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가스관을 지어서 트럼프가 유감을 표했다고?

끔찍한 오역

[종합]트럼프 “북한에 긴 가스라인 유감”···김정은 “로켓맨” 지칭도, 중앙일보

위의 기사에 따르면, 트럼프 미 대통령이 트위터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한국의 문 대통령과 통화를 했다. 그에게 ‘로켓 맨(주: 김정은)’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북한에 긴 가스라인이 만들어지고 있다. 참으로 유감.”

원본 트윗은 이렇다.

“I spoke with President Moon of South Korea last night. Asked him how Rocket Man is doing. Long gas lines forming in North Korea. Too bad!”

… 네이버 검색만 돌려봐도 저런 번역은 나올 수가 없다. “Long gas lines forming”이란 건 긴 가스관이 지어지고 있다는 게 아니라, 기름을 받아가기 위해 주유소 등에 긴 줄이 늘어섰다는 뜻이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안에 따라 원유 수출 제한 조치가 내려져 북한의 원유 수급 사정이 안 좋아졌다는 걸 비꼬는 트윗이다.

 

통신사에서 출발해, 복수의 언론이 받아쓰다

문제는 이 터무니없는 오역이 ‘통신사’에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북한에 긴 가스관 형성중… 유감이다”, 연합뉴스 (아카이브)

[종합] 트럼프 “북한에 긴 가스라인 유감”… 김정은 “로켓맨” 지칭도, 뉴시스 (아카이브)

원래 기사에서는 미국 정부가 한국이 러시아와 협상하는 것을 비판하고 있다는 식의 선무당같은 해석까지 덧붙었다. 오역 하나에서 관심법까지 아주 두루 엉망이다.

이들은 뒤늦게 이 트윗이 “석유를 사기 위한 긴 줄이 늘어서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되고 있다며 기사를 수정했다. 그 수정의 결과가 위의 중앙일보 기사다.

더 한심하다. 명백한 오역을 해 놓고 제대로 된 번역을 “이런 뜻도 있단다” 라는 식으로 첨언하는 게 안쓰럽다. 그냥 번역이 틀렸다, 미안하다라고 해야지 뭐 하는 짓인가.

이 끔찍한 오역은 통신사에서 시작된 탓에, 복수의 언론이 앵무새처럼 받아썼다. 같은 내용의 기사가 어마어마하게 재생산됐다. 이 또한 더욱이 한심하다. 통신사가 언론사에 기사를 공급하고, 언론사가 이를 굳이 검증하지 않는 관례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이 정도로 대놓고 보이는 오보조차 걸러낼 수 없는 것일까. 이토록 확대 재생산되게 놔두는 것일까.

 

언론의 영향력이 더 강했다면

이 사태는 달콤쌉싸름한 감상을 남긴다. 이것이 심각한 사태로 비화되지 않은 것은, 역설적으로 언론이 과거의 영향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만일 언론이 여전히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있다면, 언론이 여전히 세상을 보는 거의 유일한 창구라면 어떨까.

만일 그랬다면, 이 짧은 오보 하나가 어떻게 역사의 방향을 바꿨을지 모른다. 한미 갈등이 심각하다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전국적으로 퍼지고, 이것이 실제 외교 지형을 뒤바꾸고…

언론의 영향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 이토록 다행으로 여겨지다니. 물론 언론의 의의를 완전히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 이게 현주소 아닌가 싶다. 언론을 통틀어 적폐로 규정하는 것도 반대하지만, 언론 스스로도 선민의식을 갖기보다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 것이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