에요. 이런 인풋을 넣으면 이런 아웃풋이 나온다는 것만 알면 돼요. 그것만 확인하면 이 프로그램이 어떤 프로그램인지 비전문가도 충분히 알 수 있죠. 몬스터 헌터: 월드가 재밌는 게임인지 재미없는 게임인지 뭐 꼭 프로그램을 할 줄 알아야 아나요 네르기간테 개객기 ㅠㅠ

그런데 의료행위는 그게 안 돼요. 심지어 수준급의 의사조차 이 인풋을 넣었을 때 이 아웃풋이 나올 거라고 확신을 할 수 없는 게 의료행위란 말이죠. 그러니 사짜가 횡행하기 더 쉬워요. 사짜는 아주 직관적으로 설명하거든요. “약을 먹으면 내성이 생겨서 나중에 큰일이 난다! 약을 안 쓰고 아이를 키우면 면역력이 강해져서 건강해진다!”

그러다보니 많은 경우, 의료는 의료소비자의 ‘주체성’을 가끔 부정하기도 해요. 법적으로는 인간의 ‘생명권’이 그 어떤 권리보다도 우선한다는 논리를 내세우죠. 종교의 자유나 양심의 자유도 물론 소중하지만, 생명권을 침탈하는 수준에서는 행사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에요.

무통주사를 종교적 신념에 따라 거부하는 게 정말 다른 사람의 압력과 전혀 상관없는, 자기 자신의 주체적 선택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종교는 맹목적이고 개인의 일탈을 용납하지 않아요. 의료행위는 소비자가 100% 짜리 주체적인 판단을 내리기에는 복잡하고 예측 불가하고요. 종교의 맹목성과 의료행위의 정보비대칭성이 결합하면 정말 끔찍한 혼종이 탄생하죠.

4.

뉴스앤조이의 기사가 정말 왜곡이라면 이상의 내용에 대해 해명을 했어야죠. 하지만 이영표는 첫째는 어떻게 낳았고 둘째는 어떻게 낳았고 셋째는 반말을 하고(…) 따위의 변죽만 울리다 해명을 마무리했을 뿐이에요.

그리고 이영표 씨는 동성애가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라는 사람들이야말로 위험한 사람들이고, 그거 때문에 세상이 혼란스럽고, 동성애는 죄라고 분명히 말해야 한다고도 하셨는데요. 굳이 해명할 필요성을 못 느끼셨겠죠? 그건 결코 흔들리지 않을 신념이실테니까요. 이 또한, 이영표 씨가 공론의 무대에서 퇴출되어야 할 이유죠. 명백한 차별주의자, 혐오발언자의 발언이니까요. 그런 사람의 가식적인 웃음을 보고 싶진 않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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