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수 부결에 즈음하여, 경향의 ‘협치’ 요구를 비판한다

경향의 ‘협치’ 요구

김이수 부결에 즈음하여, 경향이 ‘협치’를 요구하는 기사를 냈다. 민주당과 정의당만으로는 과반에 미달하며, 국민의당이 캐스팅보터의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요지의 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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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이 기사는 결국 “개혁입법을 위한 현실적 대안은 야당과의 협치밖에 없다. 여당이 의회정치의 복구와 활성화를 주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많은 언론들이 같은 주문을 하고 있다.

동의하는 바 없지 않다. 결국 입법은 입법부의 몫이고, 입법부에선 끊임없이 ‘정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겉으로는 싸우고 볶고 지지더라도 내부에서는 계속해서 조율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이건 굳이 언론이 아니더라도, 장삼이사 누구나 할 수 있는 수준의 지적이라 생각한다. 싸움보다 대화가 좋다는 얘길 그 누가 못하랴. 문제는 그게 지금 현 상황에 얼마나 적절한 조언인가 하는 것이다.

 

야당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다

우선 야당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다. 자유당은 극우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30% 미만의, 그러나 안정적이고 TK란 지역 기반도 확고한 콘크리트를 끌고 가는 길을 선택했다.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은 다음 선거까지 당을 존속시킬 수 있을지가 의심받는 중이다. 바른정당은 리더십이 불법 자금 사태로 무너졌고, 국민의당의 리더십은 안철수다. 전략도 갈팡질팡한다. 리더십이 아예 실종된 바른정당은 둘째치고, 국민의당은 사실상 호남 지역당이면서 호남 인사를 부결시키는 황당한 짓을 저질렀다.

 

현재 상황에서 협치는 곧 개혁의 후퇴를 의미한다

야당이 이처럼 총체적 난국인 상황에서 문제는, ‘협치’가 곧 ‘개혁의 후퇴’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협치’란 청와대와 민주당만의 뜻을 강요하지 않고, 바른정당과 국민의당, 나아가 자유당의 의견도 존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말은 좋은데 세부 내용으로 들어가면 암담하다. 그들의 요구는 검찰 그냥 놔두고, 언론노조가 장악(?)한 MBC를 김장겸에게 돌려주고, 동성애는 금지하고, 사법 개혁도 포기하고 뭐 이런 것들이다.

(물론 박성진 사퇴 요구처럼 온당한 것도 있지만, 그런 온당한 요구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는 협치가 이뤄질 수 없다는 건 경향이 누구보다도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상의 ‘협치’가 이루어졌을 때 경향은 과연 이것을 ‘협치’라고 칭찬할 것인가? 아니면 ‘야합’이라며 맹폭할 것인가? 난 경향 스스로가 ‘협치’의 결과에 대해 책임질 생각이 전혀 없으면서, 뿐만 아니라 날세워 비난을 쏟아부을 것이면서 ‘협치’를 주문하는 것이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책임이 없으니 할 수 있는 말이란 것이다.

이건 대중들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협치’와 ‘야합’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지금 자유당이나 국민의당이 주장하는 바, 예를 들어 김장겸을 그냥 두어야 한다거나 동성애를 금지해야 한다거나 하는 이야기들, 이들을 청와대가 수용한다면 이걸 사람들이 ‘협치’로 볼 것인가, ‘야합’으로 볼 것인가? 김이수 부결로 인해 개혁의 동력이 상실되었음을 걱정하지만, 개혁의 의지 자체가 꺾여버린다면 사람들은 청와대와 여당을 계속 지지할 것인가?

몇몇 사람들을 ‘낙마’시킴으로서 야권의 체면을 살려줬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실 중소기업벤처부 장관 후보자 같은 경우에는 사실 야권의 체면 같은 건 차치하더라도 낙마가 맞는 방향이긴 하다. 하지만 정말 공직자 후보자를 낙마시키면 야권이 체면이 살고, 야권이 협조적으로 나올 것인지는 모르겠다. 내부에서 어떤 정치적 거래가 이뤄질지 필부필부로서는 모를 노릇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 딱히 상관관계가 없지 않았던가. (문득 안철수의 “내가 그런(낙마를 요구한) 적이 없다”는 명대사가 생각나고.)

 

협치의 결과에서 눈을 돌린 건 아닌가

심지어 국민의당도 (아마 호남의 이탈이 두려워서 하는 말이겠지만) 김이수가 결격 후보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부결시켰다.

청와대와 여권의 정무적 판단 미스를 질책할 순 있다. 하지만 이게 우선이 되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야권은 소수자 인권 보호에 매진해온 후보자를 지저분한 정치 선동을 앞세워 세 과시를 위해 낙마시켰다. 마땅히 이것이 가장 우선 비판받아야 하는 일 아닌가.

그런데 언론은 소위 ‘정치평론가’ 따위를 내세워 사태를 비평하면서 소위 ‘정무적’ 판단이나 ‘정치공학적’ 측면을 위주로 조망한다. 마치 삼국지에서 제갈량과 사마의의 전략 싸움을 감상하듯, 바둑에서 알파고와 이세돌의 수를 평가하듯 말이다. 그게 정말 언론의 본령인가? 이 ‘정치평론’의 수준은, 옛날 이발소에서 담배 물고 고스톱 치던 아저씨들의 정치 얘기에서 대체 몇 발자국이나 전진한 것인가?

조선, 동아, 문화 같은 신문이 협치를 주문하는 의도는 분명하다. 개혁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경향이 협치를 주문하는 의도는 정 반대일 것이다. 개혁을 하라는 것이다.

둘 중 어느 한 쪽은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쪽은 협치를 통해 개혁을 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고, 한쪽은 협치를 통해 개혁을 하라고 말하고 있다. 난 당연히 후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경향은 언론의 불편부당함이라는 덕목을 잃지 않기 위해, 실제 협치의 결과에선 눈을 돌리고 하나마나한 뻔한 조언만을 한 것은 아닐까. 난 이 불편부당함이 결코 진짜 불편부당함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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