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X 발표: 잡스의 정신은 애플에 없다

애플의 새 이벤트

‘스티브 잡스 극장’에서 열린 첫 키노트였다. 잡스의 이름을 딴 극장에서, 잡스의 목소리로 막을 열었다. 9월 12일(현지시각 기준) 열린 애플의 스페셜 이벤트에서, 애플은 LTE를 지원하는 애플 워치 시리즈 3, 4K를 지원하는 애플tv, 아이폰 8, 아이폰 X을 발표했다.

혁신은 없었다

한국 언론이 이 제목을 뽑을 때마다 비판했던 입장이지만, 자, 솔직히 얘기하자. 요 몇 년새 애플엔 정말로 혁신이 없었다. 당연하게도 이번에도 그랬다.

LTE를 지원하는 스마트워치는 한참 전에 삼성과 LG가 내놓았다. 아이폰 8은 아이폰 6sss란 이름이 더 어울리는 답보의 산물이다. 아이폰 X은 전면을 꽉 채운 디스플레이와 갤럭시 등이 도입한 안면인식 기능보다 훨씬 진일보한 안면인식 기능인 ‘페이스 ID’등을 탑재하였으나, 999달러라는 가격이 발목을 잡는다. 한국 기준 출고가 140만원 수준이 예상된다.

 

천재 잡스를 생각하다

스티브 잡스는, 천재였다. 인터넷의 몇몇 호사가들은 “잡스는 그저 장사꾼일 뿐” “진짜 개발을 한 건 워즈니악이므로 워즈니악이 천재” 등의 말로 잡스를 폄하하지만, 이건 잡스의 진짜 천재성을 전혀 들여다보지 못한 견해라고 생각한다. 잡스는 한 시대에 한 명을 채 찾아보기 힘든 진짜 천재였다.

그는 그 자신이 가장 열성적인 소비자였다. 앨범을 죄다 주머니에 들고 다니고 싶어하는 음악 애호가였으며, 기존의 PDA가 가진 형편없는 사용성에 학을 떼던 IT 마니아였다. 그는 자신의 열성적인 소비 경험에 의지하여, 기존 제품이 무엇이 부족한지를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자신이 원하는 새로운 경험(UX)을 바로 그의 회사, 애플에 요구해왔다. (다른 말로, 디자이너와 공돌이를 갈아넣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 요구가 대중의 욕구를 직격하는 것이었단 것이고, 또한 더불어 기술의 정점에서 실현 가능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인공아가미라든가 2TB USB 메모리라든가 피 한 방울로 모든 질병을 진단하는 키트나 록맨의 진정한 정신적 후계자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가 요구한 것은 주머니에 들어가는 5GB짜리 mp3 플레이어였고, 주머니에 들어가는 인터넷 커뮤니케이터였으며, 소파에서 쓸 수 있는 IT 머신이었다.

 

고집불통 잡스를 생각하다

그는 고전적인 개념의 ‘경영자’로서는 참으로 함량 미달인 인물이었다. 시장 조사나 주주 이익 같은 개념을 이렇게까지 무시한 사람은 또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그런 사람이 특유의 천재성과 카리스마 하나로 회사를 휘어잡았고 회사의 가치를 꼭대기까지 끌어올렸다.

제품을 만들 때마다 사람들을 놀래켰다. 아이팟의 ‘저 크기에 저 용량이’ 하는 점이나, 아이팟 나노의 ‘주머니에서 꺼내기’ 퍼포먼스나, 아이패드의 놀라운 배터리 성능과 가격이나, 아이폰의 아이폰이란 점이나. 본인이 욕망해서 만든 포인트인데, 그게 곧 혁신이고 셀링 포인트가 되었다.

물론 잡스의 천재성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아이브가, 스캇이 없었다면 구현될 수 없었을 것이다. 팀 쿡이 없었다면 아이팟이 세상을 바꿀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의 회사는 수많은 톱니바퀴가 있어야만 굴러가는 것이니까. 다만 잡스라는 톱니바퀴가 엄청 거대했을 따름.

 

비전이 없다

혁신은 강요받는다고 이뤄지지 않는다. 스티브 잡스는 그 자신이 원하는 생활상이 있었기에 혁신을 이룰 수 있었다. 좀 그럴듯한 말을 빌자면 일종의 비전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팀 쿡 시대의 애플은 과연 무엇을 원하는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꾸기를, 혹 진보시키기를 원하는가?

팀 쿡의 애플에서는 비전이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이게 애플이 나쁜 회사가 되었단 뜻은 아니다. 시장을 조사하고, 부품 공급과 재고 관리를 위해 최적화된 제품을 설계한다. 아이폰 SE에 ‘녹색 테두리 현상'(장기간 사용할 경우 디스플레이 테두리가 녹색으로 변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구세대 디스플레이를 그대로 사용하고, 한 세대 쯤 뒤쳐진 카메라를 플래그십인 아이폰 6s나 7에 박아넣는 것이다.

이건 전형적인 이윤을 극대화하고 주주 이익을 추구하는 ‘보통 회사’다. 경영학 교과서에서는 모범적으로 다루겠지만, 소비자로서는 참으로 재미가 없는 회사다. 이런 교과서적인 경영으로는 잡스 시대에 익숙해진 애플 팬들을 만족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훌륭한 회사이긴 하지만

물론 너무 몰아가는 건 좋지 않을지도 모른다. 잡스의 천재성은 말년에나 빛을 발했고, 그 전에는 독선이 더 돋보이는 탓에 영 좋지 않은 꼴을 본 적도 많다. 반면 팀 쿡은 초반부터 매우 안정적으로 체제를 운용하고 있다.

삼성 갤럭시와 비교하면 애플 아이폰이 아쉬운 점이 많아보이지만, 그 사이 열심히 뒷걸음질친 다른 회사들, htc, 델, hp, LG, 소니, 그리고 심지어 노키아 같은 회사가 있다. IT 긱들은 하드웨어 혁신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몫이 되었다고 말하지만, 그 혁신의 아이콘 서피스는 역대급 불량률로 화답하고 있다.

 

아이폰 X의 혁신

아이폰 X에 혁신이 없는 건 아니다. 페이스 ID는 기존 안면인식, 예를 들어 갤럭시 S8 등에 탑재된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정밀도와 편의성을 갖췄다. 걱정과 달리 터치ID를 충분히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는 페이스 ID는, 과연 ‘우리의 생활을’ 어떻게 대단하게 바꿀 것인가? 그저 지문인식의 차선책에 불과한 건 아닌가. 디스플레이에 지문인식을 구현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채택한 값비싼 기술. 이모지에 내 표정을 실시간으로 매핑시켜서 대체 어떤 효용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아마 애플 워치로 심박수를 보내고 그림을 그려 보내는 수준의 효용일 것이다.

혁신은 기술에서도 나오지만, 그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는가로 완성된다. 그것으로 우리의 생활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잡스는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잡스는 죽었고, 이제 그런 사람은 애플에 없다. 다만 애플이 안도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애플 말고 어디에도 없다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우리가 놀라운 하드웨어 완성도와 양산 능력을 갖춘 삼성 대신 굳이 애플을 사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아, 하나 있긴 하다. AP. 성능은 여전히 경쟁자를 압살한다. 삼성도 물론 포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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