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안84란 개인을 악마화한다는 것

아이즈에서 이런 칼럼을 본 김에 써 보는 단상. 하지만 비단 아이즈의 이 칼럼만을 비판하고자 하는 건 아닙니다.

국민썸남은 필요 없다, 아이즈

기안84에 대한, 주로 트위터의 혐오에 가까운 분노가 쏟아져나온 건 아마 지난 연예대상이 계기였을 겁니다. 그가 박나래와 함께 ‘베스트커플상’을 수상한 뒤, 박나래의 이마에 입을 맞추는 퍼포먼스를 했기 때문이죠. 이것이 ‘협의되지 않은 스킨십’이란 게 비판의 골자였습니다.

 

기안84와 성별 고정관념

그 전에도 트위터는 기안84에 대해 썩 우호적이지 않았습니다. 기안84의 생활 스타일은 우악스럽고, 나사가 몇 개 빠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 연예인같지 않은 모습이 역설적으로 기안84를 스타로 만들었죠. 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보며, ‘과연 여자가 기안84 같은 모습을 보인다면 똑같이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이런 지적을 통해, 우리는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적 문화를 다시 돌이켜보게 됩니다. 이건 우리 문화를 뿌리깊게 지배해 온 남성성 / 여성성의 고정관념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이런 자유롭고 허술한 삶은 ‘호방함’으로 여겨집니다. 호방함이란 남성의 것이지, 여성의 것은 아니죠.

문제는 이런 문제 제기가 문화 현상, 사회 현상을 향하는 게 아니라 때로 기안84란 개인을 향해 쏟아졌다는 것입니다. 기안84의 삶의 양태 자체를 혐오하고, 소름끼쳐하는 것이죠. ‘한남'(한국 남자)이라는 권력에 기생해 제 멋대로 사는, 말하자면 젠더권력의 가해자라는 틀이 덧씌워지기도 합니다.

이 칼럼은 경청할 만한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칼럼은 분명히 여성주의적이며, 결혼을 마땅히 나아가야 할 정상 단계처럼 여기는 데에도 반대합니다. 하지만 기안84의 생활을 보면서는 “독특한 라이프스타일이라고 하기에는 성인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생활 감각에서 심하게 벗어나 있”다고 평가합니다. 사회가 규정하는 ‘정상 남녀’ ‘정상 성인’의 틀을 비판하면서도, 기안84를 향해서는 “그래도 넌 ‘정상’에서 너무 벗어난 거 아니냐”며 또다른 ‘정상 성인’의 틀을 가져오려 하죠.

TV를 통해 간접적으로밖에 볼 수 없긴 하지만, 기안84의 삶이 타인에게 명백한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닙니다. 괴팍하고 이상해 보이긴 하지만요. 제 앞가림을 못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는 네이버 웹툰, 한국에서 가장 지배적인 영향력을 가진 만화 플랫폼의 최고 인기 작가 중 한 명입니다. 그의 자유분방한 삶의 양태는 반복적이고 모범적인 삶이 쥐약이나 다름없는 창작자에겐 나쁜 것만도 아닙니다.

이 부분이, “결혼하기 괜찮은 남성의 기준을 한없이 느슨하게 정의한다”는 칼럼의 주장이 사실 반쪽짜리란 걸 보여줍니다. “결혼하기 괜찮은 남성의 기준”은 많은 부분에서 느슨하지만, 한 부분에선 대단히 빡빡하거든요. 다들 아시다시피, 경제력이죠. 기안84가 ‘괜찮은 남자’일 수 있는 이유는 남자는 저렇게 대충 살아도 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저렇게 대충 살긴 해도 네이버 최고 인기 작가로서 충분히 괜찮은 경제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죠. 이 또한 ‘남성성’이란 고정관념의 연장선상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사실 그건 ‘국민썸녀’ 박나래도 썩 자유롭지 않은데요(…) 그는 집에 술집(…)을 열어놓고 매일 새벽까지 술을 마시며 다음날 저녁에서야 정신을 차리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는 연예대상 후보 급의 예능인으로서, 역시 충분히 괜찮은 경제력을 갖고 있거든요. 뭐 이건 사족이니까, 일단 접어두고.

우리는 ‘남성성’과 ‘여성성’이란 고정관념과 끊임없이 맞서 싸워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한 개인에게 적의를 돌리는 건 충분히 조심스러워야 합니다. 그건 비단 기안84가 공황장애를 앓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에요. 우리는 사람을 보살펴야 한다는, 사람의 권리를 지켜야 한다는 당연한 기반, 당연한 합의를 지키기 위해서죠.

 

사족. 문제의 이마 뽀뽀가 정말 기안84의 잘못이었나요?

역시 사족인데, 또 한 가지 재미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기안84의 이마 키스 퍼포먼스 말인데요. 사람들은 이 ‘협의되지 않은 스킨십’을 이유로 기안84를 비난하고 그를 ‘한남 가해자’로 규정했죠. 그런데 말입니다, 다들 방송은 보고 말씀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아니, 최소한 2~3분짜리 방송 클립이라도 보고 얘기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그날 연예대상에서 박나래는 심지어 대상을 받으면 기안84와 결혼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고, 다들 농담처럼 이 커플을 밀어주는 분위기였죠. 그리고 베스트커플 상을 받으러 나온 기안84와 박나래에게 볼 뽀뽀 정도 보여주는 게 어떠냐, 이마 뽀뽀라도 어떠냐 하며 퍼포먼스를 유도한 건 MC인 한혜진이었습니다. 기안84는 횡설수설 하다가 (아마 수상시 뭐라도 하기로 시청자와 ‘약속’을 했다는 걸 말하려 한 듯 합니다) 그 퍼포먼스를 실행한 거구요.

이게 정말 기안84가 한국 남자의 폭력성을 보여준 장면인가요? 물론 딱부러지게 거절하는 게 맞는 거였을 수도 있죠. 그 요청을 한 게 프로그램의 MC이며, 두 사람과 같은 프로그램을 오랫동안 함께 해 온 친구이자 동료라고 해도 말이죠. 기안84 본인이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데다, 프로그램 내내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였고, 무대에 나가서는 “제주도의 수도가 뭐냐”는 괴상한 질문을 하질 않나, 대본에 써 있는 지문까지 그대로 읽질 않나 심하게 긴장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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