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아이들 – 00 미치광이

예전부터 할머니는 벼락을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벼락이 치면 문을 세 개 닫아야 한다. 제일 먼저 대문을 닫고 들어와, 창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장롱 속에 들어가 문까지 닫는다. 이렇게 해야 벼락이 집 안까지 들어오지 않는다. 벼락은 여섯 번을 쳐야 비로소 그친다.

그날, 기억이 어렴풋한 벼락이 쳤던 날, 라운은 할머니 말대로 대문과 창문을 닫고 마지막으로 장롱 속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것만으론 왠지 모자란 것 같아 장롱 속에 들어있던 이불 속에 들어가 벼락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몇 시간을 있다가 밖에 나왔다. 과연 할머니 말 대로였다. 몸집이 너무 커 장롱 속에 들어가지 못한 어른들은 다들 벼락을 맞았다.

할머니들의 옛날 얘기는 가끔 어린 아이들이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을 포장하기 위해 만들어지곤 한다. 밤마다 나돌며 입을 찢어놓고 아이들을 납치한다는 그 귀신들, 도깨비들은 사실 사람이다. 아이들을 납치하고, 강간하고, 살해하는 사람들.

벼락도 그렇다.

그는 광이라고 불렸다. 미칠 광. 뭐 돌려 말할 것도 없이 미친놈이라는 뜻이다. 그는 거리의 유명한 깡패 패거리 중 한 명이었지만, 같은 패들도 혀를 내두르며 가까이 하기 싫어하는 그런 종류의 인간이었다. 하지만 이제껏 그 광기란 단순히 통제 불가능한 일종의 장난기라고만 생각했었다. 이토록 계획적이고 파괴적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광이 등장했다는 얘기에, 누나는 라운을 급히 장롱 속에 숨겼다. 진짜 친누나는 아니다. 사실 나이도 잘 모른다. 버려진 아이들끼리 만든 유사 가족 중에 다만 제일 키가 크고 나이가 성숙해보여 누나 역할을 맡았을 뿐이다.

인륜 없는 깡패 패거리들에게 어린 애는 가장 손쉬운 먹잇감이다. 패거리라면 몰라도, 광 한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이 오기 전까지 자신이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장롱에 숨어있던 라운의 귀에, 귀를 찢는 천둥같은 소리가 들렸다.

“뭐야, 사람이 이렇게 쉽게 죽는 거였어?”

탄피가 땅으로 떨어지며 달그락 하는 소리를 내자마자 광의 앞에 서 있던 누나의 몸이 힘을 잃고 함께 쓰러졌다. 굴러가던 탄피가 시체에서 흘러나온 진득한 피구덩이에 걸려 멈춰서는 것을 보며 광은 그 이름답게 자지러지게 웃어댔다.

“이렇게 쉽게 죽으면 안 되지, 내가 이걸 사겠다고 얼마를 냈는데, 좀 더 재밌어야 되지 않아? 일어나 봐, 야, 이거 좀 일으켜 세워 봐, 이거!”

광은 시체를 발로 차며 성질을 내다가, 다시 자지러지게 웃다가, 또 갑자기 정색을 했다.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이 무엇인지 어린 라운은 제대로 보지 못했다. 보았더라도 아마 몰랐을 것이다. 그건 오래 전 멸종했다고 여겨진 물건이었다. 어린 라운은 실물은 물론 그림으로도, 글로도, 심지어 지나가는 말로도 접한 적이 없는 것이었다.

총이다.

구할 수 있단 얘기는 돌았다. 일단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하겠으나, 정부에 적당히 뒷배가 있어 줄을 댈 수 있으면 마치 누수처럼 극미량이 흘러나온다 했다. 하지만 라운은 물론 그 누구도 광 같은 단순한 미치광이가 줄을 대고 돈을 모아 총을 손에 쥘 것이라 생각하진 못했던 것이다.

“라운아!”

조용한 마을에 벼락처럼 울린 총성에, 형이 달려와 문을 두드렸다. 누나가 그렇듯, 그도 진짜 친형은 아니었다. 이 유사 가족 중에 가장 힘이 세고 덩치가 커서 맏형으로 불렸을 뿐이다. 나름 웬만한 깡패 패거리와도 맞서 싸울 수 있을 정도로 믿음직한 형이었다.

“에이, 에이. 문 걸어 잠그고 숨어 있어도 뒤질 판에 문을 두드려대는 미친놈이 있네?”

자타가 공인하는 미치광이의 입에서 미쳤다는 말을 듣는 게 아이러니하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었다. 광은 문을 벌컥 열며 형의 가슴에 총구를 들이댔다. 정확히 심장이 있는 가슴뼈의 바로 그 자리다.

“너… 애들은 그냥 놔둬. 애들은, 라운이 같은 애들은 아무 잘못도 없잖아.”

형의 목소리가 떨렸다. 라운은 형의 목소리가 이렇게 떨리는 것을 들어 본 일이 없었다. 형은 나이가 몇 배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기가 죽는 법이 없었다.

“아니지, 아니야…”

하지만 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아니야.”

그리고는 무슨 일인지 눈치채지조차 못한 새, 무언가가 푹 하고 형의 배를 뚫고 들어왔다. 총에 정신이 팔린 사이, 다른 한 손에 쥔 칼이 쑥 하고 들어온 것이다. 형은 비명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다. 광은 전에도 칼로 사람을 여럿 죽여 본 인간이었고, 그만큼 기술적이었다.

“뉜들 잘못이 있어 죽나. 그냥 죽는 거지. 그러니까 안심해도 돼. 라운이도 잘못이 있어서 죽진 않을 거거든.”

장롱 속에 숨은 라운의 귀에 광의 깔깔대며 웃는 소리가 귀를 먹먹하게 울렸다. 광은 그렇게 한참을 웃어제끼다가, 더 이상 이 집에 별다른 게 없다는 걸 확인했는지 뚝 하고 웃음을 그쳤다.

“미안하게 됐어. 편히 가게 해 줬으면 좋을 텐데, 총알이라는 것도 생각보다 가격이 어마어마하더라고. 아껴써야 돼서.”

그리고는 문이 꽝 하고 닫히는 소리가 울렸다. 다행히도, 장롱이나 서랍 따위를 뒤지진 않았다. 광에겐 뭔가 털어 가는 것 따위가 아니라, 그저 순전히 사람을 죽이는 것만이 목적인 것 같았다.

그 후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라운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 누나랑 형이 벼락을 맞았다. 비명소리가 문 세 개를 넘어 이불 속까지 들렸다. 또 쾅 하고 벼락이 쳤다. 귀를 찢을 것 같은 소리였다. 시간이 지나서 조금 작은 소리로 또 벼락이 쳤다.

그렇게 한 번씩 벼락이 칠 때마다 라운은 숫자를 셌다. 셋, 넷, 다섯, 여섯. 형에게 숫자를 배워놓길 잘 했다고 생각하며, 라운은 여섯 번의 벼락이 다 친 후에야 빠끔히 머리를 장롱 밖으로 내밀었다.

형은 대문 앞에, 누나는 창문 앞에 쓰러져 있었다. 라운은 어렸고 아직 모르는 게 많았지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비교적 잘 알고 있었다. 전쟁통에 버려진 아이들 중 하나였던 라운에게 죽음은 삶과 함께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뭘 해야 할지는 몰랐다. 그래서 멀뚱멀뚱 그 자리에 앉아 있기만 했다. 이런 일이 있으면 원래 형이 나서서 시신을 옮기고 묻어주는 일을 했는데, 그 형이 지금 내 앞에 눈도 못 감고 누워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얼마를 앉아 있었는지를 모르겠다. 어른들은 다들 벼락을 맞았다. 마을은 완전히 조용했다.

그때,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다시 열렸다.

“그래, 우리 라운이가 참 착하지. 얌전히 앉아 있을 줄 알았다니까.”

듣기 싫은 카랑카랑한 목소리, 광이었다. 애당초 라운이 방 어딘가 숨어 있을 것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뒤지지 않았을 뿐. 라운이 알아서 나오기를 기다렸을 뿐. 라운은 그제서야 형이 죽어 쓰러질 때는 벼락이 치지 않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열심히 숫자를 배웠는데, 정작 엉뚱한 착각 때문에 수를 잘못 센 것이다.

할머니, 미안. 누나, 미안. 형아, 미안. 라운의 작은 머릿속이 한때 가족이었던 사람들의 얼굴로 꽉 찼다.

“이래서 내가 총알을 아끼는 거야. 다 족쳤다고 생각해도 꼭 어디 하나가 숨어서 남아 있거든. 뭐? 비싸서 그런다고? 개새끼가 한 푼 보태주지 않고 말이 많아.”

광은 혼자서 낄낄 웃어댔다.

“살아남은 소년은 복수를 다짐했어요 같은 옛날 얘기도 좋지만 말이야. 내 취향은 아니거든. 난 복수를 할 입장이 아니라서. 복수를 당할 데는 많지만.”

광은 총을 장전했다. 그리고 주저함 없이 라운의 자그마한 몸을 겨냥했다.

“미안, 아까 형한테도 얘기했는데 말야, 딱히 사람이 잘못이 있어서 죽는 건 아냐.”

그리고 철컥, 방아쇠를 당겼다.

빵.

라운은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그 순간 들린 소리는, 벼락이라 하기엔 너무 작았다. 라운은 그 자리에 그대로 철푸덕 주저앉았지만, 피도 나지 않았고 아프지도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뭐야, 이거?”

대신 황당하다는 듯한 광의 목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불발인가, 혹 광이 탄환 수를 잘못 계산했을 뿐인가, 라운이 까닭을 알 도리야 없었다. 다만 또다시 광이 미친 듯이 웃어대는 소리가 들렸을 뿐이다.

“운 한 번 드럽게 좋네, 꼬맹이가.”

라운은 주저앉은 채, 멍한 눈빛으로 광을 바라보았다. 광은 – 정말로 기분이 좋아 보였다. 일이 생각대로 안 풀려서 짜증을 부리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일이 생각대로 되지 않아 신이 난다는 표정이었다.

“어쩔 수가 없구만. 칼로 애새끼 배때지를 쑤시는 건 내 취향이 아니라서.”

광은 그리 말하고서는 나가 버렸다. 그렇게 여섯 번 벼락이 다 치고 나서야 마을은 조용해졌다.

 

 

며칠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라운은 어렸다. 형들과 누나들 덕분에 살았다. 미치광이는 사라졌지만, 라운을 살게 해 주던 그 형들과 누나들도 함께 사라졌으니 라운은 살 방법을 알 수 없었다. 벼락이 친 땅에선 아무 것도 자랄 수 없다.

어쩌면, 가만히 앉아 굶어 죽어가는 것보다는 행운일 수도 있다. 라운이 쓰러져 죽기 전에 그 부서진 땅에 누군가가 찾아왔다는 것은 말이다. 비참한 정적 속에 발자국 소리가 유독 크게 울렸다. 황량한 피칠갑 사이로 멀쑥한 두 남자가 걸어들어오고 있었다.

“끔찍하구만.”

“총상인데, 이건. 이런 데서 총을 쓸 필요가 있나? 건질 것도 그다지 없어 보이고, 저항이 그리 격할 것 같지도 않은데…”

“모르지. 이런 데서는 사람이 미쳐가는 법이니까.”

“그런 미친놈이 총을 어디서 구해?”

“너처럼 미친놈도 가끔 어디서 구해오잖아, 그런 거.”

한 남자는 갓 중년이 된 것처럼 보였고, 다른 한 남자는 갓 소년 티를 벗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둘은 격의 없는 사이처럼 서로 반말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아직 해가 밝은 대낮, 라운은 창밖으로 두 남자를 바라보며 그들이 어떤 존재일 것인가를 생각했다. 광과 같은 미치광이일 것인가, 뭔가를 건지러 온 그저 약탈자일 것인가.

물론 라운에겐 그걸 판단할 능력이 없다.

일단 숨는 게 맞겠지만, 라운은 멍하니 두 남자가 폐허가 된 마을을 들쑤시고 다니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미 부패하기 시작한 시신에서는 기분 나쁜 냄새가 났다. 두 남자도 역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모양인지 얼굴을 찌푸린다.

“잠깐만.”

그 순간, 청년 쪽이 라운이 서 있던 창가에 시선을 돌렸다. 라운은 깜짝 놀라 황급히 숨었지만, 두 사람 사이의 거리도 있고, 바깥은 훤한 대낮이고 집안은 조명 하나 없이 어두컴컴한 상황이었음을 생각하자면 사실 굳이 그러지 않았어도 남자에게 라운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대신 오히려, 숨는다고 급히 움직이다가 그만 머리를 창문틀에 부딪친 게 문제였을 뿐.

두 남자가 성큼성큼 집 쪽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여전히 라운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공포가 몸을 잡아 삼켰다거나 해서가 아니다. 그저 홀로 무언가를 판단하고 움직이기에 너무 어렸을 뿐이다.

“형! 여기 애가 있어!”

먼저 라운을 발견한 것은 청년 쪽이었다. 그는 목소리의 음정을 살짝 높여,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로 라운에게 물었다.

“혼자 있어?”

하지만 라운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청년은 두 구의 시신을 가리키며 다시 물었다.

“아는 사람들이야?”

“…”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

“…”

“밥은 먹었어?”

“…”

딱히 묵비권을 행사하는 건 아니다. 어린아이에겐 가끔 이유없이 말문이 막히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는 계속 질문을 해 봤자 입을 열지 못한다. 청년도 그걸 알고 있었기에, 그는 질문을 계속 이어가는 대신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자를 불러, 별 말 없이 시신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아저씨들은 함프트에서 나왔어. 함프트, 알아?”

물론 라운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저거, 저기 있는 저 가위, 저거 함프트에서 만든 거거든. 저기 저 냄비도.”

모르진 않았다. 형이랑 누나가 뭔가 그럴듯한 물건을 가져왔다 싶으면 유례없이 함프트 제 물건이었다. 물론 그 이상 딱히 뭘 아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최소한 아는 이름이 나왔다는 것만으로, 라운은 이 사람들이 광처럼 미친 사람은 아닐 거라는 생각에 조금이나마 마음이 누그러졌다.

“난 연우라고 해, 이연우. 함프트의 연구원이야.”

건장한 남자 둘이 나서니 두 구의 시신이 금세 수습되었다.

“우린 이제 함프트로 갈 건데, 같이 갈래?”

라운의 입술이 조금씩 달싹거렸다. 하지만 여전히 입을 열기에는 마음이 다 풀리지 않은 모양이다. 청년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닫혔던 대문을 다시 열었다.

“안 오면 두고 간다?”

모르는 사람 앞에서 이름 두 자 말할 용기도 없고, 그 모르는 사람을 따라가겠다 나설 용기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 형과 누나가 죽어 없는 폐허에 혼자 남아 있을 용기는 더욱이 없었다.

라운은 조심스레 대문 밖으로 발을 내밀었다. 뜨거운 해가 여기저기 피를 묻힌 라운의 몸을 비췄다. 청년은 씩 웃으며 라운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밝은 데 나오니 잘 생겼네. 이름은 말 안 해 줄거야?”

“…”

라운은 여전히 말이 없었지만, 적어도 쭈뼛쭈뼛 두 사람을 따라가기는 했다. 청년은 이 폐허 속에서 방금 몇 구의 시신을 수습하기까지 해 놓고서는 무어가 그리 즐거운지, 그런 라운을 보며 히죽거리며 웃었다. 그 웃음이 마치 물 위에 띄운 기름 한 방울처럼 겉돌며 떠 다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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