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무죄 판결문 읽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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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중요하고 심각한 사건인데, 마침 민주신문에서 기자가 법정에서 낭독된 판결문을 녹취하여 실었습니다.

민주신문, 안희정 무죄 판결문

사족 같은 이야기지만, 판결문은 공개를 원칙으로 하되 정보 보호, 2차 가해 등의 사유가 있을 때만 비공개하거나, 이처럼 사회적으로 파장이 큰 사건에 한해서라도 공개하도록 하는 게 맞지 않나 싶습니다. 불필요한 논란은 불식하면서 논의는 한 차원 더 수준 높게, 더 활발하게 하기 위해서.

전 법학도도 아니고 주워들은 이야기들을 덧붙일 뿐이지만, 그게 누군가에게 더 나은 생각을 이끌어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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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문을 보면 죄형법정주의적 해석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는 범죄의 성립과 형사처벌이 오직 법률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헌법에도 규정된 형법의 대원칙으로, 이것이 무너지면 권력자와 사법부의 자의적인 법해석이 가능해집니다. 물론 법률만 있다고 다 되는 건 아니고, 법률도 사람이 함부로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 없도록, 최소한의 명확성이 있어야 합니다.

이건 “Yes means Yes”라는 일견 당연해보이는 원칙을 형법으로 끌어오기 어렵게 만드는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인데요. 일반적으로 성관계의 동의 여부를 법정에서 증명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성관계는 매우 내밀한 개인 대 개인의 관계로 증인이나 증거가 있기 어렵고, 성관계 자체가 범죄가 될 수도 없습니다. 이것이 폭행이나 강도, 살인 등 다른 범죄와 크게 다른 점입니다.

1심 법원은 이에, 사회에서 사용되는 ‘성폭력’이란 말과 형사법에 규정된 ‘성폭력 범죄’에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그 괴리에 대한 비판을 경청해야 한다고도 언급하고 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형법을 엄격하게 해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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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측에서 법원이 ‘정조’란 단어를 사용한 것을 문제삼았는데, 이것이 심리중에 나온 말인지, 아니면 판결문 상의 ‘정조’란 단어를 문제삼은 것인지 아리송합니다. 심리중에 별다른 맥락 없이 나온 말이라면 당연히 법원을 매우 쳐야 할 텐데…

판결문상에서 ‘정조’란 표현을 사용한 것은 맥락이 좀 다릅니다. 이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위력에 의한 간음죄가 처음 제정된 이유를 설명하면서였습니다. 처음에는 부녀의 정조를 보호하는 뜻이었는데, 정조와 같은 남성 우월적 개념은 이제 폐기되었고 성적 자기결정권이 법익으로서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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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은 피해자에 대한 ‘성인지 감수성’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2018년 4월 대법원이 제시한 기준이죠. 주요한 내용을 발췌하면 대충 이렇습니다.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적인 문화와 인식, 구조 등으로 인해 피해자가 성희롱 사실을 알리고 문제를 삼는 과정에서 오히려 부정적 반응이나 여론, 불이익한 처우 또는 그로 인한 정신적 피해 등에 노출되는 이른바 ‘2차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성희롱 피해자는 2차 피해에 대한 불안감이나 두려움으로 인해 피해를 당한 후에도 가해자와 종전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경우도 있고, 피해사실을 즉시 신고하지 못하고 있다가 다른 피해자 등 제3자가 문제를 제기한 것을 계기로 비로소 신고를 하는 경우도 있으며, 피해사실을 신고한 후에도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진술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따라서 성희롱 피해자가 처해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또 중요한 내용이 이하에 나옵니다. “법원이 어떤 행위가 성희롱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는 우리 사회 전체의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이 아니라 피해자와 같은 처지에 있는 평균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정도였는지를 기준으로 심리·판단해야 한다”.

성범죄 등 사건에서 법원은 그동안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이라는 불분명한 기준을 판결의 근거로 삼아왔고 큰 비난을 받아왔습니다. 한편으로 죄형법정주의를 얘기하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가상의 시민(?)을 소환하면 곤란하죠. 이건 피해자중심주의와도 연결될 수 있는데, 성폭력 문제는 가해자의 잘못된 인식과 성평등 감수성이 아니라 피해자가 그 행위를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통해 결정이 내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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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의 이번 판결은 최종 결과가 무죄였음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그 대법원의 기준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처럼 피해자에 대한 성인지 감수성을 고려했음에도 불구하고, 성폭력이 일어났다는 증거와 정황을 찾기 어렵다는 것인데요.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은 업무상 보호, 감독을 받는 사람을 위력에 의해 간음할 때 성립합니다. 법원은 여기에서 전자는 인정하였으나 후자는 인정하지 않았죠.

다른 정황보다 특히 문제가 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게 피해자가 제3자와 나눈 대화입니다. 업무상 관련이 없는 지인과의 대화에서도 피고인 안희정에 대한 존경과 지지를 표현했다는 것이지요. 언론에 따르면, 안희정의 변호인단은 안희정에 대한 믿음을 표현하는 여러 건의 메시지를 제시했습니다. 이것이 상당히 결정적인 반증이 되었을 것 같아요.

다만 법원은 여전히 조심스럽습니다. 이런 메시지가 그루밍, 학습된 무기력, 일종의 방어기제로 인한 것일 수도 있다고도 말하죠. 최근 대두되고 있는 가스라이팅과 같은 개념과도 연결해서도 이야기해볼 만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심리적 반응은… 범죄의 증명으로 채택하기가 더욱이 어렵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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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은 계속해서 이와 같은 사건을 처벌할 것인지는 ‘입법 체계’의 문제라고 지적하는데요… 사실 Yes means Yes 자체를 성범죄 전체에 적용하여 법제화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의 정신과 많은 부분에서 충돌하고 마찰하는 문제라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경우, 이처럼 직접적인 위력이 있다면 그냥 손을 대지 않는 게 마땅하지요. 법원의 무죄 판결이 안희정에게 정말로 죄가 없음을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법원도 사회적으로 규정되는 성폭력과 형법상의 성폭력 상의 괴리를 언급했고요. 그가 형사처벌받지 않는다 해서 성폭력범이 아닌 건 아닙니다.

이는 위력이 이처럼 직접적이고 명확한 경우, 피해자가 그 위력을 거스르기 어려운 것은 물론 그 위력 자체가 폭력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법원이 스스로 말했듯, 피해자가 오히려 안희정을 신뢰하고 지지하는 의사를 여러 차례 표현했더라도, 그조차 폭력에 학습된 무기력의 결과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이런 경우에는 직접적인 위력이라는 명확한 성립 요건이 있으므로, Yes means Yes를 적용하는 데도 큰 무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위력에 의하여”라는 현행 법조문도 충분히 이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이란 요건 때문에, 그런 해석은 지나치게 자의적이라고 여겼을 것 같아요.

만일 입법부에서 정비에 나선다면, 단순히 성범죄의 처벌 강화가 아니라 성범죄의 구성요건 등을 세세하게 규정하고, 성범죄의 층위를 더욱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강간은 다 같은 강간이라는 식이 아니라, 단순히 위력만이 존재할 경우, 위계나 위력을 실제로 행사했음이 밝혀졌을 경우, 동의하지 않았다는 정황이 밝혀졌을 경우, 실제 신체적 폭력에 의하였음이 밝혀졌을 경우 등… 그 죄목을 좀 더 세세하게 나누어 줄 필요가 있다는 거죠.

사법부는 형법에 법관의 자의적인 판단이 끼어드는 걸 알레르기마냥 싫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법에 의한 지배를 무너뜨리는 첫 걸음이니까요. 그 자의적인 판단의 여지를 입법부에서 최대한 줄여주는 것이 마땅하지 않나 싶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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