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릭(Bric), 곧 과학기술부 산하 생물학전보연구센터에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황우석이란 이름의 박제된 영웅이 알고보니 사기꾼이었더라는 사실이 PD 수첩의 취재에 의해 알려진 때 즈음이었다. 황우석 사태에 극적인 전기를 가져다 준 “anonymous”, “아릉~” 등 익명의 누리꾼들이 바로 이곳에서 활동했고, 썩어빠진 과학계, 특히 생명과학계 속에서도 자정의 희망이 존재함을 온누리에 알렸다.

황우석 사태에 대한 논의 자체는 이처럼 긍정적이었으나, 이는 또한 양날의 칼이었으며 – 이제 브릭 그 자신에 그 서슬퍼런 날을 돌리고 있다. 황우석 사태에 의해 브릭의 유명세가 지나치게 높아지면서 그들 자신이 고도의 정치성을 띄게 된 것이다. “anonymous”와 “아릉~”의 유명한 글은 이미 조회수가 (브릭에서만) 3만여건에 달하며, 인터넷 곳곳으로 퍼날러져 실제로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읽은 것으로 추정된다. 브릭의 과학적 자세는 그 자체가 고도의 정치성을 함의하게 되어 브릭에서 나왔다는 것만으로 어느 정도의 학문적 신뢰성을 담보받게 되었고, 이에 따라 일부 선동분자들이 브릭에 글을 올린 뒤 다른 커뮤니티에 “브릭에서 퍼온 글”이라며 다시 유포하는 방식으로 여론을 조작하기도 했다.

최근 브릭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의사 / 의사 논쟁”은 이러한 브릭의 정치적 함의가 가장 부정적인 방향으로 표출된 바라 할 수 있다. 이 논쟁은 “mahl…”이란 별명의 누리꾼이 브릭에서 한의학을 비난하는 선동적 게시물을 스팸(Spam) 수준으로 게시했고, 이에 브릭의 운영자가 “의학과 한의학의 현주소 – 집중토론방”을 따로 만들어 논의를 지속시킨 것이 그 발단이다. 사실 이는 처음부터 매우 비생산적이고 무의미한 논쟁(또는 일방적 비난)이었다. 문제는 브릭이 가진 고도의 정치적 함의 때문에 이 무의미한 논쟁이 “과학적 팩트”라는 겉옷을 뒤집어썼다는 것이다.

그러나 브릭은 이러한 논의를 할 ‘번짓수’가 아니다. 브릭 수준의 정치적 함의를 갖게 된 단체가 다른 학문을 아예 “부정해버릴 수 있는” 논의를 시작하면, 게다가 운영자 차원에서 그 논의의 장(場)을 열어 버리면 자칫 학문 간의 진흙탕 싸움이 시작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의학이 일반적인 과학과 상당히 다른 성격을 갖고 있으며 과학적 얼굴 뿐만 아니라 인문학적, 사회학적 함의까지 가지고 있음을 생각해 볼 때, 과학도들의 의학에 대한 비판이 얼마나 정당할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할 수 있다. 사회학자의 경제학 비판이 별 실효성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문제는, 그들에게 의학이나 한의학을 비판할만한 완벽한 자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팩트”라는 무소불위의 겉옷 아래 그것이 100% 정당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브릭이 가진 정치적 함의다. (아마 혹자는 항변할지도 모른다. 그 정치적 함의를 브릭이 추구한 것은 아니잖냐고. 그러나 원했든 원치 않았든, 그 정치적 함의를 브릭이 충분히 누렸음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 순수한 과학적 열정에서 나온 논의라면 괜찮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브릭은 열린 공간이고,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의학도와 한의학도들이 몰려들 것이며, 과학도의 탈을 쓴 선동분자들도 나타날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의학과 한의학이 상당히 “막 나가는” 학문이란 점이다. 의학도들과 한의학도들을 너무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 의학도들은 한의학을 비난하기 위해 온갖 흑색선전을 동원할 수 있으며, 한의학도들은 의학도를 비난하기 위해 별 뜬구름 잡는 소리도 과학적으로 포장해낼 수 있다. 의학도들과 한의학도들이 이 난상토론에 본격적으로 참여하면, 브릭이 본의 아니게 갖게 된 정치적 함의가 가장 비생산적인 방법으로 폭발하게 될 것이다. 또 누가 알랴, 그 몰려든 멍청이들 때문에 브릭이 제 2의 서프라이즈가 될지.

브릭의 누리꾼들이 “나는 브릭 사람”이라는 미묘한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지 않길 빈다. 서프라이즈의 누리꾼들처럼 “인터넷 권력”에 취하지 않았기를 빈다. 그렇지 않다면, “의학 / 한의학 논쟁”은 브릭을 잡아먹을 거대한 소용돌이가 될 것이니. 그동안 수고하셨으니, 이제 다시 생명과학계의 현실과 그 사회학적 의미에 고민하는 생산적인 장(場)이 되길 바란다. 제 2의 서프라이즈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하나의 댓글

  1. 안녕하세요 미디어몹입니다. 예인즈 님의 상기 포스트가 미디어몹에 링크가 되었습니다. 링크가 불편하시면 아래 리플로 의사를 표시해주세요. 해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즐거운 포스팅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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