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복무제와 병역특례의 인권적 목표와 현실적 한계

1.

최근 헌재 결정으로 대체복무제 도입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이에 대한 갑론을박이 뜨겁습니다. 진보진영에선 당연히 대체복무제 도입을 쌍수 들고 환영합니다. 그야 개인의 사상, 종교를 불문하고 무조건 군대에 가야 한다는 건 현대 시민사회가 요구하는 인권의 수준에 맞지 않으니 당연한 것이죠.

하지만 이를 탐탁찮게 보는 시선에도 일리는 있습니다.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 라고들 하지만, 사실 양심상 살인무기를 들고 싶어하는 사람은 극소수의 영웅 또는 사이코패스를 빼면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엄격히 말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제한없이 인정하자면 세상 사람 아무도 군대 가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정말 군대에 보내면 세상의 천장이 무너져내릴 정도로 정체성의 파괴를 겪는 사람만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기 마련인데… 그 기준선이 그렇게 뚜렷하지만은 않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리고 내가 내 세상이 무너진다는데 그걸 남이 뭐라 평가하는 것도 좀 그렇고요.

그래서 대체복무는 일반 군복무에 비해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뚜렷하게 힘든 것이어야 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체복무가 징벌이 되어선 안 된다는 게 원칙이지만, 그 원칙을 곧이곧대로 지키면 병역자원이 유지가 안 될 것이기 때문이죠.

그럼 어느 정도면 ‘정말 세상이 무너져내리는’ 사람들만 대체복무를 지원할 것인가… 이건 기준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니 갑론을박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기간만 해도 유엔 권고대로 1.5배가 적당한가, 2배가 적당한가 등등. 사실 딱히 대단한 근거가 있어서 이런 숫자가 나오는 건 아니잖아요.

현실의 사례에서 대강 유추를 해 볼 순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의료계는 대부분 군의관으로 군 복무를 하는데, 이게 38개월입니다. 보건소에서 일하는 공중보건의는 37개월. 육군 기준 21개월인 복무기간에 비해 2배 가까이 길지만 아무도 사병으로 가지 않않습니다. 심지어 상근 떠도 상근으로도 안 갑니다. 무조건 공중보건의가 최고고 군의관은 하책이며 사병 가는 건 국대에 황희찬 뽑는 것보다 더 넌더리를 냅니다. 업무의 강도도 강도지만 사회 > 장교 > 사병의 계급적인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현격합니다.

물론 현재의 잔혹한, 초보 헌터가 네르기간테 잡는 수준의 잔혹한 군 복무 현실을 개선하는 것이 최선이지요. 하지만 대체복무 도입이 이상만 가지고 이뤄지기가 힘들다는 것도 분명한 현실입니다. 군 복무 환경 개선은 아주 장기적인 과제고, 대체복무제 도입은 당장 해야 할 일이니까요. 이상적인 여권의 안과 징벌적 성격이 강한 야권의 안 사이에서 정치적 줄다리기를 통해 적당한 중간 지점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게 아마도 최선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2.

한편 병역 혜택에 대해서도 말이 많습니다. 야구팀이 대놓고 군면제팀을 결성해서 까이고 있고… 축구팀은 그래도 열혈 경기력을 보여주기도 했고, 손흥민 등 해외파의 군 문제가 팬들에게도 고민이었기에 그나마 여론이 긍정적이긴 하지만… 이것도 문제가 아니라 할 순 없습니다.

이를 비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의견이 있습니다. “왜 쟤네만 혜택 주냐, 병역 혜택 없애라”는 게 하나고, “운동선수 전성기에 병역 문제로 골머리 앓게 하지 말고, 오히려 병역 혜택을 늘려라” 라는 게 하나. 둘 다 일리가 있는 말이죠.

그런데 병역 혜택을 늘리자니 생기는 문제가 역시 병역 자원의 문제입니다. 형평성을 생각하면 스포츠 선수에 대해서만 유독 병역 혜택을 크게 늘리는 건 맞지 않습니다. 사실 20대 초반이 전성기인 건 스포츠인 뿐만이 아니고, 2년 동안 손 놓고 집단주의의 톱니바퀴가 되라는 건 어떤 분야에서든 인간의 재능을 갉아먹는 일이거든요.

최근에는 35세 이후로까지 병역 의무를 미루게 해 주는 건 어떨까… 하는 제안도 나왔는데. 사실 병역 의무는 최대한 자율적으로, 미루고 싶으면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게 해 주는 게 인권 측면에서는 당연히 맞는 말입니다.

문제는 그게 병역 자원 문제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하는 것이죠. 병역 자원은 현재는 큰 부족함이 없이 잘 굴러가고 있지만, 준장기적으로 보면 문제가 심각합니다. 당연히 저출산 때문인데요. 20세 남자 인구는 2020년 33만 1천명에서 2023년이면 25만 3천명으로 급격히 쪼그라듭니다. 자연히 이때부터는 병역 자원도 급격히 부족해집니다.

군은 준장기적으로 50만 명 이상을 적정 병력 수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만큼 대규모의 병력이 필요한 이유는 결국 북한이 상시적이고 심각한 위협으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존재할 때도 위협이고 설령 무너지면 더 큰 위협이 되지요. 시민사회는 이 병력이 3~40만까지 감축되어도 무방하다고 주장하는데 사실 이 부분에서 논쟁이 제대로 이뤄졌다고 보기가 어려운 느낌적인 느낌 느낌. 그냥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만 얘기하는 것 같달까요…

심지어 병역 특례 축소가 계속 이뤄지는 가운데 병역 특례를 재차 확대하자는 주장은 설득력이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물며 병역 의무를 저렇게 장기간 미룰 수 있게 해 주면 병역 자원 관리에도 큰 구멍이 뚫릴 수밖에 없고, 적정 병력 수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데도 곤란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상을 이야기하기 위해선 단단한 현실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단 정말 3~40만 명 수준의 병력 규모로도 적정한가. 대체복무제가 정말 군 복무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불러오지 않을 것인가… 이게 사회적으로는 물론 심지어 학술적으로도 그다지 합의된 내용이 아닌 것 같거든요. 상대의 의견을 “빻았다”고 욕하기는 쉽지만, 단단한 현실적 근거에 기반하지 않은 이상은 결국 현시창만 되새기게 되지 않을까요.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