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의 부조리, 언론의 결탁: 댓글 수사 방해 검사 자살 사건에 즈음하여

댓글 수사 방해 혐의, 잇따른 자살

댓글 수사 방해 혐의를 받던 검사가 영장심사를 앞두고 투신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앞서 국정원 법률보좌관실 소속의 변호사가 역시 댓글 수사 방해 혐의로 참고인 조사를 받은 뒤 자살한 것에 이어 벌어진 사건입니다.

이에 대해 세간에서는 자살을 ‘한’ 게 아니라 자살을 ‘당한’ 것 아니냐는 음모론이 떠돌기도 했습니다. 음지에서 일하는 비밀스럽고도 막대한 국가 권력의 중추, 국정원이 연루된 사건이었으니까요.

 

여론과 다른 언론의 미묘한 ‘거리감’

하지만 언론은 다른 측면에서 접근합니다. 적폐 청산을 명분으로 댓글 수사 방해의 ‘사실상 피해자’인 윤석열 서울지검장이 총대를 메고 과거 보수 정권을 ‘표적 수사’ 하면서, 무리한 수사가 이루어졌다는 것이죠. 잇따른 자살은 바로 그 ‘무리한 수사’로 인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보수언론, 소위 말하는 ‘조중동’은 과연 그들다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사설까지 동원하며 정부의 ‘적폐 청산’을 공격하고 있는데요, 다음과 같은 사설이 대표적이죠. ‘적폐 청산’이 검찰 최대의 위기를 불렀다고도 말합니다. 사설을 동원했다는 점은 꽤 중요한 부분인데, 이건 이 언론의 논조 자체가 적폐 청산 작업에 사실상 반대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죠.

[사설]너무 거친 檢 적폐수사, 또 다른 적폐 불씨 될 것, 동아일보

이 문제에 대해, 조중동의 논조는 대체로 비슷합니다. 적폐 청산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한편 한국일보의 아래와 같은 기사는 비교적 온건한데요, 적폐 청산 자체가 잘못이라고는 말하지 않지만 검찰의 ‘망신주기’ 식 수사가 일을 키웠다는 지적입니다.

“검찰 망신주기식 수사” 문제 없나, 한국일보

 

기득권의 부조리

검찰이란 어떤 조직입니까?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기관입니다. 여기에 검사동일체라고 해서 모든 검사를 하나의 유기체처럼 취급하여, 윗선의 지시를 아래에서 거부할 수 없게 만들어놨죠. ‘무죄 구형’을 한 임은정 검사에 대한 징계를 시도한 것이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는 검찰을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으로 만듦과 동시에 권력에 복무하는 개라는 비하를 받게 만들기도 했는데요. 기소권을 독점하고 수사를 지휘함은 물론 상명하복의 조직 논리까지 있다보니, 사실상 검찰 상부의 의지에 따라 무엇에 죄를 물을지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검찰이란 이런 조직입니다. 오직 단 하나, 한국에서 죄를 캐내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허가된 유일한 조직. 이런 조직은 직무유기만으로도 법과 정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을 끼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심지어 사무실에서 자료, 진술까지 일체의 증거를 조작한다? 이건 검찰의 존립을 뒤흔드는 심각한 대사건인 것이지요.

이번 ‘댓글 수사 방해’ 사건이 바로 그것입니다. 말이 좋아 수사 방해지 사실은 수사 조작 사건이지요. 필부가 증거를 조작하려 했다면, 그것 또한 큰 죄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닙니다. 자기 몸을 건사해보고자 한 것이니까요. 하지만 검찰이 증거를 조작한다면 이건 고작 자기 몸 하나 보전해보겠다 하는 게 아니라, 이 사회, 이 나라의 법과 정의를 완전히 뒤흔들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경중을 안 따질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사 사회에서 ‘수사 조작’이 아니라, 그에 대한 ‘수사’에 분노가 폭발한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대통령과 맞짱을 뜨던 결기는 어디로 갔을까요. 그들이 분연히 떨쳐 일어나 지키고자 했던 것은 사실 법과 정의가 아니라, 검찰의 권력, 기득권에 불과했다는 증명이 아닙니까.

 

언론의 결탁

이처럼 심각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언론이 피의자의 자살에 대해 ‘수사가 잘못된 것’이라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참으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어쩌면 검찰과 함께 언론에도 사형 선고를 내려야 할지도 모를 중대한 사태입니다.

검찰이 법과 정의를 지켜야 하듯, 언론도 그 무엇보다도 정의를 추구해야 합니다. 무엇이 정의입니까? 검찰이 권력에 부역하며 증거를 조작하는 데 직접 나섰다는 것을 밝히고 규탄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 수사 대상자가 자살했다는 사실을 대서특필하며 적당히 덮을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까?

고 변창훈 검사 유족, 박상기 법무부 장관에 “내 남편 살려내라”, 중앙일보

많은 언론은 변 검사 유족의 극단적인 반응을 장문의 기사로 풀어내었습니다. 친족의 죽음을 맞은 유족이 분노하는 것은 마땅한 사람된 도리이겠지만, 그 극단적인 반응을 이토록 많은 언론이 상세하게 받아쓰는 것은 결이 다릅니다. 수사가 잘못되었으며 그의 죽음이 억울하다는 논조를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는 것이지요.

중앙일보 오보, 받아쓰고 모른척하면 끝?, 오마이뉴스

심지어 중앙일보는 검찰의 한 현직 지청장이 검찰총장을 향해 “너희들이 죽였다”고 고함을 쳤다는 기사를 내기도 했는데요. 이것이 오보라는 논란이 불거지자 슬그머니 변 검사의 ‘지인’이 고함을 친 것으로 고치기도 했습니다.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행태입니다.

 

낮은 목소리를 듣는 언론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언론이 권력에 부역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검사 자살 사건을 계기로 ‘적폐 청산’을 탓하는 언론의 논조 역시, 타락한 기득권 질서에 부역하는 언론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얘기하죠.

저는, 슬프게도, 지금의 언론은 그런 비판에 결코 자유롭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기성 언론에는 훌륭한 기자들이 많습니다. 최순실 게이트를 파낸 것 또한 바로 그 기성 언론의 기자들이었습니다. 대단하고, 존경스럽습니다. 뒷방에서 디스하는 글이나 쓰는 비겁한 블로거가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계시지요. 그러나 기득권의 목소릴 그대로 받아쓰고, 정의롭지 않은 주장을 지면 전반에서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 또한 분명한 언론의 현주소입니다.

저는 그것이 언론이 사악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니, 좀 더 정확히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언론은 특성상 높으신 분들을 많이 만납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당연히 뒷방의 필부필부가 아니라 힘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그들에게서 정보를 캐내야 하는 법이죠. 법조 담당 기자는 당연히 검찰을, 정치 담당 기자는 당연히 정당인을 많이 만나게 되겠지요.

그러나 그러다보니, 언론인 스스로도 그 조직의 관성에 무젖어버리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검찰의 논리에 무젖고, 정당의 논리에 무젖고… 그러면서 낮은 곳의 필부들이 생각하는 부조리에 눈과 귀를 닫고, 기득권의 부조리에 수긍하게 되는 것이지요. 늘 듣는 이야기가 기득권의 이야기니까요. 검찰의 내부 조직 논리 또한 일리가 있다… 같은 식으로요.

“검찰 망신주기식 수사” 문제 없나, 한국일보

다시 한국일보의 기사를 봅시다. 기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공안통’인 변 검사를 공안부 평검사가 수사토록 하고” “업무수행 중 발생한 일에 대해 지나치게 압박해 검사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을 뭉갰다는 지적”…

과연 어디에서 이런 지적이 나왔을까요? 낮은 곳의 필부로부터? 아니면, 검찰의 내부자, 혹 최소한 그에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전자는 아무래도 아닐 것 같군요. 왜냐하면, 이는 법과 정의라는 당연한 기준이 아니라, 외부에선 전혀 공감할 수 없는 검찰의 내부 조직 논리를 기준삼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검찰이 기소와 수사를 독점하고 있는데, 그럼 지검장과 동기일 정도로 기수가 높은 검찰의 범죄는 어떻게 수사해야 한단 말입니까? 검찰총장급의 범죄는 아예 수사하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요? 공수처라는 대안이 있지만 검찰 스스로가 이에 가장 극렬하게 반대했지요. 또한 말단 직원도 아니고 무려 검사가, 법치를 심각하게 어지럽히는 범죄를 저지르고서도 업무 수행 중 발생한 일이라며 선처받아야 할까요? 고위공직자들이 법을 호구취급할 미래가 뻔히 그려지는데요.

저는 법과 정의라는 당연한 기준 대신 밖에선 아무도 동감하지 않을 조직 논리를 내세우는 검찰의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그 못잖게, 그 행태를 아무 비판의식 없이 받아쓰는 언론 또한 규탄합니다. 내부의 속사정을 알려주는 건 마땅히 중요한 언론의 역할입니다. 하지만 정의라는 기준이 늘 중심을 잡아줘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언론은 권력의 입이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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