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물림으로 인한 한일관 주인 사망 사고에 대한 단상

사고의 정황

제목을 뭐라 붙여야 할지도 애매하다. 어쨌든, 요즘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이 사건의 개요는 대강 이렇다. 유명 식당 ‘한일관’의 50대 주인이 개에 물려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사인은 패혈증. 이 황망한 죽음은 해당 개의 견주가 유명 연예인 최시원 씨의 가족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더 많은 이의 입에 오르내렸다.

이 사고를 두고 ‘사람을 문 개는 죽여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다. 나는 이 여론에 반대했고, 페이스북에 단상을 남기기도 했다. 내가 그 여론에 반대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피해자의 사인이 ‘패혈증’이기 때문이었다. ‘패혈증’이란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이 죽음이 결코 치명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였던, 사소한 상처에서 발생한 황망한 비극일 가능성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패혈증은 치사율이 매우 높은 치명적인 질병임에도 불구하고, 개방된 상처나 화상 등이 있다면 그 정도가 중하고 경하고에 관계 없이 발생할 수 있다. 물론 확률이 높진 않지만,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공격성을 드러낸 게 아닐 수 있다는 것이고, 공개된 엘리베이터 cctv 상으로도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을 공격하여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의 동물이 있고 이를 통제 관리할 방법이 없다면 그 동물을 죽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공개된 정보만으로는 이를 판단하기 어려웠으므로, ‘개를 죽여야 한다’는 여론에는 마땅히 반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개가, 죽여야만 할 정도로 심각한 공격성을 드러내왔는지에 대해서,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결말에도 불구하고 ‘알 수가 없었으니까’.

 

책임의 소재

사람의 책임 하에 있는 반려견이 사람을 물었다면 그 가장 우선적인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

당연히 사람에게 있다 할 것이다. 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나아가 이를 공공의 장소에서 관리한다는 것은 마땅히 견주에게 막중한 책임을 지워야 할 일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개가 사람들의 규칙을 이해하길 기대할 순 없으니까.

목줄을 하고 입마개를 씌우고, 만일 맹견이라면 공동주택에서 키우지 않고 격리된 공간에서 관리하는 등의 ‘마땅한’ 규칙들을 지킴으로써 개는 무리없이 인간들의 공동체에서 생활할 수 있게 된다. 이런 규칙들을 지켰음에도 불구하고 혹 발생할 수 있는 불의의 사고에 대해서는 즉시 필요한 처치를 제공하고 그 손해를 금전 등의 방법으로 배상하는 것도, 또 하나의 규칙이 될 수 있겠다.

사람이 오가는 곳(특히 그곳이 실외라면)에서 개에게 목줄을 하지 않는 견주를 자주 보게 된다. 그 개에게는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도 큰 해가 되는 행동이다. 아무리 큰 개라도 입마개를 하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시피하다. 물림 사고가 일어나더라도 보상은 커녕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경우도 적잖다. 반려동물 문화가 급속히 확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우리 사회 안에서 관리하기 위한 ‘규칙’은 도대체가 제대로 확립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이런 마땅한 규칙을 소홀히 함으로써 발생하는 모든 문제에 대한 책임은 마땅히 사람의 것이 되어야 한다. 명백한 과실이 있었다면 형사처벌에 이르러야 하고, 위험한 결과가 뻔히 예상됨에도 방기했다면 살인죄까지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의 규칙을 개에게 지키라 요구할 수는 없다. 그러니 그 개를 책임지는 사람이 더 엄히 지켜야만 하는 것이다.

 

반려와 재산

이건, 다시금 강조하건데, 사람과 동등하게 개를 취급하란 얘긴 아니다. 다만 책임이 있는 곳에 책임을 지워야 한다는 얘길 하고 싶은 거다. 생명을 박탈하는 건 어떻게든 피해야 할 선택지라는 것도. 그냥 당연한 얘기들이 아닌가.

옆집에서는 통제되지 않는 비글을 마당에 풀어놓고 키웠다. 어느날 그 집을 찾은 어머니가 비글에게 물리는 사고가 일어났지만, 그 주인은 적절한 처치를 주선하기는 커녕 병원비조차 대지 않았다.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사람을 문 개는 죽여도 할 말이 없는 법이라고 말했는데, 어머니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 개가 무슨 죄냐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이 맞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리 말한 이유는, 최소한의 책임마저도 지지 않고 이 위험천만한 사고를 방관했던 그 개주인에게 어떻게든 책임을 묻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그토록 아끼는 개를 그로부터 빼앗는 것이 나름의 응보가 되리라 여겼던 것이다.

되돌아보건데, 결국 난 그 개를 반려가 아니라 재산으로밖에 보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그 개를 독자적인 생명체가 아니라 주인에게 딸린 물건으로 여긴 것이다. 암만 한낱 미물이라도, 그 개의 생명은 그 개의 것이다. 그 주인의 것이 아니라.

사실 미국 등에서도 개 관리 소홀에 의한 사망 사고가 일어나면 개를 안락사시킴으로서 참작을 받는 경우가 있는데, 좋은 방향은 아니지 싶다. 안락사시켜야만 할 상황이라면 안락사를 시키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건 별개로 고려되어야 할 사안이다. 사람의 책임은 그와 완전히 별개로 묻는 게 맞지 않을까. 개를 죽이는 것이 사람의 책임을 덜 수 있는 방법이어선 안 되는 것 아닐까.

본론과는 별 상관 없는 이 이야기의 결말은, 그 비글을 넓은 개장 안에 가둬두는 것으로 끝이 났다. 병원비는 못 받았지만, 이 정도면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내 개인적으로는 그 이후, 시골 동네의 애견 문화에 대한 선입견은 한결 더해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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