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의 역풍에 대한 잡상들

요즘 미투 운동의 ‘역풍’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최근 삐걱대는 소리가 좀 나긴 했지만, 미투 운동의 대의가 훼손되지 말아야 한다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진보 일간지마저도 이런 마냥 ‘맞는 말’만 하느라 헛힘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볍게 나름대로의 잡상을 정리해보기로.

 

하나.

때로는 거짓 고발도 있을 것이다. 증언이 엇갈린다면 개별 사안에 대한 판단은 미뤄둬도 좋다. 오히려 여성의 고발이 무조건 옳다고 전제하고 가해 사실을 확정하는 것도 잘못이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여기에 시비를 가릴 필요가 있나 싶다. 우리의 역할은 법관이 되는 것이 아니고, 개별 사건의 실체를 우리가 속속들이 판단하는 것도 무리다.

그럼 우리는 그저 중립을 지켜야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젠더 폭력의 피해자들의 용기에 공감하는 것이다. 그들이 사회로부터 비뚤어진 시선을 받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고발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가해자와 권력을 가진 이들로부터 겁박당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그들의 고발에 귀기울이고 이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아예 젠더 폭력이 횡행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일상적으로 벌어지던 젠더 폭력을 규탄하고 규율하며, 존중과 배려, 합의라는 마땅한 성 윤리를 확립하는 것이다.

 

둘.

정봉주 사건은 사실 진실공방으로 접어든지라 뭐라 논평하긴 부적절한데, 그와 별개로 프레시안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폭로를 던졌을 뿐, 검증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정봉주 측세어 알리바이를 제시할 때마다 대응하기에 급급하고, 급기야 “인정 안하면 더 깐다!”는 식으로 협박까지. 독자가 아니라 정봉주를 상대로 한 싸움에만 열중한 모습이다.

애당초 사건의 중대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든다. 정봉주의 추파에 주관적인 불쾌감을 느꼈다는 내용인데, 이게 미투운동의 공익에 부합하는 고발인가? 물론 개저씨들이 추파를 함부로 던지는 분위기는 문제지만, 추파를 던진 개인을 특정해 고발(?)하는 게 정의인지는 아무래도 모르겠다.

미투운동의 대의가 정의롭고 중대하기에, 개인이라면 모를까 언론은 정말 언론답게 정밀하게 사안에 접근해야 하지 않나. 이미 늦었지만(…) 이제라도 좀 신경써줬으면.

 

셋.

많은 남성들이 ‘무고죄’를 이야기한다. 고발자의 증언을 무턱대고 신뢰하다 보면 무고의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다는 것이다. 사실 많은 성폭력이, 실제 고발자의 증언 외에 물적 증거를 갖추기 힘들기도 하고, 결국 정황을 고려하게 되기 때문에.

그럼, “성폭력을 당했다”고 무고하는 범죄는 얼마나 자주 발생할까?

한쪽에선 연간 수천 건이라고 하고, 한쪽에선 수십~수백 건이라고 하는데 둘 다 근거가 없는 숫자인 듯. 일단 수천 건이란 숫자는 성폭력 뿐 아니라 모든 양상의 무고죄를 합한 숫자고, 수십~수백 건이란 숫자는 일부 언론을 타긴 했는데 근거가 불분명한 숫자인 모양이다.

경찰, 검찰, 법무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범죄별로 무고죄를 분류해 통계낸 적이 없으며 시스템상으로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라고.

오마이뉴스에는 이런 기사가 실리기도 했는데,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성범죄에 대한 무고죄 통계”는 어디에서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게 경찰, 검찰, 법무부의 입장인지라, 오마이뉴스가 사용한 통계의 원 출처가 불분명하다. (일부 언론의 판결문 분석(?) 결과로 보입니다만, 신뢰도의 문제가 있다.) 또한 통계의 해석도 정교하지 않아, 어떤 결론을 내기에는 부적합하다. 무고 건수가 성범죄 건수에 비해 그렇게 많을 리는 없다, 는 느슨한 결론을 내는 정도에서 그치는 게 좋을 듯 하다.

 

넷.

지난 2월 16일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선 이런 발언도 있었다고 한다.

KBS의 박에스더 기자가 “혹시 남성분들 중에서 각오해라. 나 큰일 났네. 이런 생각 하시는 분들도 있을 수 있어요”라며, 진행자 김어준에게 “공장장님께서도 조금?” 이란 무례한 질문을 던진 것.

이에 김어준이 “그런 적은 없다”고 대답하자, “그럴까요? 그 부분은 우리가 KBS 미투에서 취재해봐야겠네요. 과연 그런 적이 없었는지”라고 말했다.

김어준을 향한 KBS 기자의 불편한 미투 농담(?), 아이엠피터

이거 정말 무례한 질문이다. 명예를 훼손한 것일 수도 있고, 사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그 발언 자체가 성희롱일 수도 있다.

필부필부 개개인이 모두 정의롭길 기대할 순 없다. 남성들 가운데 이상한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여성들 가운데에도 이상한 사람들은 있다. 이상한 여성이 있다고 해서 그게 젠더 문제나 미투 운동의 중요성을 희석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언론인은 좀 더 책임감을 가져도 좋지 않을까. 자꾸 이런 부적절한 얘기가 나와서는 곤란하다. 하물며 미투 운동을 소재로 이런 부적절한 농담이라니. 너무 나갔다.

 

다섯.

최근 성범죄의 형사처벌에 대한 몇 가지 개혁 방안이 제시되고 있는데…

사실 항거가 불가능할 정도의 협박, 폭행이 있을 때만 강간인 게 아니라, 상대가 성관계를 거부했음에도 강제로 성관계를 했다면 그것이 강간이라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협박, 폭행, 저항의 유무를 따지는 게 아니라, 강제성이 있었느냐 없었느냐를 따지는 것만으로 족하다는 것. 물론 거기에 협박, 폭행 등이 있었다면 형이 더 무거워져야 할 테고.

“Yes means Yes” 운동은 취지는 좋지만, 형사처벌의 근거로 삼기에는 너무 막연하다. 그 연장선상에 있는 비동의간음죄 신설도 마찬가지. 매번 합의서를 쓰지 않는 이상 ‘명백한 동의’를 규정한다는 게 불가능하다. 형벌권 행사엔 명확한 구성요건이 필요한 만큼, 이런 막연한 원칙을 형벌의 근거로 삼기는 여러모로 부적절한 듯.

이런 논의가 있을 때마다 아쉬운 것이, 논의가 늘 표층을 훑다가 끝나버린다는 것이다. “비동의간음죄를 반대하다니, 동의 없는 성관계라도 하겠다는 것이냐!” “비동의간음죄라니, 그럼 성관계 때마다 합의서라도 쓰라는 것이냐!” 하는 바보같은 논의만 반복되는 것.

애당초 ‘비동의’부터 ‘Yes’의 의미까지 모든 정의들이 혼동되고 있는데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길 바라는 것이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조금만 더 엄밀했으면 할 뿐.

 

여섯.

최근 한 여성의 시신이 야산에서 발견되었고, 수사 과정에서 그 남자친구가 과거 다른 여자친구를 살해했던 것이 드러나 ‘연쇄살인’ 가능성까지 의심하고 있는 모양.

이런 뉴스를 볼 때 여성이 느낄 불안감은 남성이 느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다. ‘잠재적 가해자’란 표현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남성은 모두 가해자가 될 수 있다”가 아니라, 여성의 입장에서 볼 때 “어떤 남성이 가해자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을 늘 갖고 살아야 한다는 것.

사실 많은 ‘운동의 용어’가 그렇듯이, 학술적인 개념이나 외국에서 들어온 개념을 그냥 대강 도입 – 번역하다보니 쉽게 오해를 불러온다는 생각이 든다. ‘잠재적 가해자’도 그렇지만, 근 몇년 간 젠더 문제의 화두가 되었던 ‘여성혐오’ 같은 용어도. 그런 면에서도 조금 더 사려깊었으면 싶긴 하지만…

물론 우선, 여성의 입장에서, 그리고 학술적인 입장에서, 운동의 입장에서 그 용어가 어떻게 해석되는지를 이해하자 말하는 것이 우선이겠거니. 그냥 작은 아쉬움을 표하는 것 정도로 이해해주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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