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논쟁, 한 편의 작품을 재단하는 방법

1987

위대한 역사는 한 명의 초인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작은 움직임들이 모여 비로소 만들어지죠. 그것은 지극히 온당하고도 정의롭지만, 불의 앞에 항거하는 큰 용기가 필요한 움직임이지요. 이 영화는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중심으로, 1987년 ‘그 날, 그 순간’에 이르는 작은 움직임들을 복합적으로 보여줍니다.

 

불완전한 승리의 역사

그러나 30년 후를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1987년의 승리는 불완전한 승리였음을요. 한국에 돌아온 두 번째 봄은 길지 않았습니다. 한국은 군부 독재를 종식하고 민주주의 제도를 되찾았으나, 민주화 진영의 두 거두였던 김영삼과 김대중은 분열했고, 노태우가 당선되며 사실상 군부 정부가 연장되는 결과를 낳았죠.

그래도 직선제로 대표되는 민주주의의 제도적 정착은 큰 결실이었으나, 이젠 그마저 극복되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87년 체제’는 긍정적인 뉘앙스보다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합니다. 제왕적 대통령제로 권력이 집중되었다거나, 과거사나 민주화 논쟁에 매몰되어 민생을 챙기지 못한다거나, 소수자의 권리가 충분히 보장되지 못했다거나.

영화 ‘1987’이 논쟁적인 영화인 한 이유일 것입니다.

 

벡델 테스트

이 영화가 비판받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여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사건을 이끌어가는 등장인물은 대부분 남성이며, 주연급 여성 캐릭터는 ‘연희’ 한 사람 뿐인데, 그는 주요 등장인물 중 유일하게 민주화에 대한 신념이 확고하지 못하며 결국 주위 ‘남성’들에게 영향을 받는 캐릭터이지요.

벡델 테스트라는 게 있습니다. 영화계가 얼마나 남성중심적인가, 여성 인물이 얼마나 무시당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테스트인데요. 그 통과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영화에 이름을 가진 여성이 둘 이상 등장한다.
2. 이 여성들이 서로 이야기를 한다.
3. 이야기의 주제가 남자에 대한 것 이외이다.

이 테스트는 영화는 물론, 만화나 소설 등 다양한 매체가 얼마나 남성 중심적인지를 보여줍니다. 주인공은 당연히 남성이며 여성은 보조적인 역할이나 비주체적인 역할을 소화할 뿐이죠. 여성이 주인공인, 벡델 테스트를 만족하는 작품마저도 그 외의 부분을 들여다보면 결국 남성 팬들에게 소구하는 작품인 경우가 많습니다.

1987도 이런 면에서 비판을 받았습니다. 1987년 투쟁에서 여성을 지워버렸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장준환 감독은 박종철 열사에서 이한열 열사까지를 아우르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여성 캐릭터가 들어갈 부분이 많이 없었다고 해명했습니다. 심지어 실존 인물인 김정남을 여성으로 바꾸어볼까 생각도 했다고요.

감독의 해명에는 일리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유시춘 작가(본인이 여성이기도 합니다)가 말하는 것처럼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중심으로 한 1987년의 역사를 조감도처럼 바라본 것이고, 따라서 중심 인물들은 대부분 남성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1987년의 역사를 영화화하면서 여성 캐릭터들을 더 많이 쓸 수도 있습니다. 만화 ‘100도씨’ 처럼요. 그러나 그렇게 되면 ‘1987’처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극의 가장 중심에 박아놓을 수는 없지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란 역사의 중심 인물들은 분명 남성이었으니까요. 여기에 여성 캐릭터들을 무리하게 삽입하면 이건 그냥 아예 다른 소재, 다른 주제의 다른 영화가 되는 것입니다.

 

영화를 평가하는 기준

벡델 테스트는 영화계 뿐 아니라 문화계 전반을 지배하는 남성 중심의 서사를 지적하는 좋은 도구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개별 영화를 재단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덩케르크(Dunkirk)’가 개봉했을 때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영화 속에 여성 캐릭터가 없단 것이죠. 하지만 2차 세계대전, 됭케르크 철수작전을 소재로 한 영화에 여성이 없단 것이 영화를 혹평하는 기준이 될 수 있을까요?

물론 2차 세계대전에 여성의 역할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그들의 활약상을 그릴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전혀 다른 영화가 되어버립니다. 영화 ‘덩케르크’는 마치 내가 됭케르크 한복판에 있는 것 같은 강렬한 현장감이 특징입니다. 그 현장감 속에 여성 캐릭터를 집어넣을 수 있을까요?

물론 역사물이 하나같이 남성 중심적인, ‘쓰여진 역사’에만 집중한다면 그런 경향은 마땅히 비판할 만합니다. 하지만 개별 작품들에 그런 잣대를 일관되게 들이대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다양해야 합니다. 다양한 시선을 갖고 있어야 하죠. 이런 일관된 잣대는 오히려 그 다양성을 빼앗게 되지 않을까요.

 

올바름의 잣대로 작품을 재단하기

이런 ‘올바름’의 잣대가 작품을 무리하게 재단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또 어떤 리뷰는 ‘1987’ 극중 검사의 대사인 “서울대 다니는 자식이 죽었는데 어느 부모가 부검도 안 하고”란 대사를 문제삼기도 했습니다. 학력주의를 조장한다는 것이겠지요.

이런 비판은 온당할까요? 이 대사는 1987년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나 검사의 캐릭터를 잘 전달합니다. 제가 칼럼을 쓰면서 “서울대 다니는 자식은 부검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건 당연히 잘못이지요. 하지만 극중 가상 인물의 대사에 모두 이런 잣대를 적용한다면, 등장인물 뿐 아니라 극중 배경도 평면적으로 변해버립니다. 세상엔 어느 정도 정의롭지만, 꼰대같기도 하고, 학력으로 사람을 재단하기도 하는 인물도 있습니다. 이런 인물은 묘사해선 안 되는 걸까요?

육아를 다룬 어떤 작품에서, 작중 부모가 아이를 낳기로 결심하며 “생명은 소중하니까”라고 말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건 여성의 임신 중절의 권리를 부정하는 나쁜 대사일까요? 그 캐릭터는 종교를 갖고 있을 수도 있고, 임신 중절의 권리는 긍정하지만 자신은 임신 중절을 하지 않겠다는 신념을 갖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캐릭터의 성격은 복합적입니다.

이렇게 모든 캐릭터에게 올바름을 강요하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요? 작품은 복잡미묘한 세상을 모사하지 못하고, 주제의식은 흐리멍텅해질 것입니다. 강렬한 카타르시스도 더는 없겠죠.

무서운 건, 이미 일부 작가와 편집자들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특히 트위터 등 SNS에서 폭발하는 항의의 메시지를 피하기 위해 캐릭터들과 스토리 전개를 그 구미에 맞춰 만들고 있습니다.

이건 시대착오적인 주제의식, 캐릭터를 만들어도 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주제를 드러내고 캐릭터를 만드는 방식 자체가 여론에 못이겨 천편일률적으로 변해가는 데 대한 걱정입니다. 덩케르크에 여성이 등장하고, 천주교 신자가 굳이 임신 중절의 권리를 옹호하는 대사를 치는 그런 이상한 세상에 대한 우려입니다.

 

다시 1987

우리의 1987년은 반쪽짜리 승리였고, 87년 체제는 이제 극복되어야 할 구체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말합니다. 이 영화의 의의는 무엇인가. 이제 구세대가 되어버린 1987년 세대의 자기위안일 뿐이진 않은가.

저는 오히려 반문하고 싶어집니다. 그게 이 영화를 평가하는 잣대가 됨이 옳은가. 그런 종류의 영화’만’ 쏟아져나오고 있다면, 그런 문화나 분위기를 비판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경우에도 한 편의 영화에 책임을 돌림이 온당할까요. 하물며, 1987은 무척 잘 만들어진 영화고, 지금은 1987같은 영화’만’ 나오고 있지도 않습니다.

또 그렇게 얘기할 수도 있겠죠. 영포티니 오포세대니 하며 1987년 세대의 감수성을 노린 마케팅이 횡행하는 가운데, 1987도 그런 구세대를 위한 작품일 뿐 아니냐고요. 중장년 이성애자 중산층 남성이 기득권을 손에 쥐고 문화코드마저 점령하고 있다는 사회 현상에 대한 비판은 물론 가능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1987이라는 개별 영화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는 건 그리 온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사회적, 역사적 맥락에서도 1987이 그렇게 의미없는 영화인가 싶습니다. 게다가 아직도 인구의 반절은 1987 같은 영화를 ‘선동’이니 ‘좌파 영화’ 라 치부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우리는 권력 분권, 소수자 의제, 노동권과 민생 같은 새로운 주제에 대해서도 숙의해야 하지만, 여전히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숙의해야 합니다. 박근혜와 이명박이 보여주었듯, 우리는 민주주의란 단계를 클리어한 게 아닙니다.

사족으로, 영화와 별개로 저는 당시 투쟁했던 모두에게 존경심을 표합니다. 물론 구세대는 많은 측면에서 비판받아야 합니다. 경제 기득권, 정상 가족 경도, 여성 혐오 문화, 소수자에 대한 몰이해… 그러나 1987년의 위대한 역사는, 그리고 그 역사를 연 용기는 저로서는 감히 따라갈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1987년을 이제 넘어설 때이긴 하지만, 그 위대함도 지우고 부정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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