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와 형사처벌의 딜레마

1.

성범죄에 대해 마땅히 새겨야 할 강령들이 있습니다.

동의 없는 성행위는 강간입니다.
어떤 관계에서는, 원치 않는 성적 접촉도 명시적으로 거절 의사를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사회적인 인식, 불명확한 증거 등 여러 요인 때문에, 성범죄를 신고하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성범죄는 가해자가 그것을 범죄로 인식했느냐가 아니라, 피해자가 그것을 어떻게 느꼈는지로 판단해야 합니다.

그런데 최근 어떤 사람들은 이런 당연한 이야기에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 반감은 이 이야기들이 형사처벌의 영역에 발을 들이며 더욱 거세게 터져나옵니다. 최근에는 성추행으로 징역 6월을 선고받은 남자의 아내가 쓴 청와대 청원이 순식간에 서명 20만을 돌파하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 성은 보통 내밀한 개인 대 개인의 영역입니다. 이는 성범죄가 증거는 물론 증인조차 존재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성행위 자체는 범죄가 아님은 물론이고 아름답고 즐거운 일입니다. 이는 성행위가 있었음을 증명하거나 자백했다 하더라도, 이것이 곧 범죄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위의 당연한 강령들은 형사처벌의 영역에 발을 들이면 이런 문제가 발생합니다.

2.

우선, 성적 접촉이 있었는지를 증명하는 것부터 어렵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비동의’를 증명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계약서를 썼거나, 성행위 이후 가해자 측에서 정황을 명백히 기록한 반성문이라도 쓰지 않은 이상, 법정에서 이를 명백히 증명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동의와 비동의란 사실 문화적인 개념이기도 합니다. 침대 위에서 행위 하나하나마다 허락을 구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동의’란 보통 비언어적인 제스쳐, 눈빛, 분위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때로는, 언어로는 비동의하지만 제스쳐와 분위기로는 동의하는 종류의 성행위도 있습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정상적인 센스를 갖춘 성인이라면 그 ‘동의’와 ‘비동의’의 경계선을 다들 알아챕니다. 보통의 경우에는요. 하지만 재판정에 서는 경우는 그런 ‘보통의 경우’는 아니잖아요.

하지만 아지즈 안사리 케이스에서 볼 수 있듯, 어떤 경우, ‘비동의’라는 것은 사실 그리 명백한 개념이 아닙니다. 해당 케이스의 피해자(라고 자신을 표현한 사람)는 아지즈 안사리와의 성적 접촉을 명백히 거부하지 않았으나, 그 자신은 싫어했다고 ‘생각’ 했습니다. 아이즈 안사리가 독심술사가 아닌 이상, 이와 같은 비동의 ‘의사’를 읽어낼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가스라이팅, 그루밍으로 이뤄진 ‘동의’ 의사가 진정한 ‘동의’ 의사라 볼 수도 없을 테고요.

그러니, “동의하지 않은 성행위는 강간”이라는 말은 사실 너무 맞는 말인데, 실제로 이걸 형사처벌의 근거로 삼기가 너무 어려운 겁니다. 다수의 형법학자가 “Yes means Yes”를 형법에 도입하는 데 반대하는 것이 이런 까닭일 겁니다.

이정미 대표가 발의한 형법 개정안도 ‘명백한’ 거부의사가 있을 경우엔 처벌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No means No”를 대단히 보수적으로 적용한 수준이죠. 대다수 법학자들이 제안한 바로 그 내용입니다. 나경원 의원 등이 발의한 개정안도 ‘위력이 있을 경우’ 에 한해 명시적 동의를 필요로 하는 것이지요.

가해자가 범죄를 의도했느냐가 아니라 피해자가 이를 어떻게 느꼈느냐가 중요하다는 원칙도, 결국 형사처벌에 적용하는데는 애로사항이 따릅니다. 저 원칙을 정말 막무가내로 적용하면, 피해자가 수치심을 느꼈다고 하면 모든 언행이 범죄가 될 수 있으니까요. 결국 피해자의 주관적인 수치심이 아니라 판사가 생각하는 ‘보통 사람’의 기준을 소환할 수밖에 없습니다. 선량한 보통 사람의 기준. 성 관련 판결에서 허구헌날 나오던 결국 그 얘기입니다.

3.

어쨌든 이렇다 보니 법정에서도 성범죄의 증명에는 늘 애로사항이 꽃피는데…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은 형사사건에서 증거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성범죄 사건에서 유독 문젯거리가 되는 건, 성범죄는 그게 사실상 유일한 증거인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다보니 양쪽 모두 불만을 갖습니다. 한쪽에선 피해자의 진실한 진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한쪽에선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사람)의 진술만 듣고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친다고.

물론 사법부는 피해자의 진술을 증거로 채택함에 있어 물증, 증언, 진술 일관성, 객관성 등 다양한 정황을 함께 고려합니다만… 사실 이건 물적 증거에 비해 확실히 신뢰도가 떨어집니다. 결국 요는 재판부라는 사람의 신뢰니까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는가, 부정하는가에 따라 1, 2심 결과가 갈리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요.

한국 사회가 공통적으로 가진, 권력층에 대한 불신도 크게 작용할 겁니다. 안그래도 사법부를 못 믿는데, 진술의 신빙성만을 갖고 내린 판결을 믿을 수 있을리가요.

4.

통계를 낼 방법이 없으니 단언할 순 없지만, 추행 등 성범죄를 저지르고도 처벌을 받지 않는 경우와 / 추행 등 성범죄를 저지르지 않고도 처벌을 받는 경우를 비교하자면… 당연히 전자가 압도적으로 많을 겁니다.

남초 커뮤니티에서 걱정하는 성범죄 무고의 건수도 사실 그리 많을 것 같진 않습니다. 이것도 검경 모두 정확한 통계를 내지 않고 있고, 그래서 여기저기서 ‘추정치’를 내놓고 있긴 하지만 그리 신뢰도는 없어서, 단언할 순 없지만 말이죠. (게다가 성공한 무고는 애당초 통계를 낼 수도 없습니다.)

지식인들은 이런 이유로 남성들의 백래쉬를 질타하지만, 중요한 건 무고 건수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 아닙니다. 어쨌든 무고가 실제로 존재하며, 정말 계획적인 무고가 이뤄질 경우 이 무고를 반증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겁니다. 형사처벌의 문제에선, 수가 적으니 문제가 아닌 게 아니거든요. 열 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피해자가 있어선 안 된다는 게 형사처벌의 원칙이니까요.

이들을 ‘빻은’ 인식을 가진 냄져들로 힐난하는 건 쉽지만, 그리 효과적인 해결책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이들도 성범죄가 별거 아니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이들도 성범죄 사건 댓글에 (좀 구린 방식으로 감정이입하긴 하지만) 함께 치를 떱니다.

요는 이 문제가 운동이나 캠페인의 영역에서는 무척 간명하고 쉬워보이지만, 형사처벌의 영역에선 굉장히 어려운 것이라는 것입니다. 세간에선 그 두 가지가 대강 얽혀 있다는 인상이에요.

예를 들어 여성가족부는 산부인과서 생리, 발육 상태를 묻는 게 성희롱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입장이란 생각이에요. 물론 어떤 경우 성희롱이 될 수도 있죠. 음흉한 눈빛으로 아래위를 훑어보며 묻는다면요. 하지만 일반적인 경우에는, 저건 산부인과에선 너무 필수적인 문진 중 하나잖아요. 이런 것들이, 일반적인 형사처벌 기준과 달리 성범죄의 형사처벌 기준이 굉장히 모호하게 느껴지게 한다는 거죠.

5.

대부분의 경우, 재판부가 양측 발언의 신빙성을 충분히 숙고하여 결정을 내릴 거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 믿음은 98, 99%짜리지, 100% 짜리는 아닙니다.

사법부는 더 투명해져야 하고, 신뢰를 얻어야 합니다. 성범죄는 더 강력하게 단속되고 처벌되어야 합니다. 성범죄의 판단 기준은 좀 더 명백하게 세워져야 합니다. 뻔한 얘기들인데, 늘 그렇듯 어려운 과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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