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 144개국 중 118위? 순위 매기기의 후진성

성 격차 보고서 2017

올해도 세계경제포럼(WEF)이 내놓는 ‘세계 성 격차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한국은 늘 그렇듯 성 격차 지수 0.650으로 조사 대상 144개국 중 118위. 비슷한 순위를 기록한 나라로는 튀니지와 감비아가 있다는군요.

한국 성평등 144개국 중 118위… 정치·경제·교육에 후진성, 연합뉴스

성 격차지수는 그간 많은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특히 보고서의 내용을 축약해 ‘몇개국 중 몇위’ 같은 최종 결과(?)만을 받아들고 보면, 한국 여성이 영위하는 삶의 질이 세계에서 118위라는 의미처럼 보이기 때문이죠. 이제야 여성에 대한 폭력을 금지하는 법이 제정된 나라나, 애당초 여성에겐 결혼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 나라 등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죠.

 

성 격차 지수의 한계

이는 성 격차 지수가 가진 본질적인 한계 때문이기도 합니다. JTBC 팩트체크에서 이를 다룬 적이 있는데요.

[팩트체크] 한국 남녀평등 지수 117위… 정말 최하위국?, JTBC

예를 들어 연합의 기사에서는 제목부터 한국 교육이 양성 평등에 있어 ‘후진적’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 내용상으로도, 고교 졸업 후 3차 교육 평등도가 112위로 하위권에 머무르고 있죠. 3차 교육이란 건 대학 교육을 말하는데요, 한국이 정말 여자는 대학 안 보내고 남자만 보내는 그런 사회인가요? 일부 그런 경향이 있긴 하겠지만, 세계 112위에 그칠 정도라 하긴 어렵죠.

이건 성 격차 지수의 가장 대표적인 한계 중 하나입니다. 성 격차 보고서상에서 한국 남성의 대학 진학률은 111%에 달해요. 계산의 용이성 때문인지 18~22세 남녀를 분모로, 전체 대학생을 분자로 계산하는데, 군대에 가 있는 휴학생까지 대학생으로 간주하는 바람에 저런 괴이한 숫자가 나와버리는 것이죠. 덕분에 성 격차가 터무니없이 확대되어 보이는 것이고요.

이런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성 격차 지수는 여기저기에서 한계를 보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여성 최고 지도자 집권 기간은 세계 28위라는 꽤 높은 순위를 기록했는데요. 다들 아시다시피, 이건 박근혜 때문이지요. 출생 시 남녀 성비는 이미 자연성비 수준에 근접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최하위권인 것처럼 평가되고 있는데, 이건 사실 그냥 성 격차 보고서에서 수치를 업데이트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성의 실제 삶의 질과 상관없이 격차 자체만 적으면 높은 순위를 기록하는 것도 중요한 한계 중 하나죠. 양성의 삶이 공히 시궁창이면 순위가 높아져버리니까요.

 

성 격차 지수의 의의

많은 사람(특히 남성)들이 성 격차 지수에 반발하며 내세우고 있는 통계가 있습니다. 유엔개발계획의 성불평등지수인데요, 여기에서 한국은 꽤 높은 순위인 23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는 성 격차 지수가 엉터리라는 반증처럼 사용되는데, 이 또한 성 평등을 측정하는 완벽한 도구는 아닙니다.

‘극과 극’ 한국여성 지위 글로벌 통계, 어떻게 봐야 할까, 경향신문

이는 모성사망률, 청소년 출산률, 회의석 중 여성의원 성비, 중등교육 이상 교육을 받은 인구비율, 경제활동참가율을 지표로 삼고 있는데요. 이런 지표는 여성의 안전과 신체의 자유 등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지 못할 정도로 극심한 성 불평등을 나타내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만, 한국과 같은 선진국에서 나타나는 임금 차별, 유리천장 등의 성 격차를 드러내는 데는 약점을 보이죠.

성 격차 지수는 여성의 정치 사회적 지위, 임금 격차 등의 사회적 불평등 요소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여성의 근로소득이 남성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은 그 원인이 무엇이든지간에 심각한 사회적 문제라 아니 할 수 없겠죠. 여성의 정치적 참여, 고위직 참여 등이 여전히 미비하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성 격차 지수는 이런 한국의 현주소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죠.

 

순위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현주소

이처럼 성 격차 지수는 의의가 분명합니다. 성 평등을 향해 끊임없이 전진해야 할 우리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죠. 과거에 비해 얼마나 전진했는지는 물론, 세계와 비교해 어떤 수준인지도 말입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 숫자가 1에 수렴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것이 숫자 놀음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지표를 보다 세부적으로 참고하여 우리에게 무엇이 부족하고 성 평등 정책이 무엇을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하는지 알아보기 위한 소중한 참고 자료로 사용해야지, 다만 순위가 몇 등이네, 몇 등이 떨어졌네 하는 데만 천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이는, 앞에서 보았듯 이런 지표는 어떤 항목을 뽑아 어떻게 평가하고 점수를 매기느냐에 따라 결과가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의 온갖 통계를 종합하다보면 계산상의 오류는 물론 수치 그 자체가 오류인 경우도 적잖이 튀어나오지요. 말하자면 순위라는 결과값은 그다지 신뢰할 만한 게 못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117이란 숫자에 천착해 한남이니 메갈이나 싸우는 것은 얼마나 우스운 일입니까. 예를 들어 위의 통계 오류를 교정하여 순위가 한 40위 쯤 뛰어오른다면 그것을 성 불평등이 개선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박근혜가 장기집권하여 여성 최고 지도자 집권 기간이 1위에 올라선다면 또 어떨까요. 임금 격차가 없는 대신 명예살인이 횡행하는 나라라면 그곳은 한국보다 성적으로 평등한 나라일까요. 대체 여기에 줄세우기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 일차원적인 도식에서 벗어나, 최소한 다음 차원을 바라보자고요. 여성 각료를 어떻게 확대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선, 문재인 정권의 강경화 장관 임명 때와 같은 상황을 가정해 볼 수 있겠죠. 임금 격차를 어떻게 축소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육아휴직 제도를 어떻게 유명무실하지 않은 것으로 만들 것인가,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논의로 발전시킬 수 있겠고요. 3차 교육 평등도와 성비 불균형은… WEF가 바보라서 그러니 무시하자고요. 우리에게 필요한 건 순위 경쟁에서 이기는 게 아니라, 진짜 성 평등을 이뤄낼 실질적인 대안들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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